제주도와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난 5일 ‘2021 사회적경제 한마당’ 일환으로 ‘제주 사회적금융 체계 구축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도와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난 5일 ‘2021 사회적경제 한마당’ 일환으로 ‘제주 사회적금융 체계 구축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사회적 경제(이하 사경)란 쉽게 말해 사람 경제다. ‘돈’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경제, ‘이익’이 목표가 아니라 ‘호혜’가 과정이 되는 경제 활동이 바로 사경이다. 

돈이 중심은 아니지만 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과 사회, 세계 번영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핵심가치가 시장경제와 다르다. 

돈을 융통하는 일을 금융이라 하며 이는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해서 사경에서도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사경을 경제의 근본원리로 삼기 위해서는 사경 조직(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의 경영을 돕기 위한 금융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사회적 금융 지원 체계는 재원 한계, 평가 지표 부재, 인식 부족 등으로 '동맥경화' 상태다. 

이에 제주도와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난 5일 ‘2021 사회적경제 한마당’ 일환으로 ‘제주 사회적금융 체계 구축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날 ‘지역기반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주제로 발표한 사회적금융연구원 문진수 원장은 “사회적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려면 지역 기반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규모와 신뢰 그래프에서 균형점 왼쪽으로 금융 공백이 생긴다. 사경 조직들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균형점을 왼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시장(시중은행)은 꺼려 한다. (그래프=문진수 원장)
기업 규모와 신뢰 그래프에서 균형점 왼쪽으로 금융 공백이 생긴다. 사경 조직들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균형점을 왼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시장(시중은행)은 꺼려 한다. 이를 보완 하는 것이 사회적금융. (그래프=문진수 원장)

# 사회적 금융, 수요와 공급간 미스매칭↑

현재 사경 조직들은 사업자금 조달 통로가 마땅치 않다. 기존 금융기관의 경우 재무적 판단으로만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시중 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사채에 손을 뻗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재무 건전성이 열악한 사회적 기업이 수탁기관 여신심사 기준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대출금리를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8년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지만 아직까지 국내 사회적 금융은 빈곤한 수준이다. 

문 원장은 “금융수단은 크게 은행, 기금, 신용조합(신협) 세가지로 나뉘는데, 일단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전문은행은 없다. 기금은 걸음마 수준이며 신협은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사경 조직들이 성장·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금융을 중개하는 지원기관이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경제를 뿌리내린 스페인 몬드라곤(은행),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기금), 캐나다 퀘벡(신용조합)도 금융수단 및 구조를 초기부터 만들었다. 세 지역 모두 금융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서다. 

지방정부에서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문 원장은 법과 제도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자금을 조성해 직접 운용하거나 신협 등 금융회사에 위임(탁)하는 방식으로 금융지원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단기 융자 중심이고 원금 손실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  

따라서 문 원장은 사회적 금융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개기관들을 지역의 사경 조직들의 특성에 맞게 발굴, 육성해 제도권 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금융 전문 중개기관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픽=문진수 원장)
(그래픽=문진수 원장)

돈의 흐름을 바꾸려면 전문 중개기관 지역 육성이 먼저

정부가 2018년 발표한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에는 도매기금(Big society capital 중개기관에 자금을 지원하는 도매상 역할 기금)을 만들고 중개기관을 육성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그 결과 '한국사회적가치연대기금'이 출범했고 현재 30개가 넘는 중개기관이 만들어지긴 했다. 

