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선흘분교 수업 마지막날, 볍씨 아이들에게 음악 선물을 전해주고 있는 선흘분교 6학년 학생들과 볍씨학생들의 모습.(사진=볍씨학교)
지난 11월 29일 선흘분교 수업 마지막날, 볍씨 아이들에게 음악 선물을 전해주고 있는 선흘분교 6학년 학생들과 볍씨학생들의 모습.(사진=볍씨학교)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형들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 그 형들이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야구를 하던 낯선 세 명의 형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아는 것이 없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그때 당시 교복과 덩치를 떠올려보면 옆 고등학교 형들이었을 것이다. 형들 모두 즐겁게 야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다리를 절었다. 그때 당시 우리학교 안에는 중고등학생 형들을 무서워하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나와 친구들은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우리는 용기 내서 형들에게 다가갔다. 그 형들은 우리의 걱정과 달리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날부터 학교를 마치고 난 뒤에는 그 형들과 같이 야구를 하는 것이 우리의 짧은 일상이 되었다. 동네 거친 형들과 달리 그 형들은 무척 편안했고 한 두 살 차이를 넘어선 동네 큰 형들과의 놀았던 그 시간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단 며칠 동안이었지만 같이 놀았던 기억만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따뜻함과 약간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지난 11월 29일, 지난 5월부터 볍씨아이들이 진행했던 선흘분교 6학년 수업이 끝났다. 수업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선흘분교 아이들의 졸업식 준비로 빠듯하게 시간이 흘러갔고 마지막 수업에서 정리 할 수 있었다. 졸업식 준비를 마무리하고 선흘분교 아이들은 몇 년 동안 갈고닦은 오케스트라 연주로 마지막 선물을 주었고 볍씨 아이들은 며칠 동안 갈고 닦은 몸짓으로 답해주었다. 그렇게 웃음과 대성통곡, 아쉬움과 뿌듯함으로 교실을 가득 채우며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수업의 마지막에는 소감 나눔을 하는 시간이 있다. 마지막 소감 나눔에서 선흘분교 아이들은 볍씨 아이들에게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꽤 많이 했다. 그 뒤에 이어진 볍씨 아이들의 소감 나눔을 들어보니 볍씨 아이들도 그저 주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두 시간의 수업을 위해 몇 차례의 회의와 준비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맡아가는 역할의 책임감, 앞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진행하는 경험들, 원활한 수업 진행, 아이를 살피는 눈과 순발력 있는 대처 등. 교실에 앉아 수동적인 배움에서는 얻지 못하는 경험을 했음을 나누었다. 볍씨 아이들은 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선흘분교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한 가지 선흘분교 아이들에게 고마운 것이 있다. 선흘분교 아이들의 마지막 편지에서 수업하는 동안 볍씨 아이들에게서 받은 각자의 느낌들을 전해주었다. 그 글을 읽으며 아이들의 눈은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선흘분교 아이들은 볍씨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빛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솔직하게 글로 표현해주었다. 그 빛을 모두에게 전해준 것은 볍씨 아이들에게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떠올리고 드러낼 수 있는 큰 선물이자 수업을 진행하며 얻은 큰 결실 중 하나였다.

선흘분교 한 아이가 쓴 편지글이 기억에 남는다. “옛날에는 볍씨학교 형, 누나들이 무표정으로 트럭을 타고 다녀서 뭔가 무서운 곳일 줄 알았는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너무 다들 재미있고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어.” 무표정으로 트럭을 타고 일하러 가는 볍씨 아이들과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져 편지를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그 아이의 편지를 읽으며 20여 년 전 함께 야구를 했던 형들이 떠올랐다. 어릴 적 중고등학교 형들이 무서워 집으로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큰길로 돌아가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단 며칠 동안 함께 야구공을 주고받았던 시간만으로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따뜻함이 남아 있는데 볍씨 아이들과 매주 월요일 두 시간 동안 함께한 선흘분교 아이들은 그 시간들을 더 묵직하고 오랫동안 기억할 듯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동네에 따뜻하고 편안한 어른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삶에 큰 안정감을 준다. 또 한쪽에는 나이는 그리 많이 차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큰형 같은, 막내 삼촌 같은, 그런 편안한 동네 형, 누나들의 존재는 큰 어른의 존재감과는 또 다른 결의 안정감을 준다. 막연한 동경심도 생기고, 같이 있으면 모험과 같은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도 생긴다. 아이의 마음 안에 있는 소년의 야생성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바로 동네 형, 누나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볍씨 아이들은 지난 1학기부터 지금까지 선흘분교 아이들에게 바로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이 같은 야생성을 불러일으키는, 편안한 존재의 동네 형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제 한 몸 챙기기 힘겨운 요즘이라고 하지만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니 편안한 동네 형들이, 마음속 소년의 야생성을 들끓게 해줄 그런 동네 형들이 어슬렁거리며 곳곳에서 나와준다면 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볍씨 아이들과 선흘분교 아이들의 긴 만남을 바라보며 그러한 기대와 상상을 해본다.

이번 선흘분교 수업에서 내 역할은 옆에서 지켜보고 아이들이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두어 마디 조언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와 질문들을 던져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나도, 선흘분교 아이들도, 또 그 아이들에게 빛을 전해 받은 볍씨 아이들 모두 관계로 만들어지는 배움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충분히 느꼈으니 이 기회로 한 뼘 더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김동희

광명 볍씨에서 4년, 제주볍씨에서 2년째 교사로 지내고 있는 김동희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순간들을 배움의 기회로 삼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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