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현실을 다룬 소설 '82년 김지영'. 동명의 영화로 개봉 18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을만큼 큰 공감을 얻어냈다. 작품 속 30대 여성 김지영은 복직에 실패한 뒤 적성을 살려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며 살지만 결국 회사로 돌아가진 못했다. 똑같이 입시를 준비해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도 결혼하는 순간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만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는 인구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출생은 27만명 역대 최저치인데, 사망자는 30만명이 넘었다. 정부는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출생률이 나아질지 의문이다. 출산과 육아로 여성 복직이 아직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다. 통계청에서 지난해 발표된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여성 경력단절 사례 중 가장 높은 비율은 육아(42.5%)로 나타났다. '육아'에 이어 '결혼'(27.5%), '임신과 출산'(21.3%)이 그 뒤를 이었다. 

"한때 잘 나가던 우리가 왜?"

지난10월 31일 경력잇는여자들협동조합 설립기념 촬영 모습. (사진=경력잇는여자들)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여성 5명이 뭉쳐 '경력잇는여자들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김영지 이사장을 비롯해 디자인 등을 담당하는 강소희 이사, 경영관리 등을 담당하는 신선희 이사, 아동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오유진 이사, 예술단 운영을 맡고 있는 장소영 감사 모두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관광을 전공한 김 이사장은 전공을 살려 국내외 관광 관련 일을 했다. 터키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대학교를 졸업해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자유롭게 살았는데 결혼 후 인생이 달라졌다. 

김영지 이사장은 "아이를 낳고는, 제 경력을 마음대로 설계할 수 없었다. 경력단절이 오래되면 자신감이 떨어져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삶의 주체성을 잃게되는 거다. 제주도와 인화로협동조합이 진행하는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을 통해 지금의 팀원들(강소희, 신선희 이사)을 처음 만났는데 모두 '경단녀 출신(?)'이라 그런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경력잇는여자들협동조합은 제주도 내 다양한 경력을 보유한 3040 여성들 100여명이 활동하는 크리슈머(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소비자라는 의미의 합성어) 조직이다.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 무엇보다 육아 부담을 '수눌음 정신'으로 해소하고 있다. 

(사진=경력잇는여자들)
야맘두 강의 중 어린이를 위한 자연주의 발도로프 수업 (사진=경력잇는여자들)

'야! 엄마도 할 수 있어' 라는 의미의 '야맘두' 사업은 크게 '야맘두 셀럽' '야맘두 강의' '야맘두 기획' '야맘두 투어' 4가로 나뉜다. 

'야맘두 강의'는 오전에는 하부르타, 스피치테라피, 감정수업 등 엄마를 위한 프로그램이, 오후에는 자연주의 발도로프 등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강의가 진행되는 화북동 수눌당(제주도 민속문화재 제4-1호 김석윤가옥)은 이때 공동 육아 공간으로 변모한다. 실내에서 진행되는 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까지 50여 명 엄마 활동가도 양성했다. 강사 역시 이곳에서 양성된 도내 경력단절 여성이다.

김 이사장은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남는 것은 나눠주며 서로가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할 경우들이 생기는데, 그럴 땐 화북동 수눌당 다른 엄마들이 함께 봐준다. 저 역시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고 했다. 

'야맘두 셀럽'은 100여명의 3040 세대 소비자들이 지역의 제품과 서비스를 평가하고 소개하는 제주 유일의 조직화된 소비자 집단이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틱톡, 유튜브 등을 활용한 SNS 마케팅을 알려주고 엄마 셀럽을 양성해 제주 가치와 스토리가 담긴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야맘두 사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야맘두 기획'은 엄마들이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기회를 갖게 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투어상품으로 묶어 ‘야맘두 투어’도 만들었다. 그 밖에 공동 저서를 출판한 ‘야맘두 작가’ ‘야맘두 기부’ ‘수눌단’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여성과 엄마와 아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많지만 엄마는 늘 단순 수혜자였다. 경력단절 여성 교육 역시 경력 유지를 위한 양질의 교육이라 보단 단순 업무를 위한 교육이 대부분이다. 정책 수혜자에 불과한 경력 단절 여성들을 컨텐츠 생산자이자 주체로 세우는 것이 '경력잇는여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다. 야맘두 사업을 통해 지역과 세대, 자연을 잇고 경력단절 여성들의 내일(my work&tomorrow)을 활짝 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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