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심인요양원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황선숙(61) 씨를 18일 자택에서 만났다.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 심인요양원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황선숙(61) 씨를 18일 자택에서 만났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해 제주도로 이주해 제주시 노형동 심인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한 황선숙(61)씨는 7월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사측 통보를 받았다. 입사 당시 “몸만 건강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 던 원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1년 만에 직장을 잃게 된 것.

“원장과 대표이사가 저를 불렀다. 1년 계약이 만료됐으며 연장은 없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일회용처럼 버려질 줄 알았으면 업계 관례인 1년 근로계약서에 쉽게 서명하지 않았을 건데, 제가 ‘단두대’에 오를 줄 그땐 몰랐다.”

# 어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듯 우리의 해고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황 씨가 지난 4월 노조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작 1년 일했지만 입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퇴사 압박을 당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했다. 언제 어떻게 원장 비위를 거스르게 될 줄 몰랐다. 원장 눈에 잘 들면 월급이 올랐고, 원장 눈 밖에 나면 직장 내 갑질이 시작됐다. 성실한 사람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 문화. 옆에서 황 씨의 말을 듣고 있던 A씨가 말을 보탰다. 

“심인용양원에서 5년 간 일하는 동안 10명도 넘는 사람들이 회사를 나갔다. 자발적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노인학대 누명을 씌우는 등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가령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은 요양원 안을 배회하기도 한다. 한 어르신이 복도로 나갔다 문이 닫혔는데, 어르신 담당자가 눈 밖에 난 요양보호사였다. 이를 본 원장은 어르신을 내쫓고 문을 닫았다며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했다.”

징계위가 열리면 노동자는 소명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해당 요양사는 징계위가 열리지 않도록 ‘자진퇴사’를 했다. 

A 씨는 “징계위가 열리면 이직 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크다. 해당 요양사는 겁이 나니까 자진 퇴사를 선택했는데 이걸 ‘자진’이라고 해야 하나. 사측이 나가라고 한 적은 없으니 사회는 해고라 부르지 않고,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것은 아니니 ‘자진’도 아니다. 사측의 치사함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상 쫓겨난 노동자들을 따로 부르는 말이 있는 지 모르겠다. 없으니까 구제 받기가 이리 힘든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제주시 노형 소재 심인요양원 전경(사진=박소희 기자)
제주시 노형 소재 심인요양원 전경(사진=박소희 기자)

# 지노위는 노동자 편이 아니었다
황 씨는 지난해 8월 5일 심인요양원에 입사했다. 바지런한 성품이라 동료나 관리자로부터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자신의 계약 만료가 부당하다 여긴 황 씨는 8월 17일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 행위 구제신청을 넣었다. 입사 당시 사측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근로계약 갱신이 보장 된다고 약속했고, 계약 종료 이유인 정년 초과 역시 황 씨는 납득이 힘들었다. 만 60세 이상 나이로 입사한 동료도 있었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계약 갱신이 돼서다.

사측 입장은 달랐다. 계약기간을 1년(2020년 8월 5일~2021년 8월 4일)으로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했고 “황 씨의 근무태도가 지극히 불량하고 불성실해 더 이상 근로계약 갱신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계약기간 만료를 통보했다”고 맞섰다. 심인요양원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사용기간 중 근로자의 태도 능력과 자질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식 채용이 거부되며 근로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 라고 명시돼 있다. 