문제는 도매기금의 경우 재원 부족으로 사경조직들에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중개기관의 수도권 쏠림 현상도 심하다. 자금 공급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보니 ‘돈’이 지역의 사경조직까지 내려오기도 힘든 구조다. 사회적금융 영역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 문 원장이 지역 내 중개기관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돈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이해가 있고, 지역 혁신기업에 대한 이해가 있는 중개기관을 육성해 다양한 공급채널을 확보하고, 수요자에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이 2000년 초반 사회투자시장을 만들면서 처음 10년 간 착수한 작업이 사회적금융 중개기관 육성이다. 영국정부는 비영리 및 사회적경제(제3섹터)를 키우려면 이들에게 돈을 공급해 줄 특별한 금융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처음 10년 간 기부(grant)부터 지분(equity)투자에 이르기까지, 비영리재단부터 사모펀드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문 원장은 “이들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자 도매기금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중개기관들이 사경 조직들에 맞춤형 금융지원을 함으로써 제3섹터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제주도 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지역에 맞는 중개기관을 발굴 육성해야 제주지역 사경 조직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강종우 센터장은 “내년부터 도내 사경금융 중개기관 육성을 위해 준비중인데 시작에 앞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지” 물었고, 문 원장은 필요한 고민 3가지를 강조했다. 

5일 ‘지역기반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주제로 발표한 사회적금융연구원 문진수 원장. (사진=박소희 기자)
5일 ‘지역기반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주제로 발표한 사회적금융연구원 문진수 원장. (사진=박소희 기자)

# 중개기관 육성에 필요한 고민 3가지

문진수 원장은 지역 기반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을 만들고자 조직 형태, 기금 조성 주체, 역할 이 세가지를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고 했다. 

▶ 조직 형태 = 지역 상황과 추진 주체의 준비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북의 경우 사경 조직 중심으로 비영리 법인을 만들고 내부에 사업추진단을 꾸려 운영했다. 경남의 경우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이나 액셀러레이터, 자산운용사 등으로 사업 전환을 고려해 주식회사 형태로 가져갈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든 지방정부 기금을 수탁받아 운용할 수 있는 법인격을 갖출 필요가 있다. 

▶ 사경 지원기금 조성 주체 = 민간 중심(자조기금)일 수도 있고, 공공 중심(지자체 기금)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설립과 운용에 있어 사회적경제의 목적과 사명, 비전을 지닌 그룹이 맡아야 한다. 문 원장은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직 그 자체가 경험을 축적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 중개기관이 지역에 뿌리 내리려면 기관 설립에 필요한 공간과 비용 제공, 사회적 금융 지원조례 제정, 정책 자금 제공, 손실 문제 해결 방안 마련 등은 공공의 영역에서 해야 한다. 

설립 시기는 설립 주체 성숙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문 원장은 이미 자조기금을 만들어 운용한 경험이 있고 전문인력이 존재한다면 바로 착수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일정한 준비기간을 염두하고 시기를 조율할 것을 권고했다. 융자사업만 하더라도 심사부터 회수까지 시스템, 전문인력, 경험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구조라서다. 

중개기관 형태 (그래픽=문진수 원장)
중개기관 형태 (그래픽=문진수 원장)

▶ 역할과 기능 = 대다수 사경 기업들은 만성적인 운영자금 부족 문제를 겪고 있지만 시장 금융의 경우 재무적 기준이라는 단일 잣대로 기업을 평가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어렵다.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의 경우 '대안 심사기준'을 마련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하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자금 제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영상 애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 컨설팅 등 지원 활동을 결합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별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넘어 사회주택 건설, 낙후지역 재생, 자산화, 친환경 재생에너지 등 사회 목적 사업에도 지자체 자금과 함께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온라인투자연계 플랫폼을 활용해 사회 공헌 사업에 지역민들이 투자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도 할 수 있다. 

중개기관의 역할도 (그래픽=문진수)
 문진수 원장은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과 지자체가 함께 손실기금을 마련할 것을 제언했다. (그래픽=문진수 원장)

영국 사례처럼 다년간 경험이 축적돼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 정식 금융회사로 자리매김 할 수도 있다. 그간 쌓은 신뢰를 기반으로 정부나 기업, 시민 등 공급채널 다변화도 꿈꿔볼 수 있다. 

문 원장은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 육성으로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금융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서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의 흐름을 사회적 가치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책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인용하며 발제를 마쳤다. 

1960년 노동인민금고가 문을 열었을 당시에는 직원이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4반세기 동안 노동금고는 스페인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저축기관 중 하나로 성장했고, 몬드라곤 복합체를 강화시키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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