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연주 제공)
(사진=김연주 제공)

저녁 8시. 여성농민회 사무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밭에서 일을 고되게 하고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모였다. 오늘은 공부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 주제는 식량주권이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만 진행하면 되니 다큐 하나 보고 감상을 잠깐씩 나누면 된다. 준비를 해두고 간단히 간식거리를 챙기는데 벌써 언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힘들고 지쳐 쓰러질 듯하다가도 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차게 수다 삼매경이다.

우리지회 막내이자 초보 엄마이면서 초보농민이면서 초보 제주도민은 상큼하게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타나 주셨다.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벅찬데, 농사일에 판매일에 억척으로 신세대답게 알차게 꾸려나간다. 무엇보다 남편과 의논하고 함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모두들 한마디씩 안부를 나누고 나서 영상 두 개를 연달아 보았다.

‘우리가 지구를 식힐 수 있어요’는 소농을 살리면 지구의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의 간단하고도 간결하게 잘 설명된 영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아도 좋음직하였다. 이어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을 길게 감상하였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중에 또 집중을 하였다. 보고나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경운이 얼나마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지 몰랐었다면서 반성을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어떤 농민도 경운은 농사의 기본으로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무경운 농법을 어찌 받아들일지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화면에 나오는 무경운 파종기는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질문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있기는 할까? 정부보조금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면서 가슴에 묵직한 질문 하나를 안고 첫날 공부모임은 마무리 하였다.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 (사진=영상 갈무리)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 (사진=영상 갈무리)

사실 자연재배 농민으로 살아온 지 이제 5년을 지나고 있는데 기계를 사용한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한계치 안에서 허둥지둥 갈팡질팡 별 계획 없이 막연히 저항하며 개별 농민으로 살아왔던 것이 순간 갑갑하게 느껴졌다. 과거 할머니들의 농법으로 회귀가 아니라면 기계사용을 충분히 하면서도 환경 파괴적이지 않게 지속가능성이 담보되는 농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이 사라질 순 없을 테고 최소한의 석유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면 이제 우리가 방향을 그리 잡아보자. 그 동안 넘지 못했던 한계점을 이번을 계기로 넘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규모의 문제가 가장 크게 고민되었던 게 사실이다. 누구나가 그렇듯 자연재배는 텃밭 수준에서나 가능하지 상업농의 영역에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내게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계를 잘 사용한다면 보다 건강하게 생산되는 농산물이 보다 더 많이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경운을 하지 않고 피복작물을 잘 기르면서도 기계의 힘을 빌어 수확량을 대폭 늘릴 수 있다면 현행의 많은 관행농사가 무경운 농법으로 방향을 전환하지 않을까?

두 번째 공부모임이 있던 날.

회원 중 한 명이 갑자기 결석한다는 소식에 어찌해야할지 급하게 의논을 하였다. 맥이 풀려 다음에 하자는 의견으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다음에도 날을 잡기는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기에 “그럼 오늘 합시다”로 결정이 났다.

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사무실로 모였다. 교재도 ‘민중을 위한 식량주권’이라고 논문이었다. 식량주권의 개념을 좀 더 명확히 알아보자는 목표가 있었다. 식량주권과 식량안보개념은 명심하여 잘 구분해 보았다. 식량안보는 식량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방법으로 생산되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이런 점에서 식량주권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식량안보의 개념을 들이댄다면 우리는 삼성전자제품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식량은 값싸게 수입해 먹으면 그만이다. 우리 농민이 다 사라져 도시빈민이 되거나 말거나. 사실 전여농은 식량주권에 대해 교육도 여러 해 진행하고 따로 위원회를 둘 만큼 식량주권사업에는 열심이다.

언니네텃밭 모바일 홈페이지. (사진=김연주 제공)
언니네텃밭 모바일 홈페이지. (사진=김연주 제공)

벌써 10년도 더 전에 식량주권에 대한 이해아래 토종씨앗 지키기 사업을 진행하였고 그 확장으로 언니네텃밭 사업도 진행하고 있으니 과연 전여농은 식량주권의 선두주자라 할 만하다. 우리 공부모임의 회원들은 모두가 언니네텃밭 생산자 회원이기도 하다.

어려운 개념 몇 개를 정리하고 나니 당도 떨어지고 눈도 다 붙어간다. 다음 마지막 날을 기약하며 두 번째 날을 마무리 하였다. 세 번째 만남은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고 우리가 취할 좋은 것이 있으면 따라 해 볼 참이다.

식량주권을 실천하는 여성농민 회원으로 조금씩 전진하는 언니들의 모습은 언제나 ‘멋짐폭발’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지만 이제는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여성농민은 배우면 실천한다. 실천하는 여성농민이지 않은가? 세 번째 모임은 벌써 기다려진다. 어떤 모습으로 보게 될까? 새로 한 ‘빠글머리’는 조금 얌전해졌을까?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3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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