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려다가 그림책 매력에 빠져 창업까지 하게 된 엄마들이 있다. 바로 '엄마와 그림책 협동조합'

이들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산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제주도와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 지원하는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제주에서 엄마들에게 선별된 그림책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엄마와 그림책 협동조합’은 곽주영 대표를 비롯해 김지연 감사, 김수진·차효림 이사 이렇게 4인이 한 팀이다.

(사진=박소희 기자)
‘엄마와 그림책 협동조합’은 곽주영 대표를 비롯해 김지연 감사, 김수진·차효림 이사 이렇게 4인이 한 팀이다. (사진=박소희 기자)

이들이 처음 만난 건 2019년 ‘북스페이스 곰곰’에서 진행한 그림책 육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곰곰은 김지연 감사가 운영하는 그림책 카페로 책방 한 켠에는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대안 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일년에 한 번은 환경문제를 주제로 그림책 읽는 시간을 갖는다. 

곽주영 대표는 “저도 아이가 24개월이 지나니까 어떤 책을 사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맘카페로 한정돼 있었고,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그림책을 만나게 됐다. 2019년 제주로 이주해서 곰곰 김지연 감사를 만나 함께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의 ‘엄마와 그림책 협동조합’의 모태인 셈”이라고 했다.

이들은 엄마들과 그림책 모임을 함께하면서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면 좋은 건 알겠는데, 다들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책육아 관련 프로그램을 찾기도 힘들었다. 해서 그림책 전문가 연대를 통해 엄마 활동가를 육성하고 그림책 읽기의 가치를 공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는 일은 달랐지만 생각의 결이 맞는 4명이 뭉쳐 협동조합까지 만들었다. 

(사진=박소희 기자)
김지연 감사가 운영하는 북스페이스 곰곰. 이곳은 어린이 북카페로 책방 한 켠에는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대안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곽주영 대표는 현재는 제주도내 초등학교에서 영어 방과후 강사일을 병행하고 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한 김지연 감사는 현재 제주도 도평동 소재 북스페이스 곰곰에서 어린이 독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진 이사는 미술치료사다. 현재 그림책을 활용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 차효림 선생님은 현재 그림책큐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다들 창업은 처음이라 사업자등록증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들은 관공서를 수도없이 드나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발로 뛰었는데 진행하는 동안 협동조합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나 방향성이 다들 비슷하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됐다. 힘들었지만 팀웍은 더 돈독해졌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 그림책 육아를 선택한 건 단순 언어 장벽이 없어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이 그림책의 매력에 빠졌다. 곽 대표는 "저는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그림책 육아를 시작하고서야 그림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됐다"고 했다. 

결혼후 제주에 홀려 8년 째 살고 있다는 차효림 이사 역시 "그림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라는 걸 알게된다. 나를 웃게 하고, 또 지친 나를 보듬어주기도 하는 게 그림책의 매력인 것 같다. 그림책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한다"고 덧붙였다. 

책육아를 단순히 공부를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엄마와 그림책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그림책 육아는 일방적 독서가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성이 핵심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과 이를 듣는 아이 사이 유대감이 발생하고, 그림과 그림 사이 무수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이들은 서로가 연결돼 있다는 감각과 둘 사이 교감되는 무한한 상상력이 가족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일례로 유치원에서 선생님 학대로 한동안 말을 안 하고 말을 더듬는 증상을 보이는 아이의 엄마가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림책 읽기를 선택했고, 하루에 수십 권의 그림책을 읽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 아이는 누구 보다 밝고 말을 잘하는 아이가 됐다고 한다. 

이들은 그림책 모임과 더불어 엄마들의 치유 프로그램인 '엄마의 책상'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잠자고 있는 아이를 먼저 만나야 해서다.  

2017년부터 곰곰을 운영한 김지연 이사는 "자기 안의 아이와 불화하고 있다면 먼저 화해를 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해서다. 부모의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해야 아이도 그 행복할 수 있다”면서 '엄마와 책상' 프로그램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나라는 숲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구성한 ‘엄마의책상’은 감정을 주제로 6주에 걸쳐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 ‘두려움과 불안’, ‘미움과 화해’, ‘열등감과 자존감’, ‘나를 찾아가기’를 주제로 참여자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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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 11년차 김수진 이사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이란 숲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살이 11년차 김수진 이사에게 이 프로그램은 더욱 특별하다.

육아에 집중하던 7~8년 동안 저의 온전한 공간이 사라졌음을 깨닫게 됐다. 전업주부가 된 김 이사는 아내이자 엄마로만 존재했다.

그는 "나라는 정체성이 사라졌었는데 '엄마의 책상'을 진행하면서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를 마주 볼 용기가 그림책을 통해 생긴 것"이라면서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보듬는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다만 '엄마와 그림책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엄마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한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 돌봄을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끝으로 힘든 시간과 마주한 사람들을 위무할 수 있는 그림책을 추천했다. 

 

'빨간 나무', 숀 탠, 풀빛, 2019년.
'빨간 나무', 숀 탠, 풀빛, 2019년.

각자의 이유로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겐 모든 게 다 끝인 것만 같고,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은 어딘가에 숨어 있습니다. 그림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희망을 상징하는 빨간 나무의 잎을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모습은 어둡고 절망적인 것처럼 보여도 삶의 옆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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