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과 사증은 1차적으로 우리 곁에 누가 도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그 필터를 통과해 도착했다 하더라도 국가는 체류자격증으로 이들 중 누가 존엄한 삶을 살 자격을 가질 수 있는지 2차적으로 개입한다. 사람을 향한 차별적 이동의 자유에 이어 국내화 된 차별적 대우를 통해 이상적인 국민사회의 인간상을 (주권의 행사로) 최대한 유치하고 생산한다.(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이상적 인간상을 가꾼다.)

그렇게 국제적 분배의 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이동의 자유는 더 특권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국가 단위로의 인종화효과까지 작동되어왔다. 언제나 국익의 차원에서 특권과 부유함을 최대한 지키려 하고 확대하려는 국민국가의 행위는 인종화현상이라고 표현해본다. 국민국가 단위로의 인종화효과가 작동되어왔으니 출신국가에 의한 차별은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이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외국인이지만 나는 3개월 무사증으로 살 수 있고 너는 안된다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필터사회는 인종화를 불러일으키고 인종차별을 가하는 악성순환에 빠진 사회이다. 

'필터'라고 표현한 여권과 사증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국민국가마다 사증제도를 통해 사람의 이동의 자유를 가지고 함부로 조정하는 주권행위는 자신의 국익(?)을 최대화하려고 한다. 각 국가가 발행한 여권을 가지고 국제적 이동을 할 때 무사증 혹 사실상 무사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을수록 여권지수가 높다고 한다. 여권지수의 존재는 각 국민국가가 발행한 여권들이 평등하지 않은 이동의 자유를 상징한다. 출신국가에 따른 명확한 차별이라고 봐야한다. 그래서 경제적 격차로 사람마다 향유하는 이동의 자유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다가 여권과 사증을 통해 이런 불평등이 국민국가의 단위로 더 효율적으로, 더 영구적으로 구조화를 시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작년(2020년), ‘제주의 무사증(무비자) 입국제도 일시 중단은 2002년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로인한 제주관광시장에서 입은 타격과 무사증의 유지와 폐지에 대한 여론으로 이어간 보도 내용들을 읽었다. 보도 중 ‘처음’이라는 말도 어색했지만 보도에 달린 댓글에서 무사증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질적인 관광객’에 대한 호소를 하며 난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무사증제도 폐지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관광객들만 찿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발 난개발 접어주세요. 이 아름다운 제주가 망가지고 있어요”) 

법을 살펴볼 때 국제자유도시인 제주는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는 취지(옛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2조)가 있어 무사증입국제도를 투입하였다. 사람의 국제적이동을 보장하려면 사증의 장벽을 내려야 가능하기 때문일 텐데 이상하게 다들 무사증입국제도의 목적을 ‘외국인 관광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왜곡한다. 

옛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제14조, 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197조에 의해 2002년부터 실행되어 온 무사증입국제도는 ‘법무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국가의 국민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이 사증 없이 입국할 수 있고 제주도에서 30일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됐다. 그’왜곡’이 현실으로 되어가는 법적 근거가 이렇게 마련되었다. 무사증입국제도는 처음부터 법무부장관의 권한으로 차별적 무사증입국제도가 되었다. 여권과 사증제도로 인해 사람의 이동의 자유를 차별적으로 향유되는 현실과 맞서 싸우는 무사증제도라고 기대하고 싶지만 그런 평화와 인권의 뜻을 품은 적은 없었고 법무부장관의 주권행사 대행으로 무사증은 관광활성화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제주는 차별적 무사증입국제도를 통해 상품, 자본의 활성화를 기여될 사람(관광 소비자)만 최대한 오게 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상품, 자본이 주어가 되어왔고 사람은 목적어로만 간주되어 왔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란 말은 관광소비자로 축소되었다. 어떻게 축소되냐 하면 상품과 자본이 필터가 되어 ‘사람’으로 온 ‘사람’이 걸린다거나 운좋게 통과할 때 우리(?)에게 다가온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이 무사증입국제도의 ‘부작용’으로 간주되어 법무부장관의 주권행사를 통해 그 삶을 지양하거나 제거한다. 그 제거하는 작업은 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암시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무사증제도의 ‘개선’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개선’은 2018년, 5백여 명의 예멘친구들이 제주에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 후 그해 6월 제주의 차별적 무사증 입국제도는 모든 예멘국적자에게 중단되었다. 들어온 사람 중에 2명만이 난민지위를 얻었고 남은 이들에게 대부분 안정적 정착이 불가능하게 한 인도적체류허가만 부여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제출국 명령을 받아 출국한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삶을 지양하고 제거한다. 

