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중략)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전태일 일기 <전태일 평전> 중-

“4·3의 후예 우리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달 26일 오전 유난히 볕이 좋았던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앞.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은 “4·3의 후예”라는 표현으로 시작했다. 

앞서 올 한 해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냈던 성명들에서도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총학회장을 지낸 혹자에 따르면 총학이 자신들을 ‘4·3의 후예’로 내세운 건 근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밖에도 총학이 주머니 안에 든 송곳처럼 눈에 띄는 일들이 많았다. 30년 전 제주를 파헤치는 개발악법에 반대하며 산화한 고 양용찬 열사. 제대 사학과에 입학했다가 군대 제대 후 복학하지 않아 제적자가 된 양 열사가 명예졸업생이 되는 일에 적극 나선 게 총학이었다.

결국 관련 학교 규정이 개정되면서 지난 28일 양 열사의 어머니 정순자 여사에게 명예졸업증서 수여가 이뤄졌다. 70여년 전 제주에서 한반도 통일을 외치고 미군정과 부당한 공권력에 맞섰던 이들의 후예, 30년 전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지켜야 한다며 부르짖었던 이의 후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청년’을 자주 소환하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제주투데이는 지역사회에서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제대 총학의 회장 현경준씨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 직접 만났다.

지난 24일 오전 제대 학생회관 2층 카페에서 만난 현씨는 기자회견장에서 보이던 당찬 이미지와 달리 차분하고 예의바른 청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사가 끝나고 본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눈빛은 신중하면서도 잘 벼른 날처럼 달라졌다.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2층 카페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2층 카페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제주투데이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소감은.

“우선 올해 총학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이전엔 총학의 역할에 대해 회의감을 가진 시각들이 많았다. 올 한 해는 학생 자치기구로서 총학의 가능성을 잘 봐주셔서 선정이 된 것 같다.”

-올해 총학의 활동이 특히 눈에 띄었다.

“사실 ‘코로나’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웃음) 예년처럼 평상시였다면 연례 행사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총학의 설립 취지나 존재 이유에 대해 원론적으로 고민하고 도전하는 계기가 됐다.”

-고민 끝에 총학의 원론적인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이 나왔나.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학생회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은 학생의 권리를 대표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우리가 해야 할 것들. 이런 것들을 학생과 교감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단계까지 나가야 한다. 우리가 대표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대표성을 잃기 때문이다.”

현씨에게 학교는 ‘진짜 사회’의 실험장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민주주의와 자치를 실현하는 사회였다. 모든 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은 끊임없이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학생들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렇게 학교라는 사회는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원하는 역할과 다를 바 없다.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2층 카페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2층 카페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4·3의 후예

-성명서에 ‘4·3의 후예’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특별한 이유라도.

“제가 만들어낸 게 아니다. 총학생회칙 첫 문장이다. 수십년 전 선배들이 만든 단어다. 이 단어를 회칙에 넣은 이유는 ‘연대’를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4·3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졌을 때 다시 뭉칠 수 있는 의제다. 올해 총학에게도 ‘4·3의 후예’라는 말은 연대를 위한 계기를 만들어줬다.”

-본인에게 ‘4·3’은 어떤 의미인가.

“제주에서 나긴 했지만 사실 유족이 아니라 그전까진 잘 알지 못했다. 대학에 와서 4·3 사회학과 수업을 들으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4·3이라는 역사를 통해 여러 관계를 구분하고 있다. 무장대와 다른 관계를 구별한다거나, 피해자와 희생자, 가해자를. 4·3은 그런 역사가 아니라 탈이념화하고 모두를 품고 아우르는 역사가 돼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1960년대 제대 학생으로 구성됐던 진상규명 동지회나 1987년 4월3일 총학에서 진행했던 위령제도 그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올해 4·3특별법 개정이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들이 많다. 본인이 생각하는 4·3의 과제는.

“세 가지 정도다. 첫째, 정명의 문제다. 둘째는 미군정의 책임을 묻는 것. 셋째는 4·3이라는 역사를 대중화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는 것. 완전한 해결이란 건 있을 수 없다. 다만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그 해결을 위해 한발짝씩 나가야 한다.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행동하고 관심을 가지는 게 우리의 몫일 것이다.”

