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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키워드 뉴스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

안녕하세요. 

윤/

오늘의 키워드 알아보겠습니다. <효과음>

1. 호적의 빈칸

조/

호적의 빈칸,입니다.

조/

호적이라는 말은 이제 법률에선 쓰이지 않고 2005년부터는 가족관계등록부라고 불리는데요. 우리가 보통 호구조사한다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사람들이 부모님은 뭐하시냐, 형제 자매는 있느냐, 이것저것 물어볼 때요. 국가가 이 호구조사를 진행하고 기록한 게 호적입니다. 바로 가족관계가 다 나와 있는 공문서입니다. 

고대 때부터 호적이란 게 있었다고 하는데요. 국가가 구성원들로부터 인력을 동원하거나 세금을 쉽게 거두려고 표로 작성하기 시작한 거죠. 이게 고려와 조선시대부턴 가족 내 신분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유교적인 가족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재산을 상속하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분란없이 재산 상속이 원활하게 이뤄지게 하는 데 호적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겁니다. 현대에 와선 신분확인이라는 게 호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됐죠. 

윤/

호적의 역사... 이 호적에 빈칸이 있다는 건 가족을 호적에 올리지 못한다는 의미?

조/

네. 지금은 가족관계등록 관련 시스템이 모두 전산화되어 있기도 하고 관련 부서가 체계화 되어 있어서 출생신고부터 혼인신고, 사망신고까지 바로 바로 하기가 쉬운데요. 호적을 수기로 작성하고 이걸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주4·3 당시엔 있는 그대로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4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선 제주4·3연구소가 증언본풀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행사 이름이 ‘나의 뿌리, 4·3의 진실-내 호적을 찾습니다’였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가족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거나 내 이름을 제대로 된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는 자리였습니다. 키워드처럼 호적에 빈칸이 있는 분들입니다. 

윤/

4·3땐 많은 분들이 희생당하고 행방불명되는 과정에서 혼인신고나 사망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

네. 오늘은 70년 동안 호적을 빈칸으로만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을 소개해드리고요. 또 호적 정리, 그러니까 가족관계 등록이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 4·3이라고 하면 최근 정부가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방안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요. 물론 배보상도 매우 중요하지만 오늘 말씀드릴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희생자와 그 가족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증언본풀이에 나선 분들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끌려갈까봐, “빨갱이의 자식”이라 낙인이 찍힐까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이 말들을 가시처럼 품은 채 살아오셨습니다. 

윤/

아버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시고 살아오셨다.

조/

네. 그렇습니다. 강순자 할머니는 지난 1948년 12월 어머니가 저녁밥을 짓고 있을 때 아버지 친구들이 불러서 아버지가 나갔다가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신엄리 자운당에서 집단 총살로 50여명이 희생됐는데 그 분 중 한 분이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재가를 하시고 강 할머니는 외할머니집과 외삼촌집에 잠시 같이 살기도 했는데요. 결국 혼자서 남의 집 아기를 봐주는 일을 하거나 육지로 가서 물질을 하며 연명했다고 합니다. 강 할머니가 이날 힘든 얘기도 웃으면서 하시다가 그 오랜 기간 홀로 살아오신 삶이 어땠느냐 묻자 아무 말씀 못하시고 겨우 참았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말보다 강 할머니의 눈물에서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고독했을까가 느껴져서 저도 울컥했는데요. 강 할머니는 “누구 자식이라고 잡아갈까봐 무서워서 가족들이 아버지 사진이나 흔적을 다 떼어서 태우고 어머니와 혼인신고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딸로 호적에 못 올리고 외삼촌의 호적에 조카로만 이름이 올라갔다고 해요. 

윤/

아버지와 강 할머니의 부녀 관계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이 없다. 

조/

네. 그 아버지는 장가도 가고 애기도 낳았지만 그런 일이 없는 셈이 된겁니다. 그래서 강 할머니의 마지막 하나 남은 소원은 아버지 딸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증언자로 나섰던 김정희 할머니는 정말 기구한 호적을 가졌습니다. 김 할머니의 아버지도 신엄리 원병이 쪽에서 총살당했는데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김 할머니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사망신고를 바로 하지 못했다가 군대 입대 영장이 나오면서 그때서야 사망신고를 했다고 해요. 그러고선 김 할머니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니까 호적이 필요한데. 할아버지가 가짜 아들을 만들어서 호적에 올려서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고 김 할머니의 출생신고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는 ‘가짜 남편’을 김 할머니는 ‘가짜 아버지’를 70년 동안 두고 살았던 겁니다. 

윤/

가상의 인물,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호적에 올린 거군요. 

조/

김 할머니의 어머니는 지난해 ‘혼인무효 소송’에서 승소를 했고 김 할머니는 아직까지 ‘가짜 아버지’의 딸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김 할머니는 어머니가 젊었을 적 동네 사람들로부터 헛개비 남편이랑 살고 있다며 많은 수모를 당했다고 서러워 하셨습니다. 그 설움을 씻을 수 있게 꼭 가족관계가 제대로 정리되기를 바라셨고요. 마지막 증언자로 나선 오연순 할머니는 지난한 소송 끝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게 된 사연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오 할머니의 아버지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광주형무소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이웃마을로 재가하면서 오 할머니는 출생신고도 못했다고 합니다. 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 사촌의 딸로 겨우 호적에 올릴 수 있었는데요.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나서 공직에 있던 남편에게 피해가 갈까봐 아버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이 사연을 알게 된 남편분이 “돈이 많이 들어도 꼭 소송을 해서 호적 정리를 하라”며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오 할머니는 형무소에서 아버지와 같이 지내던 분과 성산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던 분들을 찾게 돼서 결국 소송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5년이 넘는 기간 패소와 항소를 거치며 마침내 지난 2019년 아버지는 오원보, 어머니는 김무옥인 것을 확인 받았다고 합니다. 

