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콩으로 만든 장. (사진=플리커닷컴)
푸른콩으로 만든 장. (사진=플리커닷컴)

푸른빛을 띤다고 해서 ‘푸린콩’, 계란과 같은 타원형이라고 해서 ‘독새기콩’, 장을 담글 때 쓴다고 해서 ‘장콩’이라고 불리는 제주에서만 재배되는 푸른콩을 아시나요?

제주에서 콩은 보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다. 제주토양은 화산회토가 대부분이라서 화곡류 재배가 힘들었다. 조상들은 똥돼지를 키우고, 해초를 캐어 거름을 만들어 토양에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는데 살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콩과작물은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하여 공중질소를 고정해, 10평당 약 1kg의 질소비료를 만들어낸다. 콩과작물은 질소비료를 주지 않아도 비교적 잘 자라고, 콩을 심었던 밭은 보리도 잘 된다. 따라서 보리가 주곡이었던 제주도에서는 보리-콩 이모작 체계가 전통적인 작부체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감귤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고, 화학비료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콩 재배면적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수입자유화 조치로 이전엔 90%에 달했던 콩 자급률은 2020년 7%까지 떨어졌다. 생산비가 우리나라의 1/8도 안 되는 미국산 대두를 수입하면서 콩 농사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주로 재배했던 콩은 푸른콩과 준저리콩이었다. 준저리콩은 알맹이가 잘아 콩나물용 콩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풍산·신화·아람콩 등과 함께 제주가 콩나물용 콩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장콩인 푸른콩은 수입산 대두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다행히 2013년 푸른콩된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서 푸른콩 재배가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현재 푸른 콩은  약 100여 농가가 50ha 정도를 재배하고 있다.

콩의 원산지는 두만강 유역의 만주와 한반도이다. 두만강은 ‘콩으로 가득 찬 강’이라는 뜻이다.  재배역사도 우리민족이 형성되는 BC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콩은 지금도 된·간장, 콩나물, 두부, 두유의 원료로 우리 식생활의 한 축을 담당한다.

제주 푸른콩. (사진=플리커닷컴)
제주 푸른콩. (사진=플리커닷컴)

푸른콩은 제주가 고향인 토종종자다. 토종종자는 농민에 의하여 수 천 년 동안 선발되어 내려오면서 그 지역의 기후풍토에 가장 최적화된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종자를 말한다.

인간은 농업을 시작하면서 개체선발을 통해 품종개량을 하고, 가장 좋은 품종의 작물만을 경작지에 심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품종만을 재배하는 단작으로 농업형태가 굳어졌고, 이는 재배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극도로 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거의 같은 유전형질을 갖는 품종을 대량으로 재배하면서 작물들은 특정 질병에 취약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생긴 대표적인 비극이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아일랜드 전역에 단일 품종의 감자만을 심은 결과 감자역병이 전 국토에 만연하자, 식량부족으로 백만 명이 죽고 백만 명이 해외로 이주했던 것이다. 

독일의 생물다양성-기후변화 연구센터와 젠켄베르크 자연과학협회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2080년까지 84%에 달하는 ESU(Evolutionary Significant Unit, 유전체 내에서 진화적으로 의미 있는 단위)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종종자는 우리의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양배추, 양파, 무, 당근, 브로콜리, 감귤류 등 제주의 주요작물 뿐만 아니라 단호박, 초당옥수수 등 재배면적이 급등하는 작물들은 대부분 제주 밖에서 도입되었다. 그러다보니 도입 작물은 원천적으로 생육환경이 맞지 않아 비료와 농약을 많이 필요로 한다. 비료와 농약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서도 제주환경에 적응한 토종종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어릴 때 콩을 꺾고 참깨를 털었다. 그러면서 종자는 튼실한 놈들을 골라두었다가 쓴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농민들은 종자는 당연히 구입하는 것으로 안다. 그 사이에 종자주권이 농민에서 종묘회사로 완전히 넘어간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음 대에 싹이 나지 않는 터미네이터 종자와 매년 종자를 바꾸어야 하는 F1종자를 만들어 낸다. 그러다보니 파프리카 씨앗 1g이 금값의 2.5배가 넘는  12만원을 호가해도 구입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토종종자는 농민이 재배한 것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살 필요가 없다.  

보호차원에서 토종종자 보존운동을 아무리 전개해도 토종종자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토종종자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토종종자로 생산한 농식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수익을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푸른콩 된장의 성공여부는 토종종자의 부활에 있어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푸른콩은 제주 토종종자이다. 비료를 덜 써도 되고, 지력증진에 도움이 된다. 푸른콩 된장은 제주만의 방식으로 만든다. 거기다 맛의 방주에도 등재되었다. 푸른콩 된장은 생태적 가치와 제주가치가 결합된 세계적인 상품이다. “제주 바람이 키워낸 유기농 콩으로 제주 할망이 만든 푸른콩 된장”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가치를 파는 것이 푸른콩을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푸른콩으로 제주 들판이 푸르러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딸들아!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들이 푸른콩 된장을 아빠처럼 즐겨 먹어야만 해!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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