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다]차 없는 이들에게 도보소득을①

'성큼!!' 보행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제주를 위해.(사진=박소희 기자/픽사베이)
'성큼!!' 보행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제주를 위해.(사진=박소희 기자/픽사베이)

# 정실마을 가로수길이 사라진다고?

지난해 제주시에서 '가장 걷고 싶은 가로수길' 사진전을 공모했다. ‘월정사 가는 길’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월정사는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하고 있다. 정실마을 입구다. 가로수 터널이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하지만 이 정실마을 길(아연로)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제주도가 구실잣밤나무와 벚나무길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의 차도 폭을 넓히는 공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체증이 명분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차량 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는 도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주변 땅을 매입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비자림로에 이어, 제주시가 최우수상을 준 ‘가장 걷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 속 월정사-정실마을 길 풍경도 사라질 위기이다.(관련 기사☞제주 '정실마을 벚꽃터널' 사라지나)

제주시에서 공모한 '가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월정사 가는 길'. 제주도의 도로확장 공사 계획으로 인해 가로수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질 위기다.(사진=제주시 제공)
제주시에서 공모한 '가고 싶은 가로수 길' 사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월정사 가는 길'. 제주도의 도로확장 공사 계획으로 인해 가로수 구실잣밤나무들이 사라질 위기다.(사진=제주시 제공)

# 도로 넓히며 없애버린 가로수 1만 그루

민선 6기 원희룡 제주도정은 급증한 자동차로 인해 교통혼잡이 심화하자, 대중교통 체계를 개편하면서 제주시청 사거리(광양사거리)와 제주여고 일대 도로 폭을 확장했다. 버스 중앙차로제를 도입하고 일반 차도 확보를 위해 도로 폭을 확장하며 보행자가 다니는 인도 폭을 줄였다. 그와 함께 가로수도 베어나갔다. 자동차 이용의 편리를 위해, 보행자의 보행권을 침해했다.

제주도가 대중교통 체계 개편 당시 도로를 확장을 하면서 잘라내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은 가로수가 1만 그루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항로를 넓히며 '정리한' 가로수만 8000그루가 넘는다. 이로 인해 보행자들은 여름철 뜨거운 햇빛을 가려줄 그늘을 잃었다. 차가운 도시 공간에서 푸르게 자라난 가로수가 주는 정서적·심리적 위안도 잃었다.                    

공항로 가로수 이설 현장(사진=제주도 제공)
공항로 가로수 이설 현장(사진=제주도 제공)

# 위태로운 보행자

신제주 이마트가 있는 블록 남쪽 교차로. 자동차 이동량이 많고 보행자도 많이 걸어 다니는 곳이다. 그러나 보행 안전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다. 제주시는 보행자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건축허가, 사용승인을 내줬다.

이 길을 지나다니는 보행자들은 건물 처마 밑을 따라 걷다가 끝에 이르면 차도로 내려서야 한다. 보행자들은 매일 같이 위험에 노출된 길을 걸어다닌다.(관련 기사☞[단독]보행자 안전 뒷전...제주시 건축·건설 행정

신제주 이마트가 있는 블록 남쪽 교차로. 제주의 보행자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신제주 이마트가 있는 블록 남쪽 교차로. 보행자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보행권 논의 없는 제주...부산시의 경우는?

위 세 장면은 넘쳐나는 자동차로 제주도민이 보행권 침해를 받고 있는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제주의 보행자는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걷는 동안 땡볕을 피할 가로수 그늘을 잃었다.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도민의 보행권 보장을 위한 방안이 절실하다.

원희룡 도정의 대중교통 개편으로 수 많은 가로수를 잃은 지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보행권과 관련된 논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타 지차제는 보행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부산시의 사례가 눈에 띈다.