17일 심인요양원 원직복직 10리길 행진을 마치고 해고자 발언을 하고 있는 황선숙(61) 씨. (사진=박소희 기자)
17일 심인요양원 원직복직 10리길 행진을 마치고 해고자 발언을 하고 있는 황선숙(61) 씨. (사진=박소희 기자)

심인요양원 운영규정을 살펴보면 직원 정년의 경우 원장은 65세로, 나머지 정원 즉 사무국장·생활복지과장·간호사·물리치료사·요양보호사 등의 정년은 모두 만60세로 정하고 있다. 단 대표이사 또는 시설장은 근무평가 성적으로 직원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동료 A씨는 “심인요양원은 4개의 동으로 나뉘어서 운영되는데, 저랑 황 씨는 같은 동에서 일했다. 팀의 합이 워낙 잘 맞아서 가장 일 잘하는 동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해고 사실을 전해 들은 한 어르신은 황 씨를 붙잡고 아쉽다며 울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심인요양원 측은 근로계약 갱신 보장도 약속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노위 심의과정에서 “갱신 보장을 약속한 바 없다. 설령 했다고 하더라도 의례적으로 격려 차원에서 했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갱신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맞섰다. 

운영규칙은 사업장내 규칙으로 관행도 운영규칙으로 인정한다. 동료 A씨에 따르면 계약 갱신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황 씨도 “건강만 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들었던 터라 당연히 몸이 성할 때 까지 일을 할 줄 알았다. 

황 씨는 “10월 15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정도 심의를 진행했던 것 같다. 위원회 5명이 사측에 질문을 하는데 제법 따갑게 했다. 그 과정에서 사측 노무사가 ‘1년 계약이 종료돼서 짜른 게 무슨 잘못이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지노위는 사측에 손을 들어주더라”며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지노위는 △황 씨에게 근로계약 갱신대기권이 인정되는 지 여부 △사용자가 갱신을 거절한 것에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는 지 여부 △해고 통보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지 여부 이상 3가지를 주요 쟁점으로 보고 심의를 진행했다. 

지노위는 근무평가에 따른 계약 갱신 여부는 사용자의 고유한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심인요양원측 갱신 거절 행사가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노조의 자율적 운영과 활동을 간섭하거나 방해한 정황이나, 조합 탈퇴나 분열을 조장한 사실도 입증되지 않아 계약 만료 통보를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납득할 수 없던 황 씨는 중앙노동위에 재심신청을 진행 중이다. 

심인요양원 원직복직 10리길 행진 모습. (사진=민주노총 제주본부)
심인요양원 원직복직 10리길 행진 모습. (사진=민주노총 제주본부)

# 43명중 13명 노동자가 심인요양원을 나가다 
이세영농조합법인(대표 홍태훈)은 2013년 1월 15일 설립해 요양업을 운영하는 조합으로 산하에 심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43명 노동자가 상시 근로를 하고 있으며 지난 5개월 사이 13명의 노동자가 이곳을 그만두거나 쫓겨났다.

이중 7명은 정년 초과(60세 이상)를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당했고, 60세 미만이던 1명은 시말서 작성을 거부하다 계약 연장을 못했다. 가장 먼저 복직 투쟁에 나선 요양보호사는 노인학대로 신고 당해 자신의 무고를 호소하는 중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5명은 차라리 퇴사를 선택했다. 

동료 A씨는 “제 눈 밖에 난 노동자를 하루 아침에 잘라버리거나 직장갑질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전횡은 거의 모든 요양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인요양원 요양보호사 대량해고 사태는 도내 요양원 전반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심인요양원의 경우 몇몇 노동자들이 단결해 해당 사건을 수면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원장과 관리자가 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황 씨는 회사를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심양요양원 앞에서 출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그간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었다.

하루 전인 17일 원직복직을 외치며 제주도청에서 심인요양원까지 4㎞를 걷기도 한 황 씨. 그는 “회사에겐 제가 쓰다 버려도 되는 일회용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딸이다. 사람을 플라스틱 취급하는 치들을 혼내주고 싶다.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끝까지 가보고 싶다. 직장 내 갑질로 노동자 줄세우기 하던 원장이 직에서 물러났다고 현재 심인요양원 노동환경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사실상 원장 뒤에 이사들이 있고, 관리 이사의 전횡은 더 심해졌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 같다. 따라서 나의 연내 복직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60살 넘으니까 웬만한 건 무섭지도 않다. 일면식도 없는데 같이 걸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오히려 즐거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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