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협.
고기협.

지하수가 제주 미래세대의 생사를 가르는 갈림길에 들어섰다. 

유량이 풍부한 강이 없는 제주도는 생활용수의 84.0%와 농업용수의 95.1%를 지하수에 의존한다. 그러면서도 지하수를 화수분처럼 뽑아 쓰고, 지하수의 오염원차단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수자원관리종합계획에 의거해 지하수 함양량의 40.6%를 지속이용 가능량으로 설정하고, 16개 유역으로 구분해 지하수를 관리하고 있다. 그 중 애월·한림·한경·대정 등 6개 유역은 이미 취수허가량이 지속이용 가능량을 초과하였다. 특히 물을 많이 쓰는 농사철에는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지하수에 염분이 섞여 나오고, 물 부족으로 물 이용권을 놓고 농업인들 사이에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제주도청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의 질소질 비료 사용량은 2013년 18만7044톤에서 2019년 24만1806톤으로 6년 동안 29.3%가 증가하였다, 그 결과 단위면적당 화학비료 사용량은 육지부와 비해 250% 가량 높은 실정이다.  

숙성되지 않은 액비를 과다 살포하는 관행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발생한 가축분뇨 무단 방류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음에도 축산농가가 가축분뇨처리법 위반 행위로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2019년 11건, 지난해 7건, 올해 들어서도 8건에 이르고 있다. 

또한 중산간 난개발에 따른 지하침투식 개인하수처리시설도 2012년 6628곳에서 2019년 9189곳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화학비료의 남용, 가축분뇨·생활하수의 방출로 ‘화산섬 암반수’라는 청정 이미지를 지닌 제주 지하수가 몸살을 앓고 있다.더불어 살아 용솟음치는 푸른바다도 하얗게 죽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 제주도보건환경연구원이 도내 관정 134곳을 대상으로 모니터링 한 결과 지하수 오염이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산성질소 농도 평균값은 서부지역 6.2㎎, 동부 2.5㎎, 남부 1.5㎎, 북부 1.6㎎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정읍 28.3㎎, 한림읍 14.6㎎, 한경면 12.7㎎ 등 9곳에서는 질산성질소 농도가 먹는물 기준인 10.0㎎을 넘어섰다. 

지난해 제주지역 질산성질소 농도 현황. (사진=제주보건환경연구원 제공)
지난해 제주지역 질산성질소 농도 현황. (사진=제주보건환경연구원 제공)

한라산에 내린 비가 현무암층을 통과해 해안가의 용천수로 솟아나는 데는 평균 18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평균 2~3m 두께의 화산암반층이 시루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2000m에 달한다고 한다. 땅으로 스며든 빗물은 이 암반층의 틈을 따라 이동하면서 불순물이 깨끗하게 걸러진다. 연강수량의 40.6%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하수가 된다. 

도시가 팽창되고 시설하우스 면적(경지면적의 9.6% 차지) 등이 늘어나면서 불투수성 표면이 늘어나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지하수함양 비율은 2003년 46.1%에서 2018년 40.6%로 줄어들고 있고, 지하수 수위도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마을을 형성하고, 식수원, 정보교류의 장 등으로 기능했던 용천수가 말라가고 있다. 용천수 1025곳 가운데 661곳만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도내 지하수관정은 2019년 기준 4615개다. 그 중 농업용 관정이 3053개(공공용 891개, 사설용 2163개)이며, 생활용이 1421개, 공업용이 134개, 먹는샘물용이 7개이다. 

총 허가량은 연간 58만7076천㎥으로 그 중 농업용이 31만8420천㎥, 생활용이 25만9032천㎥, 공업용이 7932천㎥, 먹는샘물용이 1692천㎥이다. 연간 이용량은 총 24만4105천㎥으로 생활용이 14만8832천㎥, 농업용이 9만2222천㎥, 공업용이 1984천㎥, 먹는샘물용이 1067천㎥을 차지한다.

