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문을 연 명승호텔의 당시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오른쪽) (사진제공 : 고경진)

오랜 기억 속의 공간이 새로운 예술 플랫폼으로 재탄생했다. ‘시간과 공간의 기억 산지로31, 갤러리레미콘(GALLERY REMICON )’으로 문을 연, 그곳이다.

이 공간은 우리에게 특별함을 준다. 지난 1962년 3월에 산지로 31번지에 제주 최초의 현대식 호텔로 문을 연 명승호텔은 지난 60년 동안 제주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같이 하며 이어져 왔다. 원도심 동쪽의 산지천과 마주하는 절벽 아래에 터를 잡고 제주가 앞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할 것이라는 안목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사업가 고춘호 대표(제주도 최초 공업사인 안전자동차공업사 경영)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만든 호텔이다.

자신의 공업사 직원들과 함께 직접 콘크리트와 철근을 올리며 손으로 쌓아 올린 감동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당시 초가집과 여관밖에 없었던 제주에서, 서양식 침대와 좌변기, 넓은 테라스, 정교한 기둥머리 장식의 아치형 천정 등에 이르기까지 첨단 시설을 두루 갖춘 호텔 내부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 제주에 사는 사람들과 이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정취와 추억을 두둑하게 쌓았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4층 별관은 로터리클럽의 친목회가 열리는 사교의 장으로 활용되었고, 1층은 한때 중앙공보관 제주분관으로 쓰여 정부의 대외정책을 접할 수 있는 공적 공간으로 공유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를 찾은 배우들과 유명인들의 숙식을 책임지는, 그야말로 최고의 명소였던 것이다.

산지천 일대 현재 모습(위쪽)과 1960대 모습(아래쪽) (사진제공: 고경진)

1990년대 폐업한 명승호텔에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고성호 ㈜제주레미콘 대표다. 고 대표는 지난 2019년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녹아있는 이 건물을 매입하고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탄생에는 많은 어려움이 고 대표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렵지만 고 대표는 자신이 드나들던 추억의 시멘트 계단을 포함해 기존의 건축물의 원형을 살리며, 여건이 허락하는 범주에서 공간의 역사성과 예술성이 깃든 미술관으로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명승호텔을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는 고성호 대표

고성호 대표는 “우연한 시작이었지만 마치 운명처럼 산지천에 위치한 건물(산지로31)을 만나 의미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산지로31)은 과거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세월의 흔적을 느끼는 곳입니다. 비록 낡고 초라하지만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은 채로 예술공간의 기능과 역할을 해나갈려고 합니다”라고 얘기하면서 ”그리고 이번 기획을 좋은 취지로 이해해주시고 기꺼이 동참해주신 10인의 지역작가들과, 산지천과 구도심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번 전시가 구도심의 변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라고 전했다.

새롭게 탄생한 ‘시간과 공간의 기억 산지로31 갤러리레미콘(GALLERY REMICON )’의 첫 기획전으로 유창훈, 이미선, 강문석, 고은, 손유진, 배효정, 양민희, 김산, 김승민, 강주현 작가의 작품이 오는 22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선보인다.

오는 22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갤러리레미콘에서 전시되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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