윤/

쉽지 않은 소송이었을 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오연순 할머니처럼 호적을 바로잡는 일이 쉽게 이뤄지진 않고 있죠. 

조/

네. 오 할머니는 호적을 정리하는 소송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완전 피눈물이 났다”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처음엔 4·3특별법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호적 정리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고도 하고요. 청취자분들께서도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일에 대해선 아예 관심을 갖지 못했거나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이게 말씀하신 것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진행자님 말씀처럼 오 할머니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물론 5년이라는 오랜 기간 어렵게 소송을 하셔서 얻어낸 결과이긴 하지만. 아버지를 기억하던 분들, 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

게다가 이게 70년도 넘게 지났잖아요.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기도 했고요. 

조/

네. 그냥 제가 혼자 가서 “내 가족관계가 잘못 돼 있으니 고쳐 달라”라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잘못된 부분, 그리고 올바른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록이 존재해야 하는데. 70년이나 지난 지금 사람도 기록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증언해줄 사람이나 기록을 찾는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가족관계를 정정하는 일은 대법원의 소관 업무이거든요. 연세도 많으신 유족분들 개개인이 직접 소송 관련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나마 법원에서 4·3과 관련해 가족관계를 정정한 사례는 희생자의 제적부가 있는 경우입니다. 사망기록이 없는 희생자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사망기록을 작성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희생자의 사망 일시와 장소를 정정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희생자 신고를 하는 절차처럼 4·3에 한해서는 단순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족이 가족관계 정정 신청을 하면 그 이후 절차부터는 행정에서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윤/

이번에 개정된 4·3 특별법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내용이 있나요.

조/

12조에 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이라는 조항이 있는데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거나 기록을 정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위원회의 결정’이라는 부분이 어디까지 권한이 주어지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는 상황입니다. 제주도는 이 문제와 관련해 유족 의견을 듣기 위해서 특별전담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차례 회의를 ㅌ오해 유사입법 사례를 분석하고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이 필요한 사례를 분류해오고 있습니다. 또 제주도는 행정안전부나 법원과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계속해서 4·3이 굉장히 특수했던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을 들며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이나 작성이 필요한 점을 강조하고 있고 신청권자를 희생자와 유족으로 한정된 것을 이해관계인까지 확대하는 것을 건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

가족관계를 정정하는 일은 사실 상속 문제와도 얽혀있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말씀하셨듯 4·3의 특수성을 고려해 희생자분들의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다음 키워드 알아보겠습니다. <효과음>

2. 특수배송비 결정권

조/

특수배송비 결정권,입니다.

윤/

특수배송비라면 우리가 택배 주문할 때 붙는 요금. 

조/

네. 제주도에서 물건을 부치거나 물건을 주문할 때 배달 비용에 따라붙는 도선료라는 게 있는데요. 주로 선박으로 물건을 운송하게 되면 그 배를 도선해주는 대가로 도선사에게 지불하는 돈입니다. 이 특수배송비를 제주도민이 직접 결정하는 조례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오늘 오전 진보당 제주도당이 제주도의회 의사당 1층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서 택배 표준도선료 조례안을 주민발의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펼친다고 알렸습니다. 물건을 주문할 때 특수배송비가 어떤 데는 1500원, 어떤 데는 3000원, 어떤 데는 4000원까지 붙는데요. 이 비용을 일단 대폭으로 인하하고 단일하게 적용하자는 겁니다. 

윤/

그런 요구는 수년 전부터 계속 있어왔습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이지만 제주도 내 농산물을 출하하는 농민이나 소상공인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죠. 

조/

네. 이날 도당은 “부당한 택배 도선료가 불거진 지 4년이 됐고 도민이라면 누구나 불합리한 도선료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해준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며 “도민보다 재벌의 돈벌이가 더 우선이었고 힘은 있지만 의지가 없었다”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할 수 있으면서도 기업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건데요. 도당은 이어서 “우리 당은 도민이 직접 결정하는 ‘표준 도선료 제도’를 도입하기로 방향을 정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도민이 도선료를 책정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조/

네. 이날 도당이 설명한 조례안을 살펴보면 도지사가 표준 도선료 책정과 관련해 전반적인 사무와 정책을 집행하는 책임을 가진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고요. 또 도선료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표준 도선료 산정위원회를 구성하며 운영하는 데 여기에 전문가와 함께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 조례를 주민발의로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주도 실무 부서와 협의를 거쳤는데, 제주도 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도당은 대표자 증명서를 공식 발급받는 등 서명운동을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윤/

현재 서명이 진행되고 있는 거네요. 

조/

네. 일단 도내 아라동이나 연동 같이 주민이 많은 동 지역을 중심으로 모두 19개 지역을 1차 서명운동 지역으로 선정해서 진행하고 2차로 도내 모든 지역으로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입니다. 서명운동은 사람들 통행이 많은 길거리와 대형마트 앞, 대형병원 앞 등과 노동현장 12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윤/

주민이 조례를 발의하려면 1012명의 서명이 필요하죠. 

조/

네. 도당은 여기에 대해 제주도민들이 워낙 바래오던 사항이기도 하기 때문에 1012명을 훌쩍 넘는 서명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례가 발의돼서 도의회에서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실효성인데요. 일단 택배 운송 기업이 대부분 대기업이잖아요. 그래서 이들에게 강제적으로 표준 도선료를 도입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점입니다. 만약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거나 페널티를 줄 수 있는 벌칙 조항 같은 건 이 조례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윤/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까지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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