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비행장 (사진=강정효)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사진=강정효)

지난해 12월 13일 국방부 청사에서 무슨 회의가 열린 모양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이름이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실무협의회 1차 회의’라고 한다. 이름은 그럴싸한데 진행하는 방식을 보면 그 이름값을 못할 것 같다. 그래서인가 도내 12개 시민사회단체가 문제 제기를 했다. “논의 과정을 도민에게 공개하지도 않고, 도민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알뜨르가 어떤 땅이기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가.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고, 면적이 184만9672㎡가 될 정도로 광활한 토지다. 본디 6개 자연마을이 있던 곳이데,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수용되어 주민들은 내몰리고 군사기지로 활용되었다. 일제가 패망하고 물러갔으니 당연히 그 땅은 본래 주인들에게 돌아갔겠지 싶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수용 과정에서 보상이 있었고 등기 이전이 되었기에 주민들의 권리는 무시되었다. 대신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국방부 관할 땅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방부는 이곳을 군사기지로 활용했는가.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실제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방부가 농사짓는 지역주민에게 임대해 주었다. 농경지로 활용되어 왔다는 말이다. 그랬기에 오래 전부터 이 땅을 비군사적으로, 제대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군사기지의 역설

‘비군사적으로, 제대로 활용’한다면 당신은 어떤 활용을 떠올리겠는가. 굴곡도 없고 묘지도 거의 없는 광활한 평야다. 주변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있고, 송악산이 있다. 해안 절경은 또 어떠한가.

여기서 갑자기 국방부가 고맙다. 국방부의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국방부 관할의 땅이었기에 난개발을 막았다. 만약에 이 광활한 땅이 국방부 관할이 아니었다면, 쉽게 말해 사유지였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중문 관광단지보다 이곳에 먼저 호텔들이 들어서지 않았을까. 묘지도 없는 평탄지, 골프장이 벌써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곶자왈 한가운데를 밀어내며 들어선 영어교육도시나 신화역사공원이 먼저 이곳을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군사기지, 평화의 섬과 모순되는 군사기지가 때로는 이런 역설을 만들고 있다. 난개발 저지의 최전선에 국방부가 서 있는 모습이다. 고맙다, 국방부!!! 아직까지는.

알뜨르는 국방부의 사유지가 아니다

고맙기는 한데,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알뜨르는 국방부의 사유지가 아니다. 국방부는 이 땅에 대해 단지 관리의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을 뿐이다. 알뜨르는 국유지이며, 국유지는 공공의 토지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위임해준 국민 뜻에 따라야 할 것이지, 사유지마냥 마음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2009년 제주도가 정부와 체결한 기본협약(MOU) 제5조 ‘국방부장관은 국방부 소관의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속칭 알뜨르 비행장 부지를 제주자치도 지역발전을 위해 법적 절차에 따라 제주자치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문구에서도 보듯이 ‘국방부 소관’이라고만 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땅은 국방부의 사유지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은 주권자인 국민이며, 그 국민이 국유지에 대한 활용 권한을 갖는다.

그곳에 살았던 원주민 또한 이제는 알뜨르의 주인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일제에 의해 강탈당한 토지이기에 환수해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분명 보상을 받았고, 등기 이전 절차를 밟았다. 원하는 일은 아니었겠으나, 보상을 받아놓고 권리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들의 땅도 아니다. 국방부의 사유지도, 원주민의 사유지도 그렇다고 해서 제주도 행정의 사유지도 아니다. ‘모두의 땅’이다.

(사진=제주투데이 DB)
서귀포시 대정읍 산방산을 배경으로 보이는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사진=제주투데이 DB)

시민 주도, 공공적 활용

이제 ‘모두의 땅’인 알뜨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금까지 농경지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은 군사적 가치가 없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국방부는 손을 떼어야 한다. 그동안 난개발을 막은 공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쉴 때도 되었다. 국민이 위임한 관리 책임을 내려놓을 시기가 된 것이다.

