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제주시 만덕로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에서 열리고 있는 곶자왈작은학교의 생명평화 작은 숲 이루다 전시회에서 문용포씨를 만났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9일 제주시 만덕로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에서 열리고 있는 곶자왈작은학교의 생명평화 작은 숲 이루다 전시회에서 문용포씨를 만났다. (사진=조수진 기자)

“보통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너희들은 미래세대니까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은 지금 세대예요. 사회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하는 세대인 거죠.”

제주시 조천읍 중산간인 선흘2리에 ‘유별난’ 학교가 있다. 국어와 영어와 수학을 배우는 대신 사람과 생명, 평화를 함께 공부하고 체험하는 곳. ‘곶자왈작은학교’(이하 작은학교)다. 지난 2006년 환경단체와 시민사회 단체에서 수십년 활동을 하던 문용포씨가 세우고 운영하는 곳이다. 

‘작은학교’는 규모는 작지만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방과후, 주말, 방학 기간 운영하는 ‘틈새학교’로 자연체험(자연학교)과 마을 답사(마을학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를 여행하고(여행학교), 재난과 내전 등으로 고통 받는 나라들과 연대하는(평화학교) 곳이다.

시작은 친한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서였다. 문씨가 “이제 작은 대안학교를 하나 하고 싶다”고 던진 말에 다른 두 친구가 “당장 시작하라”고 받아주며 마치 (문씨의 표현을 빌리면)‘도원결의’하듯 일어난 일이었다. 세 친구가 적금을 깨고 사비를 들여 우선 조천읍에 있는 작은 조립식 건물을 빌렸다. 

“마치 교회 부흥회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다. 세 친구 중 문씨는 학교 운영과 교육을 총괄하는 ‘아우름지기’로, 다른 두 친구(강석반·고기협)는 ‘학교지기’로 쭉 함께 하고 있다. 이 학교가 어느덧 15살이 됐다. 

작은학교는 개교 15주년을 맞아 지난 6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제주시 만덕로 11, 2층)에서 활동 사진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9일 전시회장에서 문씨를 만났다. 

(사진=조수진 기자)
(사진=조수진 기자)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시가 아닌 중산간에서 학교 문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문씨는 “생각해보면 예전엔 자연이 학교이지 않았느냐”며 “사람과 문화와 환경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자연이고 곧 학교다”라고 답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생태놀이도 하고 시도 쓰고 연주도 하고 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생명과 평화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법을 알아간다. 한 친구는 작은학교를 다니며 시 300여편을 쓰기도 했다. 자연 그대로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표현력, 사고력을 키우는 학교가 된다는 문씨의 설명에 납득이 간다. 

방학 기간엔 국내·해외여행과 캠핑을 다닌다. 자전거로 전국 천리를 다닌다고 해서 ‘천리길 친구들’이란 이름이 붙은 모임은 중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지역을 다니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법을 배운다. 

더 나아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전인 지난해 초까진 매년 아시아 국가를 여행했다. 지난 2010년부터 필리핀과 일본 오키나와, 베트남, 네팔, 인도네시아 등을 다녔다. 문씨가 가장 애착을 가진 ‘아시아 미래세대 어깨동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아시아의 청소년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이 프로젝트는 여행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 

‘어린이 평화장터’를 열어 모금하고 여행 경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매년 400~500만원씩 ‘평화기금’을 조성했다. 이 기금은 분쟁이나 재난이 빈번한 지역에 어린이 평화 도서관을 짓거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전달됐다. 지금까지 전한 금액은 7000여만원에 이른다. 

곶자왈작은학교의 활동 사진. (사진=조수진 기자)
곶자왈작은학교의 활동 사진. (사진=조수진 기자)

“예전엔 아이들이 해외 어느 나라에서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보면 먼 나라,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행을 가 직접 그곳의 아이들을 만나면 이제 ‘내 친구의 일’이 되는거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더라구요.”

‘지구적인 관점’은 많은 어른들이 무관심한 기후위기나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했다. 아이들에게 미래의 일이라거나 나중에 커서 해결하면 될 문제들이 아니다. 어린이나 청소년 역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지금 당장 고민을 가지고 때론 해결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주체라는 것. 

문씨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작은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아는 만큼 행동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전시회에 이제는 청년이 된 친구들이 손님으로 몇몇이 왔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우리 학교가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할지를 고민하고 있더라구요. 자기들이 이곳에서 얻은 것들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하는 데 그 모습에 큰 기쁨을 느꼈죠.”

그가 작은학교의 ‘아우름지기’로 있으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학교를 거쳐 간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다. 허리춤에도 오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걸 보면 그보다 뿌듯할 때가 없다. 

곶자왈작은학교 활동 사진 전시회. (사진=조수진 기자)
곶자왈작은학교 활동 사진 전시회. (사진=조수진 기자)

유별난 학교로 알려진 작은학교가 외부에서 인정을 받을 때도 역시 보람을 느낀다. 지난 2017년 제주도교육청 초빙 연구원으로 제주를 방문한 핀란드 교육전문가 앤 라사카(Anne Raasakka)는 핀란드의 수업 방식을 이미 적용하는 학교로 ‘곶자왈작은학교’를 언급하기도 했다. 

“제주 교사들과 앤 라사카 교육전문가가 대화를 나누다가 핀란드의 ‘현상기반학습’에 대해 질문이 나왔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 전문가가 ‘제주도에서도 이미 하고 있던데요’라고 이야기를 하더래요. 그 학교가 바로 우리 작은학교였거든요.”

‘현상기반학습’이란 과목 중심으로 학습하는 게 아닌 주제나 콘셉트를 가지고 모든 과목을 전체적으로 탐구하는 학습 방식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의 현상이 어떻게 현재나 미래와 연결되는지 등을 연구한다. 정해진 답이 아니라 열린 가능성을 두고 학습하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학습을 주도하며 자기 주체성을 높일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대안학교는 물론이고 공교육 교사들 역시 작은학교의 교육방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문씨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학교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문용포씨가 곶자왈작은학교 활동 사진 전시회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문용포씨가 곶자왈작은학교 활동 사진 전시회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앞으로의 작은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문씨는 “지금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면서도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지금처럼 계속 관계를 맺으며 학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스스로 성장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관심을 가지는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나만 행복해서도 나만 잘 살아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우리 지구가 다같이 건강할 수 있도록 나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놀이터이자 쉼터이자 배움이 있는 곳.” ‘곶자왈작은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은 학교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우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문씨는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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