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다고, 몸무게가 덜 나간다고, 장애가 있다고 채용을 제한하면 명백한 신체적 차별행위이다. 하지만 감귤 세계에서는 ‘제주도 감귤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에 따라 크기가 2S(지름이 49mm~54mm미만)~2L(지름이 67mm~71mm)을 벗어난 감귤은 ‘응시원서’조차 낼 수 없는 비상품감귤로 치부된다.
같은 무리끼리 모이지 않아도 차별을 받는다. 농산물 표준규격에 ‘낱개의 고르기’라는 기준에 따라 무게가 다른 것이 섞이게 되면 등급이 낮아진다. 그래서 농업인들은 실질과 상관없는 크기선별 작업을 한다.
감귤을 출하하려면 물 등으로 세척하고, 왁스로 코팅하고, 뜨거운 바람을 쐬어 말린 후에 병충해를 입거나 모양이 이상한 놈들은 골라내어 크기별로 구분해야 한다.
과일은 자연적으로 얇은 기름피막을 형성하여 자신을 보호한다. 하지만 세척 등으로 천연피막을 깨뜨렸으니 다시 왁스코팅을 하여 마름현상과 부패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코팅한 왁스를 말리려면 뜨거운 바람을 쐬어주어야 하는데 이때 감귤 특유의 상큼한 맛도 떨어진다.
2002년 제주도는 신선하고 청정한 감귤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고 수입산 오렌지와 차별화를 기하기 위해 “수출 감귤을 제외한 감귤 표면에 왁스 등 피막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감귤유통조례에 포함시켰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소비자들이 칼슘제(껍질이 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뿌리는 것)를 농약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예쁘고 매끈하게’ 화장한 듯 코팅한 감귤을 선호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또 감귤이 많이 달리면 가격조절을 위해 산지폐기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실질가치와 무관하게 비료, 농약, 석유 등을 더 사용할 뿐만 아니라 노동력마저 낭비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을 위해 무한생산과 무한소비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무한욕망의 열차다. 하지만 두 바퀴 뒤에는 무한폐기라는 보이지 않는 바퀴 또한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새 모델이 나왔다고, 디자인이 멋지다고 멀쩡한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을 바꾸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부러워한다. 광고는 남들과 같이 하거나 남보다 돋보이려는 욕망에 기름을 부어 무한소비를 이끌어낸다.
기업들은 기존제품을 고의로 진부하게 만들어 제품수명이 다하기 전에 소비자가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하는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을 구사한다.
기업은 끊임없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것에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그린워싱(green washing: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으로 소비자들의 눈마저 가려버린다.
2030년까지 배송물량 절반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억제한다면서 매년 재고품 300만개 이상을 불태우는 ‘아마존’, ‘한 잔의 커피는 사회와 환경에 많은 가치를 더합니다’라고 광고하면서 플라스틱 포장재만 한 해 170만톤을 생산하는 ‘네슬레’, 가난한 나라의 샘물들이 말라버릴 정도로 물을 쓰면서도 지하수를 보호하는 주인공으로 자신을 광고하는 ‘코카콜라’ 등 기업들은 초록색 가면을 쓰고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같은 크기로 가지런히 배열된 귤을 찾기에 크기별 선과작업이 행해지고, 우리가 빛나고 예쁜 귤을 찾기에 왁스코팅이 이루어지며, 우리가 명품을 좇기에 멀쩡한 명품이 태워진다. 또한 녹색분칠을 한 맨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기에 무늬만 친환경인 제품을 구입한다.
필자는 감귤을 택배로 보낼 때 크기를 구분하지 않고 보낸다. 너무 크다고, 너무 작다고, 모양이 곱지 않다고 해서 골라내지도 않는다. 가격도 유기농을 계속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정한다. 감귤을 받아본 소비자들도 기존에 먹던 감귤보다 싱싱하고 맛이 깊다며 곱지 않은 것과 비싼 것에 개의치 않는다.
또 선과장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자원낭비와 탄소배출을 막는 환경 친화적인 감귤을 먹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필자는 지난 8년간 감귤을 택배 배송한 경험을 통해 지구적인 관점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중요한 것은 돈의 관점이 아니라 지구적 관점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감하는 상품을 같이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기후위기를 막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면 돈의 관점으로 보아도 이득임에 틀림없다.
지구의 운명은 나, 너, 우리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상품 선택행위로 결정된다.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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