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랑포-버랭이깍. (사진=고봉수 제공)
벌랑포-버랭이깍. (사진=고봉수 제공)

탑동 서쪽 버랭이깍. 옛 기록에는 벌랑포(伐浪浦)라 하였다. 고려 시대까지는 포구의 역할을 하였으나 고려말에 그 역할을 잃었다고 한다. 벌랑이 변음된 ‘버랭이’와 접미사로 끄트머리·아랫부분을 뜻하는 제주어인 ‘깍’이 합쳐진 지명이다.
 
탑동에서 버랭이깍으로 가는 길은 추억의 장소이다. 대학 시절 연애를 했던 아내와 나는 중앙로에서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 도로로 따로 걷다가 탑동에 이르러야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좁은 지역에서 소문날까 봐! 그 시절만 해도 추운 겨울날의 탑동은 한산하고 오시록 하여 데이트하기 좋았다.

아내의 집이 무근성이라 탑동 길을 거닐다가 해가 지고 저녁 시간이 되면 항상 버랭이깍까지 왔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헤어지기가 어려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런 감정이 지금도 남아 있나? 대답은 노코멘트.

방사탑 터와 도수장(왼쪽), 유창산업 터 외벽(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방사탑 터와 도수장(왼쪽), 유창산업 터 외벽(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버랭이깍 동쪽에 넓은 공터가 보인다. 이곳은 방사탑이 있었고, 소·돼지 등 가축을 도살하던 도수장도 있었다. 6·25전쟁 때는 장공장이, 60년대는 유창산업이라는 통조림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건물은 모두 없어졌지만, 외벽만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서 있다.

얼마 전 제주도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신축 용지로 매입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진로·하이트가 소유하고 있으면서 별다른 활용 없이 방치되어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탑동공원에 복원된 방사탑. (사진=고봉수 제공)
탑동공원에 복원된 방사탑. (사진=고봉수 제공)

방사탑은 사악한 것을 막기 위하여 돌을 쌓아 올려 만든 탑을 말한다. 제주의 방사탑은 현무암을 원뿔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탑 위에는 맹수의 석상이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의 두상을 나무나 돌로 만들어 세워서 사악한 것을 막거나 쫓아낸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탑동에도 방사탑이 있었다. 태풍과 해일, 바닷가 파도에 떠밀려 오는 시체들로 인해 마을에 살기(殺氣)가 들어 청상과부가 많이 생긴다고 하여, 동탑과 서탑 2개의 방사탑을 쌓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탑동’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아랫동네를 탑 아래 동네라는 의미의 ‘탑바래’라 부르기도 했다. 원래의 방사탑은 없어졌고 병문 펌프장 북쪽 공터에 복원하여 세웠다가 도로 공사로 인해 라마다호텔 동쪽 탑동공원 부지로 옮겨 설치되었다. 

풍운뇌우단 터. (사진=고봉수 제공)
풍운뇌우단 터. (사진=고봉수 제공)

유창산업 터 담장에는 풍운뇌우단 터 표지석이 있다.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바람· 구름· 우레·비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터이다. 당시 바다가 주생활 무대였던 제주 사람들은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음력 2월과 8월에 바람·구름·우레·비의 신에게 제사를 봉행하면서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했을 것이다.

성황당(왼쪽)과 포제단으로 쓰이는 여단 터(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성황당(왼쪽)과 포제단으로 쓰이는 여단 터(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풍운뇌우단 터에서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오면 성황당과 여단이 있었던 터가 나온다. 성황당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토지와 마을을 지켜준다는 신)에게 성황발고제가 봉행 되었다.

