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심의회를 앞두고, 마을회에서는 제주도 투자유치과에 한 달전부터 행정부지사 면담과 마을대표인 이장의 심의위 참여를 수 차례 요구했다. 이번 심의위에서 사업기간 연장이 부결된다면 사실상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최대한 행정과 갈등보다는 소통하려고 노력했지만, 행정은 늘 거절하기 바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중하게 거절한다는 점이다. 공문으로 보내오는 거절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결국 이번에도 주민들은 또다시 몸을 움직였다.

# 22일. 개발사업심의위 전날

”마을대표인 이장도 못 들어가게 하는 개발사업심의회가 어디있냐?“고 뿔이 나신 20여명의 어르신들과 주민들은 예약된 병원진료도 미루고 제주도청으로 향했다. 혹시 어르신들이 청원경찰과 충돌해 다치기라도 하실까 봐 전날 미리 기자들에게 취재를 읍소해 두었다. 제주도 공무원들은 카메라 앞에선 친절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도 마을의 상식적인 요구를 거부한다면 이장이라도 대표로 도청 앞에서 자리를 깔고 노숙할 요량으로 차 트렁크엔 침낭 2개와 텐트, 깔개 등을 챙겨 실었다. 날씨도 우리의 비장함을 눈치챘는지 때마침 비도 막 내리고 기온도 뚜~욱 떨어졌다. 도청에는 각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님들이 응원단처럼 도착해 있었고, 눈에 익은 정보계 형사님들도 여럿 보였다.

도청 청원경찰들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기도 전에 어르신들과 주민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삼삼오오 제주도청 로비로 쑤~욱 입장했다. 제주안심코드 앞에서 이게 무엇인고 설명을 듣는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당황해서 달려나온 투자유치과장에게 행정부지사 면담을 요구했다. 하필 국회방문 문제로 육지행인 구만섭 권한대행 대신에 정무부지사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베짱을 부렸다. 제주안심코드를 어렵게 통과하신 어르신들은 부지사가 나올 때까지 모두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겠다고 도청 현관로비에 편안히 앉아계셨다.

어르신들의 노력으로 마을대표 5명은 고영권 정무부지사와 1시간 정도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방송국 카메라가 돌아가자 마을은 개발사업심의회에 마을대표가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고영권부지사는 그건 관례에 어긋나지만, 심의회에 전달해보겠노라고 애써 답변했다. 면담이 끝나고 나오니 도청 공무원들이 직접 따뜻한 차로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고 본인들께선 별일도 안했는데 이번에 바뀐 과장은 그래도 사람이 괜찮은 모양이라고 목에 힘을 주셨다.

(사진=이상영 제공)
11월 22일. 고영권 정무부지사와 면담(사진=이상영 제공)

# 23일. 개발사업심의위 당일. 두둥!

전날에 이어 당일까지 도청행은 어르신들 건강에 무리가 가실까봐 좋은 소식들고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10명 정도의 소수 인원만 기자회견을 열었다. 심의위가 열리기 10분 전에 마을 대표인 이장에게 발언기회를 준다는 말을 전해 듣고 회의장에 들어가려는데 별관입구에 청원경찰들이 주민들의 출입을 막고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기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해 들여보내고 마을주민들은 찬바람이 부는 건물 밖에서 기다리든지 말든지 하라는 분위기였다.

찬바람을 피할 길 없어 별관 민원실에 자리잡은 주민들을 뒤로하고 12시 30분경 겨우 이장인 나만 4층 회의장에 올라가 5분 정도 마을의 의견을 전달했고 쫓겨나듯 건물 밖으로 내보내졌다. 회의는 끝나지 않았지만 오후 3시쯤 한 기자가 심의 기준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은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을 또다시 1년 연장했다고 전해줬다. 너무 허탈해서 기운이 쑥 빠지는데 여기까지 오신 어르신 몇 분은 이유라도 알고 가야겠다고 마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사진=이상영 제공)
전날과 달리 마을 주민을 막아선 청원경찰(사진=이상영 제공)

저녁 7시가 다 되어서 회의가 끝나자 연장 이유를 듣고 가겠다는 말을 전해들은 투자유치과장은 찬바람 부는 바깥에서 떨고 있는 주민들을 도청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관광국장과 투자유치과장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변명을 듣고 있는데 때마침 KBS뉴스를 보던 누군가 영탁의 노랫말처럼 외쳤다. ”어..어....근데 저 인간이 어떻게 저기서 나와?“.

마을대표인 이장마저 드나들지 못하게 하루종일 청원경찰을 동원해 모든 출입구를 통제했는데, 마을 감사였다가 돌변해 사업자와 한 몸이 된 자칭 찬성위원장이라는 인사가 심의회장에서 자유롭게 발언도 하고 버젓이 방송사와 도청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추위에 떨다가 몸도 녹지 않았는데 주민들은 제대로 뚜껑이 열려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묻기 시작했다. 큰소리가 나니 도청 직원들은 모두 일어서서 우리들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관광국장은 답변도 생략한 채 뒷걸음질 치다가 잽싸게 사라졌으며 투자유차과장은 화장실로 급히 몸을 피해버렸다.

(사진=이상영 제공)
(사진=이상영 제공)

#24일. 제주도청에서 1박 2일 (이게 실화냐?)

아침부터 10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면서도 전날 고영권 정무부지사가 약속한 최소한의 공정한 심의 진행을 믿고 기대했던 마을은 다시 한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고 결국 폭발했다. 늦은 밤이지만 어르신들은 이대로는 못 간다고 제대로 된 해명을 들어야겠다고 도청로비에 주저앉으셨다. 화장실로 도망갔던 투자유치과장은 30분간 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어르신께 이끌려 다시 돌아왔다. 도청입구를 봉쇄한 청원경찰들은 공무원들의 도시락은 통과시켰지만, 어르신들이 배고프시다고 요청한 김밥과 어묵은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정이 넘을 때까지 어르신들의 고집을 이장인 나조차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투자유치과장과 서부경찰서정보계 계장이 이번 주 안으로 행정부지사 또는 정무부지사 면담을 성사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겨우 어르신들은 발길을 돌렸다. 서부경찰서 정보계 계장은 자신의 본명을 걸고 이 면담이 성사가 안된다면 소고기 20분을 쏘겠다고 어르신 앞에서 호언장담까지 해야했다.

그래서 그 면담 약속은 지켜졌나고? 당근 지켜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제주도정을 믿었지만 제주도정은 또다시 약속을 저버렸다. 마을주민을 꼭 만나겠다고 약속한 제주도는 정무부지사와 행정부지사 두 분 모두 참으로 바쁘시다며 만남 요구를 또다시 정중(?)하게 거절하셨다. 결국 제주도청의 약속을 믿고 소고기 20인분을 거신 서부경찰서 정보계장님은 또다른 피해자가 되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 법! 계장님께서는 선흘리주민들에게 소고기를 언제 쏘실건지 다음 연락처로 전화 꼭 부탁드린다. (연락처. 선흘2리 마을회 064-782-5479)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마을회장 이상영 씨는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한 지 3년째인 초보 제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년 전에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이 된 후, 최근 이장으로 선출·임명되었다. 1973년생인 이상영 이장의 고군분투 마을공동체회복기를 매달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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