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사회 현안으로 손꼽히는 인구 고령화. 이 문제를 꺼내 들 때마다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방안들은 주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작 당사자인 고령자들은 배제돼 있거나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이들이 고령층에 접어들면서 은퇴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창업이나 재취업을 꾀하려 해도 기회마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일자리와 창업 지원 정책은 청년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고령자들이 사회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올해 제주특별자치도와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 지원하는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정된 ‘고팡 협동조합’(대표 김영순)이 그중 하나다. 

‘고팡’은 주로 곡물 등 식품을 보관하는 공간을 뜻하는 제주어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다.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재능을 바탕으로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평균 수명 100세인 시대 한창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이들 세대를 사회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인력 낭비인 셈이다. 김영순 대표는 이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한다. 

“우리 조합 구성원이 대부분 60세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우리 나이는 삶을 정리해야 할 때인가 하구요. 그래서 일단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한 게 이 모임의 시작이에요.”

고팡 협동조합은 지난해 ‘소모임 고팡’에서 시작했다. 실제로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자는 고민에서 비롯했다. 

‘소모임 고팡’이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지원을 받아 제주생활탐구 프로젝트 ‘원도심 5070 여성들의 건강·문화·경제활동 관련 욕구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사실상 없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건강’과 ‘공간’, ‘경제활동’, ‘나눔’ 등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고팡’은 중장년 활동 플랫폼을 구축해 각자가 가진 경험과 재능을 계발하고 공유하며 일자리 창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팡 협동조합.
고팡 협동조합.

핵심사업은 △일상의 기록 △맞춤형 건강·문화 프로그램 운영 △찾아가는 유튜브 채널 등이다. 

일상의 기록은 도내 노인 관련 기관과 마을 단체 등을 찾아 고령자를 대상으로 인생 노트(자서전 및 영상)를 기록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생애사 글쓰기 강사를 양성하는 과정과 영상 기록을 위한 사진과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맞춤형 건강 문화 프로그램은 수요가 많은 필라테스 강좌를 시작으로 영상이나 문화 분야까지 확대해 운영할 계획이다. 

“매주 만나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학습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에너지가 다시 생겨나더라구요. 우리의 삶이 다시 제2의 청년세대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굉장히 큰 의미였죠.”

김영순 대표는 자신이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는 나이가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위축된 사람들이 스스로에게서 가능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고령화, 나아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제주 사회에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 창업을 시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까. 이 질문에 김 대표는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우문현답을 했다. 중장년층 여성의 경우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이도 하다는 것. ‘고팡’은 그런 여성들에게 자신도 몰랐던 재능과 적성을 찾아주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고팡 협동조합’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신나고 재미있게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나이듦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고 '고팡'은 그런 이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