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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벌의_제주비상] 모두를 위한 밥상, 먹거리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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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벌의_제주비상] 모두를 위한 밥상, 먹거리 기본권
  • 강종우
  • 승인 2021.11.18 2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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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제주다운 푸드 플랜(Food Plan)을 수립하자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우리 집이 친환경 먹거리를 선택한 까닭

오래전 일이다. 큰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 애 엄마는 매일매일 조바심에다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몹쓸 아토피. 왼종일 긁다 지쳐 그나마 들었던 잠결에서조차 손톱질을 멈추지 못했다. 살갗이 문드러져 피떡이 된 모습에 무심했던 필자마저도 진저리치다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만큼 딸애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족 모두 신경이 예민해졌다. 무심코 한 사소한 군것질에도 예의 가려움증이 도지다 보니, 오죽하면 슈퍼를 하던 할머니한테도 발길이 멀어질밖에. 못내 서운했지만 어쩔 도리 없었다. 프로폴리스야 상비약이고 필자에겐 생소한 풍욕이나 야채스프 같은 자연치유 처방까지. 아토피에 좋다 치면 이거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자연 우리 집은 친환경 먹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을 고를 때도 어떤 식자재를 쓰느냐가 최우선 기준. 그런 엄마의 분투(?)에다 두 살 터울 작은 놈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천만다행으로 친환경 급식으로 바뀌면서 딸애 얼굴에 그나마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이가 활기를 찾아가면 갈수록 필자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돈이 된다 싶어 친환경 농업을 부르짖는다 여겼지, 속으론 ‘먹거리 귀족’이라 비아냥댈 만큼 온통 불편한 심기로 가득했던 것. 정말 이건 건강, 아니 그보다 더한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 후 소비생협입네 로컬푸드입네 하며 이곳저곳 누비곤 했더랬다. 그때 만난 한 선배에게 이 얘길 건넸더니 “애가 널 ‘철들게’ 한다”며 놀려대서 서로 맞장구치며 한바탕 웃기도 했다.       

문턱없는 밥집 (사진=강종우)
문턱없는 밥집 (사진=강종우)

‘마음껏 먹고 형편껏 낸다’ - 문턱 없는 밥집

코로나로 한동안 가보지 못했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유기농 식자재만 내놓는 식당,  ‘문턱 없는 밥집’. 이름처럼 여느 식당과는 사뭇 다르다. 이 곳 밥값은 단돈 '천원'. 누구나 부담 없이 형편껏 낸다.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배려다.

싼 게 비지떡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음식재료를 보면 곧 생각이 바뀐다. 식재료는 변산공동체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유기농 채소들. 나머지 재료들도 생산이력을 공개한다. 이곳 점심메뉴는 오로지 한 가지,  ‘비빔밥’ 이다. 갓 상경(?)한 싱싱한 제철 재료들과 인공 조미료하나 없는 천연유기농 반찬을 각자 먹을 만큼 덜어 비벼 먹으면 된다. 반찬이나 밥은 셀프. 배고프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덕분에 건물관리인, 우유배달원, 청소아주머니처럼 점심값조차 부담스러운 주변이웃들이 단골이다. 말 그대로 ‘문턱없는’ 밥집이다. 

지켜야 할 단 하나. 음식을 절대 남겨서는 안된다. 자신의 음식그릇은 물로 깨끗이 행궈 마셔야 한다. 주위를 쓱쓱 둘러보면 숭늉에 절임 무까지 곁들여 밥알 한 톨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발우공양처럼 싹싹 비우고 일어나야 한다. 불가피하게 생기는 잔반(殘飯)은 지렁이 화분을 이용해 퇴비로 재활용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지구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 문턱없는 밥집은 그렇게 움직인다.

