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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밥] 평화를 향한 여성들의 연대와 끈질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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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밥] 평화를 향한 여성들의 연대와 끈질긴 투쟁
  • 안혜경
  • 승인 2021.12.1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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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윈의 현재모습 (사진=안혜경)
그윈의 현재모습 (사진=그윈 홈페이지)

평화활동가이자 사회학자로 에코페미니즘, 군국주의, 여성들의 평화조직에 대한 연구와 저술 및 강의를 해오고 있는 그윈(Gwyn Kirk)에게서 오랜만에 이메일을 받았다. 1981년 영국 뉴베리에 있는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 미공군기지(USAF)에 핵미사일(nuclear-capable missiles) 을 배치하려 했을 때, 전쟁과 군사주의 그리고 폭력에 반대하며 이를 막아낸 여성들의 비폭력 활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최근 제작되어 줌으로 프리뷰를 할 예정이라며 참여를 권했다. 

나토의 핵 미사일 배치 결정에 대해 1981년 8월, 그린햄 커먼 미공군기지에서 200㎞나 떨어진 카디프라는 곳에서 부터 어린이를 포함한 사람들이 군기지로 걸어가며 중간 중간 마을에서 이에 대한 공개토론을 벌였다. 기지에 도착 후 사령관에게 항의 편지를 전달하려했으나 거부되었다. 이후 여성들은 핵미사일 철수를 위해 기지 밖에 캠프를 차리는 대대적인 평화투쟁을 벌였지만 언론의 관심을 받는데는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린햄 커먼 미공군기지철책선을 둘러싼 여성들(사진=안혜경)
그린햄 커먼 미공군기지철책선을 둘러싼 여성들(사진=그윈 홈페이지)

1982년 12월 12일엔 3만명의 여성들이 15㎞나 되는 기지 울타리를 에워쌌다. 아이가 있는 엄마와 노년의 여성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이 활동기간 동안 영국의 그 춥고 습한 겨울도 여러 차례 견뎌야 했다. 일상을 잠시 놓고 모였던 여성들은 그 투쟁에 수년을 헌신하였다.

언론은 이들이 일상도 포기하고 거친 노숙을 감수하며 토론하고 노래하고 배너를 제작하는 등 창의적 활동을 해나가며 끈질긴 반대운동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기보다 ‘좌파 레즈비언’, ‘잘 속는 주부’, ‘평화란 말을 오염하는 저항’ ‘술과 담배’ 라는 식의 제목의 기사로 공격을 해댔다.

경찰뿐만 아니라 이런 언론의 기사를 배경으로 이 평화운동에 반대하는 일반인들이 이 캠프를 모욕하며 해체하려는 행동들도 생겨났다. 그 당시 어린아이로 엄마와 함께 참여했던 한 여성은 자신의 엄마가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이메일 등 SNS는 고사하고 개인 컴퓨터도 없던 시대였기에 여성들은 엽서, 배지, 포스터, 손으로 쓴 뉴스레터와 잡지를 만들어 세상에 알려야했고 어떤 이는 박사학위 논문 제출을 포기하며 이런 끈질긴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전 세계 다른 평화 캠프에 영감을 주었고 사람들은 이들에게 편지, 돈, 식사, 장작, 따뜻한 옷, 고어텍스 침낭, 법적 도움 등의 지원을 했다.

영국의회는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야했고 1987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미사일 제거 합의 조약 등 정치적 상황 등과 맞물리면서 결국 1991년 마지막 핵미사일이 미국으로 반환되었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은 그 곳에 남아서 그 땅이 지역 사회에 공개적으로 반환된 2000년까지 평화를 위한 저항활동을 지속했다. 1981년 이후 19년의 끈질긴 활동의 성과였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여성들의 연대와 용기와 인내와 희생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위대해보였다.

전쟁을 반대하고 생태계 파괴를 저지하려는 평화활동을 위해  평온한 일상과 인생 계획을 바꿔야한다면 그 길을 나는 흔쾌히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온전히 내 삶을 헌신하지 않더라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할애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지면에 영화와 책 등으로 이에 관해 소개할 때면 ‘말로만?’ 한다는 민망함이 들지만 이 역시도 필요한 일이라 위안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과 강정에서 (사진=안혜경)
강정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과 강정에서 (사진=그윈 홈페이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강정해군기지 반대활동이 고스란히 겹쳐보였다. 강정에 해군기지를 설립한다는 발표가 난지 15년이 되었다. 강정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전도, 전국,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연대하며 해군기지 설립을 처절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건설되고 말았다. 강정에도 전쟁을 부르는 군기지 철수를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평화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소니아 곤잘레스가 감독한 이 영화를 줌 프리뷰로 조직하기 위해 리나 호쉬노(Lina Hoshino)와 데비 리(Debbie Lee)가 나섰고 그윈이 그 의미를 다시 되짚었다. 리나 호쉬노는 그윈과 함께 한국, 괌, 필리핀, 오키나와, 푸에르토리코의 미군기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환경파괴, 군사문화, 성산업 등의 문제들을 <철책선 주변의 사람들Living Along the Fenceline>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었고 제주여성영화제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그윈은 강정을 두 번이나 방문 했고, 4.3미술전시를 소노마카운티 뮤지엄에서 진행할 때, 리나 호쉬노와 함께 방문해 근처에서 숙박해가며 격려해주었다. 평화를 깨는 일의 실체와 그에 저항하는 결기와 행동과 문화를 보여준 평화활동가들이 살아온 세월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으며 글을 맺는다. 자막없는 영화를 보느라 놓친 내용은 그윈의 웹사이트를 참고했다.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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