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올해 제주4·3특별법의 전부개정이 이뤄지면서 수형 희생자를 직권재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희생자와 그 유족에게 국가가 보상하도록 하는 근거 조항이 마련됐다. 

또 최근엔 국가 보상을 구체화하는 개정안까지 국회를 통과하면서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가족관계 정리와 관련한 특례 조항들이 모두 삭제돼 큰 아쉬움을 남겼다. 법원행정처에서 현행 민법과 충돌 등을 이유로 들며 ‘신중 검토’,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이는 4·3당시 ‘비정상’ 정국에서 출생신고나 혼인신고를 제대로 하지 못해 뒤엉킨 호적을 가지게 된 희생자와 유족들이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한 조항이었다. 특례 조항이 개정안에서 제외되자 제주4·3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의견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는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가족관계등록부 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8월19일부터 11월22일까지 유족회에 접수된 사례 78건에 대해 직접 면접 방식으로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행정 체계 혼란·관습·높은 영유아 사망률 등이 원인

4·3희생자와 유족의 호적이 잘못 기록된 사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 연구원은 첫째로 당시 4·3이라는 혼란스러운 사회 환경에 따라 행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시기(1948년 8월15일)와도 맞물리면서 출생 사망 혼인 신고 등이 원활히 이뤄지긴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부 수립 이전엔 국가라는 형태가 갖춰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제도 자체가 미비했다. 또 그 이후엔 호적이 불타거나 도피 과정에서 신고할 시기를 놓치게 된 경우도 빈번했다. 

둘째로 높은 영유아 사망률에 따라 출생 신고가 늦어지게 된 경우다. 당시엔 의료 시설이나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생아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도 즉시 출생 신고를 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셋째로 연좌제 등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4·3 당시 목숨을 잃은 가족이 있어도 사망신고를 제때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또 자녀의 호적 취득 권한을 주로 부계가족이 행사하는 관습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했을 경우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쪽 가족의 자녀로 올라간 경우도 많다. 

이밖에 가족관계등록부상 가족이나 이미 형성된 사회적 관계가 흐트러지는 데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호적을 정정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22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가족관계등록부 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2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가족관계등록부 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대부분 딸”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조사 대상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조사 대상자 78명 중 60명, 76.9%가 여성이었다. 

현 연구원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비롯한 요인일 수도 있지만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서 호적 불일치가 여성 유족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문제라고 볼수도 있다”고 추론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 가족관계등록부가 불일치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고착화된 가족관계 안에서 가족관계를 정정하게 되면 후손의 친족관계와 유산 상속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남성 유족은 가족관계 정정이라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도 조사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가족관계등록이 불일치하는 사유는 희생자의 혼인 신고 여부가 41.0%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부모의 사망(19.2%), 기타(사유를 밝히지 않은 경우) 24.4%로 나타났다. 

또 대상자와 희생자의 실제 관계는 ‘딸’이 73.1%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가족관계등록부상 관계는 ‘조카’가 57.7%로 절반이 넘었다. 이는 4·3 때 아버지를 잃은 딸들이 아버지의 방계 가족 호적에 올라간 경우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호적 정정 시도했지만 포기 부지기수

현 연구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분석하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 호적(가족관계등록부)을 정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하다가 포기한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로 호적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 경험이 있다는 대상자는 48명으로 61.5%에 이른다. 

현행법상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기 위해선 법원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친자 관계를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은 유전자나 DNA 검사다. 희생자의 DNA를 확보하기 위해 아버지의 묘를 파내야 하는데 친인척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검사 비용 또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행방불명 희생자의 경우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공문서에서 내 이름 석 자가 잘못된 위치에 놓여있다는, 어찌보면 단순한 오류로 보이는 가족관계등록 불일치는 유족 인생의 전반에 걸쳐 고통을 주고 있다. 

이들은 가족이 해체되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또 제대로 된 호적을 갖지 못해 어릴 때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성인이 되어서도 학력 등의 문제로 직업을 선택하는 데 한계에 부딪혀야만 했다. “호적에 있는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움츠러드는 삶을 살아왔다. 

게다가 수차례에 걸친 제주4·3특별법 개정에도 유족에 등재되지 못한 데 대한 박탈감도 심하다. 이는 부모의 유산을 상속 받는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도 제약조건으로 작용해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위패(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위패. 사진=제주투데이DB)

#4·3가족관계 정정은 개인사(事) 아닌 국가사(事)

현 연구원은 가족관계등록부가 잘못되어 있는 유족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족관계 불일치는 4·3 당시 국가 폭력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다. 가족 공동체를 해체한 책임이 국가에 있는만큼 이를 바로잡을 의무도 국가에 있다. 

또 국내 다른 과거사 관련 지역과 상호 연계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4·3희생자의 가족관계 등록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순사건 등 다른 과거사를 해결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내 과거사 관련 DNA 검사 이외에 친생자를 확인한 대법원 판례 등 법률적 사례를 수집해 분석할 필요성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현행 법 체계에선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는 일이 복잡한 절차와 함께 과도한 비용을 수반한다. 그나마 여력이 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DNA 검사를 위해 묘를 훼손하는 문제, 행방불명 희생자 가족의 경우 DNA 확보 자체가 불가능한 점 등 여러 애로사항이 뒤따른다. 

현 연구원은 이를 위해 특별법 개정을 통해 희생자의 실제 자녀가 가족관계등록부 상에도 자녀로 인정될 수 있는 특례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날 실태조사 결과 분석 보고가 끝나고 이를 검토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이어졌다. 김종민 4·3위원회 중앙위원이 좌장을 맡고 장완익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와 강병삼 변호사, 강민철 제주특별자치도 4·3지원과 과장, 오화선 제주4·3연구소 자료실장,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