여단은 천재지변이나 전염병으로 죽은자·익사자·전사자·비명횡사하여 후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여귀의 혼령을 위하여 나라가 제사를 지내주는 단으로 봄·가을·겨울에 걸쳐 일 년에 세 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포제단으로 해마다 정월에 마을주민들이 모여 사람과 사물에 재해를 내리는 포신(酺神)의 액을 막고 복을 내려줄 것을 빌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단들이 많이 모여있던 병문천 동쪽은 초등학교 시절 점집들도 많았다. 점집에서는 점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경기하면 넋두리도 했고 급체를 한 사람에게는 체 내리기도 했었다. 점집들이 많았던 것은 풍운뇌우단·성황당·여단·포제단 등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병문 펌프장, 선반물 터. (사진=고봉수 제공)
병문 펌프장, 선반물 터. (사진=고봉수 제공)

제주도는 예로부터 물이 귀했다. 무근성 사람들도 ‘선반물’과 ‘논깍물‘에서 물을 구해야 했다. ‘선반물’은 지금의 병문 펌프장 부근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로 썰물 때 담수가 나와서 마시는 물로 이용하였다.

‘논깍물’은 병문천 오수처리장 부근의 ’버랭이깍‘에서 나오는 물로 밀물 때 마실 수 있었다. 약국을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빌리면 물 사정이 좋지 않았던 60년대 초에는 간장약이 엄청 많이 팔렸다고 한다. 아마도 바닷가에서 나는 용천수에 해수가 섞여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얼마 전 제주시 서부 지역은 물 부족으로 단수 조치가 되었던 적도 있다. 지하수 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물 부족에 따른 고통이 예상되는 제주도는 지금도 물이 귀한 곳이다. 알작지 해변에 있는 제주어 속담만 봐도 물이 얼마나 귀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놋 씻을 때 물 하영 쓰면, 저승 강 그 물 다 먹어사 한다’
(얼굴 씻을 때 물 많이 쓰면, 저승에 가서 그 물 다 먹어야 한다) 

배고픈 다리 터. (사진=고봉수 제공)
배고픈 다리 터. (사진=고봉수 제공)

배고픈 다리는 고픈 배처럼 밑으로 쏙 꺼진 모양의 다리다. 초등학교 시절에 비가 많이 와서 병문천이 터지면 병문천 서쪽에 사는 친구들은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들을 먼저 귀가하도록 해 주었다.

지금은 복개도로가 생겨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지만 어린 시절 병문천의 배고픈 다리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복개된 도로를 걷어내고 병문천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심정이다.

송죽학원 터. (사진=고봉수 제공)
송죽학원 터. (사진=고봉수 제공)

병문 펌프장 동쪽 맞은편에는 송죽학원 터가 있다. 6·25 때 피난민들에 의해 세워진 사립 중등교육과정의 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1951년 1·4후퇴 후 서부교회 부속건물에 수용했던 빈곤 아동 150여 명을 위해 중학원(고등공민학교)을 1952년에 개교하여 1956년에는 약 300명이 재학했었다.

1957년에는 송죽기술학원으로 전환하여 주간에는 여자중학교과정, 야간에는 배성대학으로 활용되었다. 배성대학은 후에 제주대학에 편입되었다. 운영 기간이 짧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제주도 교육사에 의미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사라져 버린 것, 남아 있는 것, 사라질 것에 대해

원도심에 산재하여 있는 제주 근·현대사의 파편들을 모아 기록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지금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떻게 평가되고 활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현재에 사는 우리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연재를 마친다.

연재를 마치며
 
지난 1월부터 12월까지 11차례의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관덕정과 무근성에 대한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지난 몇 년간 원도심 주민협의체 활동을 하면서 논의되었던 이야기들을 지면에 쓸 수 있었던 점도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이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이었지만 원도심에 관한 관심으로 너그럽게 봐주신 점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 휴식기를 가진 후 한짓골·이아골·오현단·원정로·동문 로터리·칠성골에 관한 이야기도 전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고봉수.
고봉수.

제주 성안(원도심)에서 태어나 5대째 사는 토박이. 고교 졸업 후 30년만인 2012년 한짓골에 있는 생가로 돌아와 보니, 과거 제주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의 침체한 모습을 보면서 도시재생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관덕정 광장 주변 활성화 사업’의 주민협의체 대표로 활동했다. 2020년에는 제주목 관아를 사적공원(시민공원)으로의 개방을 요구하는 주민청원을 도의회에 제출한 ‘원도심 활성화 시민협의체’의 대표를 맡았다. 한짓골에서 건축 관련 사무소 ‘이엠피 파트너즈’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한라대학교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