부산시는 2019년 9월 보행권리장전을 선포했다. ‘보행권 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등과 함께 보행권리장전을 마련했다. 많은 공을 들였다. 여러 차례의 토론회와 설문조사, 숙의 과정을 거쳤다. 부산시는 이런 산고 끝에 보행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세 가지 기본원칙(총론)을 제시하며 10가지 실천과제(세부지침)을 내놓았다. 기본원칙(총론)은 다음과 같다. 

1 보행권은 인간 생활의 기본권이며, 누구나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2 보행자는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건강을 지키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3 보행로는 어디든 연결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시 보행권리장전의 기본원칙은 보행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강조하고 있다. 보행자의 권리를 명확히 한 뒤에야 보행권 확보를 위해 제대로 제도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보행권리장전과 함께 장애인 등 보행 약자 이동권 확보를 위한 대책도 발표했다. 장애인 보행 밀집지역 130곳에 110억원을 투입해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역 사회에서 110억원의 예산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보행자 권리 보호를 위한 선언적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제주도에 비한다면 부산시의 태도는 큰 귀감이 된다. 제주도민의 보행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주도 보행권리장전’이 필요하다.

#보행자에 대한 인식 '대전환' 필요...'뚜벅이'는 '환경자산'이다

자동차 수 증가는 교통사고와 공해, 주차 문제로 인한 거주환경 악화, 도로 신설로 인한 녹지공간 파괴 등을 야기한다. 자동차 없이 두 발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뚜벅이’들은 그러한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 증가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사회의 전환을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환경 문제에 취약한 제주도는 보행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뚜벅이’들을 지켜야 할 '환경자산'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동자 수 증가로 인한 보행환경 악화는 '뚜벅이'들에게 자동차 구매의 압력으로 작용하며, 또 다시 자동차 수 증가로 이어진다. 부작용은 그만큼 더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보행권을 적극 보장하는 방향의 도시계획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제주형 보행권리장전을 마련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부산시의 보행권리장전을 참고하되, 제주에 맞게 주민참여 방안을 더 강화해야 한다. '뚜벅이'들을 '환경자산'으로 인식하고 '보전'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부산시 보행권리장전의 기본원칙(총론)과 실천과제(세부지침)이다.

기본원칙(총론)

1 보행권은 인간 생활의 기본권이며, 누구나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2 보행자는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건강을 지키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3 보행로는 어디든 연결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실천과제(세부지침)

1 보행자는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2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 모든 보행로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적용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개·보수 및 신설되는 모든 보행로에 적용한다.
3 보행로는 차로에 우선하여 최대한 넓고 안전해야 하며, 도시공간으로서의 보·차도는 보행을 증진 하는 방향으로 조화롭게 조성해야 한다.
4 보행자는 건강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고, 공공영역이 주는 쾌적함을 누리면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5 보행자는 자동차 등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보행안전을 위해 필요한 시설물의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
6 보행자는 보행권을 보장받고, 보행환경 증진을 위해 다음 내용을 요구할 특별한 권리가 있다.
① 대기오염이나 소음 발생을 최소화하는 공공교통 체계의 도입
② 쾌적한 보행환경을 위한 도시공간 정비 및 공원 조성
③ 장애인·노인·임산부·어린이 등 이동약자들을 고려한 효과적인 도로·교차·속도·신호 체제의 기준 제정과 준수
④ 차량과 보행자 간의 연계 및 이용 편의를 위한 조치
⑤ 국내외 여행과 보행 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는 매력 있는 보행환경 조성을 위한 조치
⑥ 보행불편 구간 및 시설 발견 시 개선을 위한 조치
7 부산광역시는 보행 편의 및 저탄소·녹색 환경 조성을 위해 도심 그린웨이(녹색길)를 확대하고,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해야 한다.
8 부산광역시는 보행자 및 보행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교통환경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9 부산광역시는 ‘걷기 좋은 도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추진 상황을 주기적으로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10 부산광역시와 시민은 보행권 확보를 위해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을 준수하고, 보행 실태조사 등 이에 필요한 사항은 조례로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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