나는 예멘친구에게 중단이 된 제주무사증입국제도는 ‘처음’인 줄 알았다가 예멘국적자보다 더 일찍제주 무사증 입국제도에서 제외해 왔던 11개국(가나, 나이지리아, 리비아,  마케도니아, 수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쿠바, 팔레스타인)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2018년이 다가기 전 법무부장관은 따로 지정한 무사증입국제도 제외리스트 재조정했고 그 결과는 11개국의 제외리스트를 24개국(이란, 수단, 시리아, 마케도니아, 쿠바, 코소보,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가나, 나이지리아, 예멘, 이집트, 감비아, 세네갈, 방글라데시, 키르키즈, 파키스탄, 소말리아, 우즈베키스탄, 네팔, 카메룬, 스리랑카, 미얀마)으로 더 확장을 하였다. 법무부의 자의적 주권대행을 보면 점차적으로 삭제당한, 혹은 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작년 2020년 ‘처음’으로 무사증입국제도가 중단되었다고 하면 말이 될까? 과연 제주는 무사증입국제도를 실행한 적 있는가? 라는 질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수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소수성을 생략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말할 때 그 말에 의해 펼쳐진 세상은 필터를 통과한 필터사회라고 표현해본다. 필터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자신을 필터와 일체화되어가는 일이다. 필터에 걸린 것들을 보이지 않거나 봐도 누락할 선택을 하면서 가상세상인 필터사회를 진실인 것처럼 정상화한다. 예멘난민신청자들이 제주에 도착했다고 해서 난리났던 시간들이 분명히 함께 겪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처음' 무사증입국제도를 중단했다는 말을 집단적으로 자연스럽게 쓰고 편하게 들린다는 게 괴상하다. 제외리스트를 24개국으로 조정하면 대략 전세계 인구 10명 중 1명을 사람을 배제한다는 건데 사람들이 흔들림 없이 ‘제주무사증입국제도’를 그대로 부르고 있다. 인종차별적으로 존재를 필터화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인가?  

아름다운 제주가 사라질까봐 해서 사증의 설치에 이어 질적인 관광객만 오게 하는 발상은 뭘까? 제주의 자연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사람을 향한 필터를 설치해 제주지역에서 공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누군지 적극/소극적으로 선별하자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즉 삶터의 시설화를 통해 제주의 난개발 문제와 직면하려는 것이다. 시설화는 난개발 문제에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면 해결하는 것인지 최대하게 당분간 안/못 보이게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난개발이란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 근본적인 필요에 의한 개발보다 특권과 부유함을 지키려거나 더 확대하려는 동기로 누군가의 존엄한 삶을 포기하는 전제까지 수행된 개발이라고 뜻하면 늘 특권과 부유함을 지키려고 하고 확대하려는 인종화된 국민국가는 난개발을 부추기는 제도인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움직임에 평등함이 추구되지 않은 개발이 난개발이다. 

난개발에 있어 인종이 문제인지 상품과 자본에 의한 (인)종차별이 문제인지 다시 묻고 싶다. 이 질문에 한번 답을 해보면 제주의 난개발 문제는 상품과 자본이 아닌 사람을 향한 필터사회의 건설을 통해서 가능한 일인지 더 잘 분별할 수가 있지 않을까.

에밀리
에밀리

글쓴이 에밀리는 대만 출신이다. 제주에서 정착하기 전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랬고, 지금 제주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제주에서 아이를 낳았다.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다 쏟아붓는 일상 속에서 제주의 '인간풍경'을 글에 담고자 한다. 이 땅의 다양성을 더 찬란하게, 당당하게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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