제주도 행정이 주도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 동안 제주도 전역에서 이뤄진 행정 주도 개발은 주로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특별자치도’의 ‘특별’도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개발에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고, ‘평화의 섬’이라는 이름에서의 ‘평화’도 자본의 이익을 감추기 위한 악세사리에 불과했다. 알뜨르에 붙은 이름도 ‘평화대공원’이다. 자본의 이익에 충실할 ‘평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가 멀리 있지 않다. 저 넓은 땅을 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국유지인 만큼, 자본의 이익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그런가? 공사에 투입되는 토건 자본의 이익은 기본이다. 그보다 더한 경우는 소위 ‘민자’유치라는 방법이다. 개발에 투입될 국고, 혹은 지방정부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꼼수를 쓴다. 그리고는 그 민간자본에 장기 사용권한을 부여한다. 이럴 경우, 이것은 사유지와 다름이 없다.

나라에 돈이 없으면,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도 농경지로 활용되어 왔지 않은가. 앞으로도 농경지로 두어도 된다. 급한 건 자본의 탐욕과 그에 결탁한 잘못된 행정이지, 도민이 아니다.

아니, 행정이 작심하고 자본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치자. 그렇게 하여 바르게 일을 추진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봐야 한계에 봉착한다. 행정에서 창의력이 나오긴 힘들다. 행정은 본래 틀에 박힌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서 제주도 행정은 시민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겠다고 할 것이다. 안 된다. 시민이 주도해야 한다. 행정이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것은 뻔하다. ‘참여’한 그 시민은 들러리에 그칠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 왔다. 그러니 시민이 주도해야 한다. 시민 ‘참여’가 아니라 시민 ‘주도’다. 시민이 주도하고, 그것은 공공적 활용을 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시민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시민이 주도하는 위원회여야 한다. 행정의 역할은 법률 검토와 재정 지원에 국한되어야 한다. 왜? 그 땅의 주인은 국방부 행정, 제주도 행정이 아니니까. 국유지는 공공의 땅 즉 '모두의 땅'이다. 행정이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행정은 주체가 아니라 도우미에 머물러야 한다. 자고로 빼어난 작품은 ‘민의 주도, 행정의 지원’에서 나온다.

(사진=강정효)
(사진=강정효)

제안

시민사회에서는 이제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행정이 틀을 다 만들고 와서 ‘시민 참여’를 권하면, 그때는 이미 늦다. 그때 비판해도 수용을 안 할 것이다. 행정이 진도 나가기 전에 모임을 구성하고 디자인하면서 행정에 요구하자. 국유지는 공공의 땅임을 주지시키자. 집단지성은 힘이 세다.

소수의 전문가, 효율 만능의 행정가. 특정 세력의 외압만 배제해도 기본 바탕은 마련된다. 그런 배제 위에 모임에서 추천한 사람들로 워킹 그룹을 구성하자. 공개적으로 의견을 수집하고, 기본 틀을 만들고, 수차례 공청회를 열고, 그러면서 세우고, 고치고 다듬어 가면 될 것이다. 워킹 그룹도 고정적일 필요는 없다. 일을 하면서 열정이 유지되면 계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교체한다. 떡을 보고 일할 사람은 애초부터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떡보다는 공공적 가치를 중시하면서, 열정 넘치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전문가를 초청하여 자문을 구한다. 그것을 다시 시민들에게 공개하여 의견을 수렴한다.

먼저 상식선에서 우선 제안하고 싶은 원칙들이 있다.

첫째, 한꺼번에 공간 구성을 마무리하지 말라. 2045년에 해방 100주년의 의미를 두고 완성하면 좋겠다. 구역을 세분하여 연차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며 공원을 구성하라. 대략적 총괄 구상에 3년 이상, 10개 이상의 구역을 만들어 각 구역마다 2년씩 공을 들이면 대략 해방 100년의 시간에 닿을 것이다. 구역마다 작업팀을 공모하고, 앞 작업팀의 성과와 비교 평가하는 것도 좋겠다. 스페인 가우디 성당은 1882년에 착공해서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에 비하면 2045년도 너무 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느리게 하면 그만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친환경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은 난개발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둘째, 과시적 거대 구조물을 만들지 말라. 이런 건 후진국 스타일이다. 공모 규정에 규모의 제한을 둬야 한다. 이것 역시 난개발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셋째, 전쟁을 미화하는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서울 용산에 ‘전쟁기념관’이 있다. ‘전쟁을 기념한다?’ 이런 개념은 아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전쟁기념관은 흔치 않다. 전쟁 기념이 아니라 평화 기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넷째, 공원은 이윤 창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간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는 사유지가 아니라 공공의 땅이다. 그 공간에서는 시민 행복이 우선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시 말해 관 주도의 난개발로 진행될 것이라면, 차라리 여기서 멈춰라.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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