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템페랩 협동조합 양사랑 대표 (사진=양사랑 대표)
제주템페랩 협동조합 양사랑 대표 (사진=양사랑 대표)

제주지역에서 18살 청소년들이 사업가로 나섰다. '제주템페랩 협동조합(이하 템페랩)'을 설립한 것.

템페랩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양사랑 대표(18), 김은수 이사(18), 정소민 이사(16), 서다희 이사(29), 이영이 감사(58) 이상 5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됐다. 볍씨학교 제주학사(이하 볍씨) 이영이 선생 참여로 평균 연령이 확 올랐지만, 구성원 평균 연령은 그래도 27.8살.

볍씨는 8살부터 16살까지 총 9년간의 교육과정으로 이뤄졌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경기도 광명시 소재 볍씨학교 본교에서, 마지막 9학년은 제주학사에서 보낸다. 제주학사까지 마친 양사랑 대표와 김은수 이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볍씨 인근에 거주하며 볍씨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템페 사업이다.

볍씨학교 학생들의 땀방울과 제주의 자연이 키워낸 콩으로 만든 콩찰리 템페. (사진=볍씨학교)
볍씨학교 학생들의 땀방울과 제주의 자연이 키워낸 콩으로 만든 콩찰리 템페. (사진=볍씨학교)

템페란 인도네시아 전통 콩 발효 식품으로 2020년부터 템페 사업에 뛰어든 이들이 처음부터 법인까지 설립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직접 재배한 콩이 볍씨학교에 쌓여 있자 조천읍에서 '코삿헌'을 운영하는 김은영 대표가 템페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자신의 기술을 더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 템페렙 기술 자문을 맡은 김 대표. 그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콩찰리 템페'를 농민장터 등에서 판매하다가 제대로 사업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볍씨에서 주체적 삶을 체화한 양사랑 대표와 김은수 이사는 주저없이 실천에 옮겼다. 

때마침 '2021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예비창업팀 모집 공고'가 있었다. 템페랩은 지난해부터 새롭게 신설된 '예비트랙' 부문에 선정됐다. 이들의 멘토는 박경호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창업육성 팀장이 맡았다.

박 팀장은 제주지역 사회적 기업 창업 멘토는 숱하게 해봤지만, 청소년 창업팀 사업화 경험은 전무했다. 그는 "교육청 지원사업으로 교내 매점 등은 청소년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운영하는 경우는 있지만, 청소년들이 시장에서 사업화에 나선 것은 제가 아는 한 제주지역에서 처음"이라면서 "저도 처음이다 보니 실수를 통해 배워나갔다. 어른이고 청소년이고 처음은 다 서툰 법"이라고 했다. 

멘토인 박 팀장도 처음엔 우려가 많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공교육으로 따지면 고2에 해당하므로 양 대표와 김 이사는 대학 입시 등 아직 학업이 남아 있다. 또한 예비트랙 선정 시 지급되는 700만원 상당의 창업자금 등도 적지 않은 돈인데, 이들이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기우였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발기인 모집, 정관 작성, 설립동의자 모집, 창립 총회, 설립 신고 이상 5단계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들은 복잡한 예비창업팀 신청 서류부터 법인 설립에 필요한 서류까지 직접 다 작성했다. 

양 대표는 "어려운 부분은 볍씨학교 선생님과 박 팀장님, 법무사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끼리 작성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처음에는 생소한 단어가 많아 어렵긴 했지만, 하다 보니 되더라. 서툰 경험치들이 쌓여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6월, 제주 토종씨앗인 푸른독새기콩이 싹을 틔운 모습이다. 볍씨아이들은 환경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푸른독새기 콩을 이용해 인도네시아 전통 발효음식인 템페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사진=볍씨학교)
제주 토종씨앗인 푸른독새기콩이 싹을 틔운 모습이다. 볍씨아이들은 환경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푸른독새 콩을 이용해 인도네시아 전통 발효음식인 템페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사진=볍씨학교)

이들은 법인 설립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부모님 동의서를 받는 과정을 꼽았다. 

국내 청소년 기본법에 따르면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청소년으로 간주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만13세에서 만18세까지 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이 아르바이트, 취업, 기타 법률행위 등을 하게 될 경우 부모님 또는 법적 후견인 동의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청소년 법인설립 멘토가 처음이었던 박 팀장도 부모 중 한 분 인감증명서만 준비하면 되는 줄 알고 진행하다가 부모 모두의 인감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진행하면서 알게 됐다. 

양 대표는 "볍씨 학생들은 모두 육지가 본거지다. 엄마 아빠가 육지에 사시니까 필요한 서류를 우편으로 받아야 했는데, 누락된 서류를 보충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흘에 있는 숙소에서 제주시까지 버스를 타고 법무사를 여러번 드나들면서 느낀바가 있다고 했다.

양 대표는 "부모님 동의서를 받으며, 여전히 청소년을 보호와 선도 등 수동적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 인식과 시각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청소년을 사회 참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민주시민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입시를 위한 청소년이 아닌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육성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템페랩 김은수 이사 (사진=양사랑 대표)
템페랩 협동조합 김은수 이사 (사진=양사랑 대표)

김 이사 역시 "볍씨에서는 제2공항 반대 등 정치 참여 기회를 많이 갖는다. 그러다보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넓어지고 청소년 당사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청소년 역시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 갈 권리를 갖는다. 법인 설립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적으로 사회참여의 기회를 갖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이들이 청소년이 사업을 하기 위해 반드시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어쩐지 부당하다는 느낌"이라고 말하자 템페렙 법인설립 실무를 진행한 안재형 법무사는 책임 능력의 인정 여부가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안재형 법무 전문 멘토는 "국내법상 미성년자에게 법적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책임을 부모 혹은 법적 후견인이 하게 돼 있다. 보장된 자율에는 책임과 의무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데, 청소년의 법적책임 능력을 어디까지 지울 것인가는 예민한 문제"라면서 "법인 설립은 시작에 불과하다. 임원 활동은 할 수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미성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제약이 생길텐데, 그 딜레마를 잘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왼쪽부터) 볍씨학교 정소민, 이제윤, 강새누 학생 (사진=양사랑 대표)
(왼쪽부터) 볍씨학교 정소민, 이제윤, 강새누 학생 (사진=양사랑 대표)

다행이 지난해 12월 30일, 템페랩 등기부등본이 나왔고, 올해부터 볍씨 정소민, 이제윤, 강새누 학생도 템페 사업에 가담키로 했다. 

양 대표는 "작년인가, 다른 언론사에서 우리학교(볍씨)를 다룬적이 있다. 우리는 제주학사에서 저마다 소득 활동을 하는데, '얘들 데리고 장사하지 마라'는 댓글이 기억에 남았다. 볍씨에서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배운다. 청소년은 어른의 도구가 아니라 경제 활동 주체로 충분히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템페렙을 잘 키우고 싶다. 잘 성장한다면, '청소년은 사회적 책임을 지기 어려운 존재'라는 인식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라면서 "혹시 사업을 하고 싶은 청소년이 있다면 저의 노하우를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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