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희생자 및 유족 추가신고 접수가 모두 마무리됐다. 위의 사진은 2018년 4.3추념식 당시 유족들이 4.3평화공원 각명비에서 희생자 명단을 찾고 있다.@자료사진 제주투데이
2018년 4.3추념식에서 유족들이 4.3평화공원 각명비에 새겨진 가족의 이름 앞에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사진=제주투데이 DB)

제주4.3특별법 개정 소식을 들으면서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사내 자료사진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다가 발견한 사진이다. 4.3추념식을 맞아 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이 각명비에 새겨진 가족의 이름을 보며 절을 올리는 장면이다. 이 사진을 불편한 마음으로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불편한 이유를 알게 됐다.

유족들에게 비석에 새겨진 희생자의 이름은 그의 육체와도 같다. 4.3추념식마다 행불인묘역을 찾은 유족들은 젖은 수건으로 비석을 닦는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의 몸을 씻겨주는 듯하다. 인터뷰를 해야 하니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 텐데, 좀처럼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다. 추념식을 맞아 공원 측에서 관리해 비석이 깨끗한 상태일 텐데도 유족들은 다시 볼 수 없는 이의 ‘얼굴’을 정성을 다해 닦는다.

행불인 묘역만이 아니라 4.3평화공원의 각명비도 마찬가지다. 유족들은 각명비에 새겨진 이름을 어루만진다. 유족이 어루만지고 있는 것은 차가운 대리석에 새겨진 글씨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리운 아버지의 손이며, 보고픈 어머니의 얼굴이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이름 앞에서 유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절을 올린다. 각명비에 새겨진 이름은 희생자의 육체와도 같다. 단순한 전시조형물이 아니다.

위 사진을 다시 보자. 유족들이 각명비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각명비 앞에 설치된 우수로. 유족이 각명비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수로에 얼굴을 들이미는 격이 되었다.

(사진=김재훈 기자)
4.3평화공원 각명비 앞 우수로에 쌓여 있는 낙엽과 쓰레기(사진=김재훈 기자)

4.3평화공원을 찾아가 현장을 확인했다. 각명비와 우수로를 따라 걸었다. 우수로에 쌓여 있는 낙엽, 나무젓가락 포장지 등의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다. 모든 각명비가 모든 구역이 이런 상황인 것은 아니다. 각명비들은 주변 지형과 경사를 따라 세워졌는데, 지형 상단부에 위치한 각명비들이 이런 상황이었다.

각명비 뒤쪽 언덕에서 흘러 내려오는 빗물과 보도에서 흐르는 빗물을 처리할 목적으로 우수로를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각명비 뒤편에 우수로를 설치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각명비 쪽이 아닌 보행로 반대편에 우수로를 설치하는 방법도 없지 않다. 각명비 앞에서 유족들이 엎드려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추념시설인 만큼 설계 시에 좀 더 꼼꼼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던 부분이다.

4.3평화공원에 세워진 4.3희생자 각명비(사진=김재훈 기자)
4.3평화공원에 세워진 4.3희생자 각명비(사진=김재훈 기자)

내년 추념식에서도 이런 민망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도 예산안 확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당장 우수로를 이설하는 공사를 추진하는 계획을 수립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내년 추념식에서 고급 융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동백을 수 놓은 감물 들인 천으로 우수로를 덮는 시늉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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