-대학에서 4·3 관련 수업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그렇다. 예를 들어 전남대학교를 보면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지역학과가 개설돼 있다. 제주4·3 역시 지역학으로서의 특수성을 가진 역사다. 죽음으로 대변되는 문제가 아닌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생겨났던 이념 갈등, 사람 간 관계 등 사회학적, 정치학적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4·3 수업이나 학과들이 늘어나야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4·3을 공부한다고 해서 밥 벌어먹을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가치들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4·3을 경험한 1~2세대가 있고 그 자녀 세대인 3~4세대는 4·3의 역사에서 싹 빠지게 됐다. 우리 이후의 5~6세대는 교육 과정에 4·3이 포함되면서 배울 수 있다. 우리 세대가 어중이 떠중이 되어버린 셈이다. 다음 7~8세대는 우리에게 교육을 받아야 하는 세대인데 우리 세대가 어떻게 4·3을 전승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씨는 ‘4·3’에서 존재했던 여러 관계를 정치적 이데올로기 등으로 구분 짓는 일을 경계했다.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의 역사로 품어야만 4·3이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모두가 연대해 함께 행동해야만 가능하다. 

26일 오전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중앙운영위원회가 학생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를 상대로 제주4.3특별법 일부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6일 오전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중앙운영위원회가 학생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를 상대로 제주4.3특별법 일부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고 양용찬 열사와 청년

-고 양용찬 열사의 명예졸업장 수여에 적극 나섰던 계기는.

“총학 회칙에 보면 전문에 양용찬 열사의 뜻을 기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제주도를 수호하기 위해 산화했다는 내용인데 아마 제대 학생들 중에서도 그 전문을 읽어보지 못한 학생들이 많을 거다. 제주에 살면서 환경과 관련된 문제는 도민으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제주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제주 청년들은 30여 년 전부터 싸워왔다. 가장 중심에 있었던 의로운 죽음이 양 열사의 산화 아니었을까. 올해는 양 열사의 30주기이기도 하면서 제주도특별법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와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이 기회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된 규정을 개정해 달라 요청했고 교수평의회 심의를 거쳐 통과됐다. 기림비는 절차들이 좀 남아있는데 내년 중으로 세울 예정이다.”

-청년 이야기를 했다. 사실 사회 문제에 대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기 힘들다. 

“청년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각박해서가 아닐까. 나의 진로를 고민하기도 버거운 시국에 어떻게 사회를 고민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히려 지금 사회는 청년에게 마이크를 주는 일에 소홀해선 안 된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저처럼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청년들에게 마이크를 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양한 청년들이 말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지난 28일 제주대학교에서 위성곤 국회의원과 송석언 제주대학교 총장, 김용택 제주대학교 민주동문회 회장, 강찬구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현경준 제주대 총학생회장과 고광성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이사장 등이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위성곤 의원실 제공)
지난 10월 28일 제주대학교에서 위성곤 국회의원과 송석언 제주대학교 총장, 김용택 제주대학교 민주동문회 회장, 강찬구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현경준 제주대 총학생회장과 고광성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이사장 등이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위성곤 의원실 제공)

-본인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어디선가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

-학회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출마할 때 다짐 같은 게 있었나.

“총학 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학생 자치기구는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이었다.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한다. 자칫 ‘젊은 꼰대’의 장이 될 수 있는 게 총학이다. (웃음) 형처럼, 오빠처럼, 동생처럼 찾을 수 있는 회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에 회장이 아니라 반장이라는 말도 자주 한다. 친구 같은 회장이 되고 싶었다.”

총학 회장으로서 현경준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면.

“대학 총장 투표에서 학생 투표 비중을 반드시 올리고 싶었다. 기존 학생 비율 4%에서 이번에 8%까지 올렸다. 원래 목표는 12%였다. 아쉬움이 남는다. 또 예상외로 성과를 이뤄낸 부분이 있다. 대학 내 플라스틱 없애기 운동.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하고 있는데 내년부터 캠퍼스 내 판매하는 제품에서 플라스틱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아쉬웠던 점은.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한 번도 회식을 못 한 게 가장 아쉽다. (웃음) 소통이 부족했던 점이 항상 아쉽다.”

-차기 총학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지만 상황을 떠나서 (총학이라는 자치기구를)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전히 총학이라는 기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학생 자치권이라는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걸 항상 염두에 뒀으면 한다.”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4일 오전 제주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현경준 총학생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새해 계획은.

“딱히 생각해본 게 없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생회 활동만 10년을 했다. 이제 공부도 하면서 저를 챙기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집에 농사일도 도와드려야 한다.”

현씨는 자신의 인생을 뒤흔든 책으로 <전태일 평전>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두 권을 꼽았다. 노동 현장에서 마땅한 권리조차 입밖에 꺼내지 못하는 이들,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극심한 불평등.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현씨를 끊임없이 괴롭게 한다. 외면할 수 없어 끝내 그를 움직이게 한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현씨는 수차례 ‘소외된 목소리’에 대해 강조했다. 곧 학교를 졸업할 그가 사회로 나와 어떤 목소리를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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