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수오
사진=김수오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음식 한두 가지는 품고 사는 듯합니다. 저에게는 ‘멜 뎀뿌라’가 그런 음식입니다. 제가 살던 제주도에서는 멸치를 멜이라고 불렀고, 뎀뿌라는 튀김을 뜻하는 일본말이지요. 그러니 ‘멜 뎀뿌라’는 요즘 같으면 ‘멸치 튀김’이라고 부를 듯합니다. 

멜 뎀뿌라는 꽁치보다야 작지만 웬만한 국물용 멸치보다 훨씬 큰 놈들로 튀긴 음식입니다. 확실히 어른 가운뎃손가락보다 큰 멸치로 튀긴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주에서도 멸치는 그다지 귀한 생선은 아니었지만, 멜 뎀뿌라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남해안만큼은 아니지만 제주에서도 멸치가 많이 잡혔습니다. 동네 청년들은 “하다하다 안 되면 멜 배라도 타야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배를 타는 일은 힘든 일이고 그 가운데 어선이 더 힘겨운데, 어선 중에서도 멸치잡이 배는 정말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선택지 맨 마지막에 멸치잡이 배가 있었으니까요. 죽을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마지막으로 기댈 곳으로 멸치잡이 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배에서 처리를 해야 해서, 제주에서는 주로 멸치젓을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일까지 배에서 처리해야 해서 멸치잡이 배가 그토록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멸치잡이 배가 드나드는 성산포 항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해서 살아 있는 멸치를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믿기지 않는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멜 들어왔져~” 하며 길게 늘어지는 큰 소리가 동네에 울립니다. 마치 사이렌 소리 같습니다. 사이렌이 울릴 때처럼 행동도 재빨라야 합니다. 뭐든 들고 바닷가로 냅다 뛰어야 하죠. 양동이든 세숫대야든, 하다못해 고무신이라도 들고 수매밑 바닷가로 뛰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제주 올레길 1코스에 있는 광치기 해변으로 잘 알려진 바닷가입니다. 저도 있는 힘껏 수매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동네 형과 누나들이 벌써 손에 손에 멸치가 가득 든 통을 들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닷가에 가보니 멸치는 어느새 사라지고 무심한 바닷물만 한가로이 찰랑거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멸치 떼가 바닷가로 몰려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때 맞춰 바닷가에 가서 멸치를 퍼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물 반 고기 반 정도가 아니라 9할이 고기라고나 할까요.

멸치를 퍼올리지 못해 어깨가 축 처진 채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동네에는 벌써 기름 튀기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합니다. 성질 급한 멸치만큼이나 재빠른 사람들이 많나 봅니다. 큰댁에 들어서니 사촌누나들도 잡아온 멸치로 ‘멜 뎀뿌라’를 튀기고 있었습니다. 고소한 기름 냄새에 지글거리며 튀겨지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와 냄새였지요.

노릇하게 익은 튀김을 한 입 베어물어 봅니다. 첫맛은 진하고 강합니다. 급하게 튀기느라 내장도 손질하지 않았습니다. 비릿한 맛에다 내장에서 베어나는 진한 맛이 더해졌습니다. 이제 씹을수록 점점 고소해집니다. 멸치의 하얀 속살이 바삭한 튀김옷과 어울려 담백하면서도 기름기 가득한 맛이 온 몸으로 퍼져나갑니다. 몇 마리나 먹었을까요. 튀겨지는 족족 호호 식혀가며 먹어댔습니다. 기름 냄새, 향긋한 비린내, 지글거리는 소리가 동네를 가득 채운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멜 뎀뿌라를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바닷가로 멸치 떼가 몰려오는 일이 드물기도 했거니와, 머지않아 제주시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성산포에 멸치 떼가 온다한들 먹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아쉬움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정말로 아쉬운 일이 하나 더 떠오릅니다. 제주 바다에서 고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입니다. 친척 형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며 놀다가 고래를 본 이야기, 고래가 분수를 내뿜으며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바로 내 앞에서 무료 급식이 끝나 버린 것만큼이나 아쉽게도 바로 내 앞에서 고래의 자취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형들이 흔히 보던 모습을 나는 볼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이런 아쉬움을 담아 몇 년 전에 <고래 분수>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 배 비슷한 것만 띄워놔도 스르르 미끄러져갈 것 같은 날. 파도 한 점 없이 은빛 물비늘이 찰랑거리는데 오늘은 고래가 꼭 나타날 것만 같은 거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대며. 어렸을 때 여름을 주제로 그린 그림에 파라솔과 높다란 감시탑 저쪽 수평선 가까이에 물을 뿜는 고래, 고래 분수를 꼭그려 넣었잖아. 파라솔이나 감시탑은 멀리 떨어진 해수욕장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수평선이야 문만 열면 볼 수 있으니 고래 분수는 언제든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여름 방학이면 하루 종일 바닷가에 나가 놀다가 문득 수평선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고, 수평선 가까이 가보자고 자리돔 잡는 테우(뗏목)나 고등어 잡이 배 근처까지 헤엄쳐 간 적도 있었고. 여태까지 고래 분수를 보지 못했느냐며 우쭐대던 동네 형들의 이야기를 부러운 마음으로 들으며 속상해 하기도 했고. 물 밖으로 서서히 등을 내밀고 잠망경이라는 신기한 물건을 쑥 밀어 올린다는 잠수함 얘기를 들을 때도 나는 고래 분수를 떠올렸지.

그렇게 날씨가 좋은 날, 고래가 분수를 내뿜는 저 신화 같은 모습을 나는 보았을까요?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의 맥락을 훨씬 뒤에서야 깨달을 때도 더러 있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 읽은 작은 기사가 떠오릅니다. 강원도인가 남해안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해안가에 작은 물고기 떼가 몰려왔다는 내용입니다. 앗, “멜 들어왔져~” 하는 바로 그 장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제주도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더군요. 아마도 큰 포식자에 쫓겨 물가까지 밀려오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는 내용으로 끝맺는 기사였습니다.

포식자라면 상어? 고래? 그렇다면, ‘멜 뎀뿌라’는 고래가 안겨준 선물이었던 걸까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고래에 쫓겨 멸치 떼가 수매밑 바닷가로 몰려든 것일까요? 지난 시절의 일을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하고, 살며 책을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의 바탕에는 멜 뎀뿌라를 먹으며 고래 분수를 꿈꾸던 시절의 체험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_임영근

부산에서 태어나 여섯 살쯤에 부모님 고향인 성산포로 옮겨가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제주시로 이사가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육지’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학생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졸업한 뒤에는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상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고양시 인문학 모임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사 월간지, <시대> ‘서양철학산책’, ‘이 책 저 책 읽으며’ 코너에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 산문집 '일출봉에서 부는 바람'을 출간했다. 이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의사이자 사진작가인 김수오 선생 작품과 함께 격주 목요일 제주투데이에서 게재한다. 어렸을 때 성산포와 제주시에서 자란 일이 글쓰기에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제주다움을 담기 위해 산야를 누비는 김수오 한의사

사진_김수오

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깍이 한의사다.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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