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어르신네 내 비록 배운 것 없고 가진 거 없는 종놈으로 태어났지만 의를 위해 죽는 데는 반상의 구별이 어실 거우다(없을 겁니다). 나, 나를 탐라 백성의 방패막이로 삼아 주십서.”
-문무병, <날랑 죽건 닥밭에 묻엉> 중
7일 ㈔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이 주최하고 신축항쟁120주년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수열, 송재호, 좌남수) 주관, 제주특별자치도 후원으로 제주 관덕정 광장에서 ‘장두 추모굿’이 열렸다.
관덕정은 120년 전 신축항쟁 당시 민군과 천주교민 간 충돌이 빚어진 비극의 현장이다. 장두 추모굿은 역사의 현장에서 민란의 세 장두인 이재수, 오재현, 강우백을 기리기 위해 준비됐다.
또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분을 뛰어넘어 화해와 상생을 기억하며 신축항쟁으로 희생된 모든 희생자를 위무하고 해원을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살아남는 자와 살아가야 하는 터전을 함께 치유하는 ‘상생의 굿’인 셈이다.
아울러 이번 추모굿 행사를 통해 지난 제주역사 속에서 잊혔던 소중한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제주의 공동체 정신과 자존을 지켜왔던 정신을 잇자는 취지가 담겼다.
추모굿은 초감제와 시왕맞이로 시작해 질치기로 마무리됐으며 제주큰굿보존회 서순실 심방이 집전했다. 초감제와 시왕맞이는 본래 따로 하는 것이지만 시간 상 ‘시왕맞이 초감제’로 엮어 진행됐다.
초감제는 신을 제청하는 의례이고 시왕맞이는 저승을 관장하는 시왕(十王)을 맞이하는 의례다. 질치기는 저승길을 닦아 영혼을 맞이한 뒤 이들을 위무하고 다시 저승길로 보내는 제차다.
막간을 이용해 추모공연으로 제주작가회의와 무용수 김한결, 소리꾼 문석범의 시낭송과 퍼포먼스, 가수 최상돈의 무대가 펼쳐졌다.
이번 추모굿은 장두교수형 집행일인 10월9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단계 격상 등으로 인해 이날 개최됐다.
한편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민중 봉기로 손꼽히는 신축항쟁은 그 성격이 사회적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제주천주교회는 종교적 박해라는 관점을 담아 교인과 비교인 사이에 빚어진 분쟁이라는 뜻으로 ‘신축교안’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