농업용이 총 지하수 관정수의 66.7%, 지하수 이용량의 37.8%, 허가량의 54.2%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농업분야에서 지하수오염원을 차단하고 지하수 사용량을 줄이지 않으면 지하수 보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농업용수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농업용수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도는 지난 2013년부터 관정의 토출구경에 따라 월 5000원~4만원의 농업용 지하수 원수대금을 부과하였다. 관정마다 이용량을 측정하는 유량계가 없었기 때문에 부과기준을 관의 구경으로 삼은 것이다. 공공관정에 대해서는 아예 요금을 부과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빗물이용시설 지원을 받고도 지하수를 사용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 결과 지하수사용량이 2015년 6만8316천㎥에서 2019년 9만2222천㎥ 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9월 29일 제주도물가대책위원회는 ‘지하수원수대금 부과체계 개선안’을 심의하였다. 개선안의 핵심은 2023년부터 농업용 지하수 원수대금을 공공·사설용 구분 없이 사용량에 따라 부과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업용 공공관정의 지하수 원수대금을 실제 사용자가 납부할 수 있도록 ‘제주도 수리계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현재 공공관정의 소유는 행정시·도, 농어촌공사 등이고, 사용은 수리계가 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기관이 원수대금을 납부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도는 농업용수 이용에 있어 지하수가 전체의 95.1%, 용천수 2.0%, 하수 재이용 1.9%, 저수지 0.6%, 빗물 0.4%로 지하수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사용량 기준으로 원수대금을 부담하게 하여야만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을 억제하고, 빗물·용천수 등의 대체수자원 활용을 유도할 수 있다. 도가 지하수 원수대금 부과체계를 개선하려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위원회는 농업인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농업용 지하수 사용량 원수대금을 톤당 2.23원 부과하려는 안을 발표하였다. 필자는 그 안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 단가로는 개선안의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톤당 2.23원이면 농업용 지하수 생산원가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그 요금으로는 지하수의 사용량은 줄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제주농업에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세대가 우리 농업인 때문에 우리처럼 깨끗한 지하수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지하수보전 차원을 넘어서 우리 농업인이 미래세대에게 보이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수대금 단가를 높게 책정해 대체 수자원 활용을 유도하여 지하수의 사용을 억제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농업인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보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농업용뿐만 아니라 염지하수를 비롯하여, 골프장용, 공장용, 가정용, 먹는샘물용 등 지하수의 용도별 요금도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 

지하수 오염원 문제도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화학비료, 농약의 사용을 지금의 수준에서 최소 1/2 이하로 줄여야 하고, 사육두수 총량제를 실시하여 축산폐수의 발생량을 원천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도 전체를 친환경과 GAP만 하는 ‘친환경농업지구’로 선포하여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가 있다. 세계사의 흐름 또한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등으로 자본의 시대에서 가치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제주농업도 돈을 쫓는 방향에서 제주만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먹거리를 파는 것에서 가치를 파는 농업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길을 농업인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동안 농업소득은 2000년 1090만원에서 2020년 1209만원으로 119만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농업소득은 꾸준히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농업인에게 무조건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친환경농업을 요구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말이다.

지하수를 살리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제주도민 전체가 친환경농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 구입은 물론 ‘돗 통시 문화’를 지금 시대에 맞게 계승하여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주 GDP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의 근간인 제주관광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문화, 생태의 특수성이다. 검은 돌담 안에서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감귤, 푸른 초원을 뛰어노는 조랑말 떼,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농경지, 제주농축산물로 만든 음식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쉼표를 제공한다. 하지만 자연과 농업의 매력을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관광은 농업과 수익을 나누지 않고 있다. 농업의 외부효과를 관광업계만 누리고 있는 것이다. 

외부효과로 얻은 소득을 외부효과를 낳게 한 농업계로 돌려주는 것이 공정한 사회이다. 필자가 지금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입도세 수입과 도가 운영하는 관광지의 수입은 전적으로 친환경직불금 재원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별하게 지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농업이 기여하는 만큼만 돌려달라는 주장이다.   

제주에서 친환경농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고, 기후위기가 코앞에 다친 지금  제주농업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주는 공멸의 길로 들어설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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