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COP26)가 끝나고 가장 이슈가 된 단어는 누가 뭐래도 탄소중립일 것이다. 모든 국가가 빠르면 2040년 늦어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50년을 탄소중립 기점으로 잡고 탄소중립시나리오를 만들고 탄소중립기본법을 시행했다. 

기후위기가 눈앞의 큰 위기로 당도하고 나서야 전 세계가 부랴부랴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이 시점에 무려 10년 전 제주도는 ‘무탄소(Carbon-free)’를 선언했다. 그리고 달성 시점을 2030년으로 설정하며 제주도를 전혀 모르던 외국의 기후·에너지 전문가들까지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이 놀라운 계획은 곧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계획에 따라 4조9천억 원 규모의 사업으로 재편되며 제주도를 탄소 없는 섬으로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하게 했다.

4조9천억 원 규모의 거대한 제주형 그린뉴딜 계획

무려 일자리 3만개 이상을 만들겠다며 들고나온 제주형 그린뉴딜의 핵심은 신재생에너지의 메카인 제주도에 청정사업을 육성하고 자원순환사회를 구축하는 한편, 그린리모델링과 저탄소 모빌리티의 기반을 강화해 그린뉴딜 선도지역으로서 청정미래도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단 뭔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내용에 대한 이해도 어려울뿐더러 어디에 4조9천억 원이 투입되고 어떻게 3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언론 등에 보도된 세부계획들을 보면 전력거래 자유화, 제주형 전기요금제도 시행, 그린리모델링, 스마트시티, 분산에너지확대, 전기차배터리 재활용, P2H(남는 전기를 활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추출하여 저장하는 기술), V2G(전기차의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로 활용하는 기술로 전기차로 충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남은 전기를 전력계통으로 다시 흘려보내(방전)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부유식 해상풍력 개발, 2030년 내연차량 등록금지 추진 등 많은 계획이 거론되었다.

그런데 정작 지금 도민사회에 기억되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그린뉴딜이 있었냐고 되물을 정도다. 많은 것들을 나열했지만 정작 도민사회가 무관심한 이유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홍보도 심지어 공론의 자리도 마련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민들은 그저 제주도가 내놓은 그린뉴딜 계획을 지켜만 보는 입장이다. 게다가 제주형 그린뉴딜은 원희룡지사의 사퇴 이후 어디 갔는지도 모르게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전문가에게 필요한 그린뉴딜 말고 도민에게 필요한 그린뉴딜

제주도의 그린뉴딜은 전문성을 내세우는 고도의 기술과 산업 중심의 계획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게다가 이 기술과 산업이라는 것은 당장의 실현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연구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이런 내용은 정부의 R&D 예산과 정책으로 충분히 담보할 수 있다. 지금 제주도에 필요한 것은 대단한 기술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그린뉴딜이어야 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뉴딜을 보자. 물론 고도의 기술분야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지금 당장에 실현가능한 정책도 매우 많다. 그중에 하나가 ‘시민 기후단(Civilian Climate Corps)’이 다. 90년전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중 하나인 ‘시민 자원 보전단(Civilian Conservation Corps)’을 벤치마킹한 정책이 시민 기후단 정책이다.

(사진=김정도 제공)
▲ 시민 자원 보전단 패치 / Grist / David J. & Janice L. Frent / Corbis via Getty Images(사진=김정도 제공)

그렇다면 이 시민 기후단은 무엇인가? 대공항이 미국을 집어삼킨 1929년 미국의 실업률은 25%를 넘나들며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때 나온 정책이 시민 자원 보전단이다. 이 정책으로 1933년부터 42년까지 9년 동안 무려 300만명의 청년이 고용되었다. 숲과 공원을 만들고, 국토에 나무를 심고, 산불과 병충해를 방제하고 황폐한 밭을 일구는 일까지 투입되었다.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은 과도한 산림 벌채로 황폐한 국토를 보전해야 한다며 산림과 토양 복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여기에 청년에 대한 일자리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둘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정책이 시민 자원 보전단 사업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90년이 지나 이 사업을 복원하고(사실 공식적으로 종료되지 않았기에 복원이란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시민 기후단'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자는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는 20만 개다. 추진 목표는 공유지와 물을 보존하고, 나무를 심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며,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고, 산불에 대응하고, 녹지를 조성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 진보진영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아동과 노약자 돌봄사업, 가난한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재구성 등의 공동체 회복사업까지 요구하며 더 많은 예산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2021년 7월 20일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 기후단을 예산 조정 법안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 하원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 Photo by Kevin Dietsch/Getty Images(사진=김정도 제공)
▲ 2021년 7월 20일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 기후단을 예산 조정 법안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 하원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 Photo by Kevin Dietsch/Getty Images(사진=김정도 제공)

신자유주의의 선봉이자 거대한 빅테크와 플렛폼기업들이 즐비한 미국에서 나무를 심어 숲과 녹지를 늘려나가는 것, 화재로부터 산림을 보호하는 것, 수자원을 보전하고 하천과 호수, 습지를 가꾸는 것,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 이 모두를 위해 공동체의 회복에 나서는 것 등에 인력과 예산을 대규모 투입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의 기후위기 대응이고 미국의 그린뉴딜이다. 그런데 제주도가 내놓은 그린뉴딜은 인간과 생태계가 쏙 빠져 있다. 오로지 신기술과 대규모 산업 육성 등 전형적인 개발과 성장주의에 기반한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도민의 피부에 와닿아야 진짜 그린뉴딜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정치인 중 하나인 보스턴 시장 미셀 위의 대표적인 그린뉴딜 정책은 바로 화석연료 산업에 공적 자금을 끊고 버스를 무상화하는 조치였다. 28번 노선을 비롯해서 보스턴 시를 관통하는 세 개의 노선에 대해 2년 동안 무료로 운영하는 것을 시범 사업으로 진행한다. 보스턴의 저소득층과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28번 노선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 무상버스 실험을 시행한 결과 버스 운행 시간이 두 배로 빨라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이용하는 성과를 올렸다. 서민 복지는 물론 탄소 저감, 쾌적한 교통환경을 모두 만들어 낸 것이다. 

(사진=김정도 제공)
▲ 보스턴시 28번 노선버스 / Photo By Stuart Cahill/MediaNews Group/Boston Herald(사진=김정도 제공)

이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그린뉴딜은 기후위기의 시급성 만큼이나 당장에 실현할 수 있어야 하고 당장에 피부에 와닿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도민에게 직접 이익이 발생하고 그 이익만큼의 사회정의와 기후위기 대응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그런 정책들은 굉장히 고도의 기술과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까지 도민사회가 실천하려는 노력을 정책으로 입안하고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 위한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뒷받침해 제주도 스스로 일회용품에 대한 제한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이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대중교통 이용을 통해 탄소 저감에 애쓰는 시민들을 위해 버스완전공영제를 실시하고 무상버스를 도입하는 것, 자가동력을 활용해 환경보전에 애쓰는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를 위해 자전거도로를 개선하고 보행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것, 에너지 절약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의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에너지 소비를 줄여 탄소를 저감하는 것 등 진짜 그린뉴딜 정책은 이미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도민들이 모르고 도민들이 알기 어려운 그린뉴딜이 아니라 도민에게 직접 이익이 되고 기후위기에도 이익이 되는 진짜 그린뉴딜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주도가 눈과 귀를 열고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도민과 소통하고 소통한 결과를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어렵고 복잡한 기후위기 대응말고 쉽고 명료한 기후위기 대응을 지금 당장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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