도대체 돈은 어떻게 벌까? 늘 적자인 점심을 만회하기 위해 저녁에는 푸짐한 밥상이 제공된다. 한정식 메뉴와 간단한 술안주를 파는 영업(?)이다. 물론 식재료는 100% 유기농. 변산공동체를 비롯해서 한살림이나 두레생협 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공급된다. 유기농 농가를 지원하고 확대하는 역할도 병행하는 것. 이처럼 도시서민과 농민들의 연대가 결국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만드는 든든함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다!’... 브라질 어느 도시 이야기

벨루오리존치 시. ‘아름다운 지평선’이라는 뜻을 가진 브라질 남동부의 도시다. 많은 도시들은 기아와 영양부족 문제를 사후처방과 시혜적 방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벨루오리존치 시는 이런 접근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굶주림은 ‘식량에 접근할 기회’가 부족한 탓이고, 이는 ‘시장 실패’때문이라 생각한다. 식량의 총량은 시민 모두의 배를 채우고도 남는데 일부에게 식량이 쏠리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배고픔의 원인을 식량부족이나 개인의 불성실함에서만 찾을 수 없다.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다. 아니, 당장 끼니가 모자라는 이들에겐 ‘폭력’이나 다름없다.

원인이 그렇다면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이들은 식량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건강과 교육, 복지와 마찬가지로 필수재 차원에서 접근한다. 시민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공공재라는 것. 바로 ‘시민식량권’이라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벨루오리존치 시는 식량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민중식당’이 대표적. 시가 직영하는 민중식당은 시중가의 절반 아래로 하루 1만4000여 명의 시민에게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제공이 가능한 건 정부의 지원도 있지만 직거래 방식으로 지역 농산물을 식자재로 사용하기 때문. 이곳에선 가난하든 부유하든 이방인이든, 누구나 공짜 혹은 싼값에 밥을 먹을 수 있다. 

또 벨루오리존치 시는 ‘기초식량바구니 프로젝트’도 운영한다. 1개월분의 기본적인 22개 가구소비품목으로 구성된 바구니를 매주 또는 격주 간격으로 저소득층에게 판매하는 사업이다. 이 또한 시장가격의 절반 정도다. 이밖에도 학교급식 프로그램, 푸드뱅크, 그린푸드 바스켓, 농산물 직거래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의 식량권 보장정책도 시행된다.

경기도 먹거리 기본권
경기도 먹거리 기본권

먹거리기본권, 포용적 복지로 다가가는 첫 걸음

벨루오리존치시를 본받으려는 노력은 우리에게도 이어졌다. 평택 로컬푸드. ‘평생평소(平生平消)’를 기치로 시민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다. 평택지역의 영유아와 어린이 보육시설 350곳에 머무는 아이들은 대략 1만5000명. 시는 2015년부터 이들 영유아를 대상으로 지역 농산물로 만든 안전한 급식을 우선 공급하되, 차츰 노인층으로 식량권의 대상을 넓혀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평택푸드의 지향점은 세 가지. 가치 있는 먹거리, 풍요로운 생산자, 건강한 소비자다. 가장 신뢰받을 수 있는 가치 있고 건강한 먹거리의 원천은 어디인가.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우리 가족과 이웃이 생산해서 먹는 농산물이다. 지역 내 생산·소비의 연결을 통해 생산자의 풍요도 보태줄 수 있다. 이 3박자의 조화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재생을 기대한다.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필수품이다.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며, 농민은 정당한 이익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경기도에선 2018년 ‘먹거리 기본권 전략’을 수립했다. 안전하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민 먹거리 보장을 위해 ‘공정, 지속, 건강, 연결’을 핵심가치로 지역농업과 연계한 4대 전략, 12개 과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제주도 마찬가지. 먹거리 돌봄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취약계층은 영양섭취가 불충분한데다 코로나19 이후 식품비도 감당하기 버겁다. 건강에도 영향이 크다. 한 조사에 따르면 도민 전체의 아침결식률이 46.5%, 이중 20대의 결식률은 85%에 달한다.

올 초 한살림제주소비생협을 주축으로 지역사회에서 먹거리보장을 위한 조례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에서도 먹거리 공공성 강화, 도민 기본 먹거리 보장, 지속가능한 지역 먹거리체계 구축이 필요한 시기다. 마침 지난해부터 ‘제주 푸드플랜’도 서두르는 마당에. 먹거리기본권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덧붙이며) 필자 또한 중앙성당 앞에서 ‘자활식당’을 운영했더랬다. 달셋방에 살면서 라면과 술로 끼니를 때우던 중장년 남성 참여자들이 안쓰러워서다. 하루걸러 육류나 생선이 나왔다. 식재료는 모다 동문시장에서 에누리해가며 조달했다. 이삼천 원만 내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그러다보니 반찬 싸달라 보채는 바람에 티격태격하곤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움은 오래도록 남는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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