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청소년·청년의 꿈여행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이 있다? ‘꿈여행’이라는 단어도 생소한데 이를 지원하는 장학사업이라니… 게다가 사업을 추진하는 이는 이제 막 만 26세가 된 청년이다. 

지난 8일 장학 프로젝트 ‘비상한 상상’을 시작한 양소희씨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블로그 ‘소히월드’ 운영자, 클럽 ‘유난’ 운영자, 정치혁신 NPO ‘아그니카’ 전략 기획 매니저, 정당 시대전환 대변인. 그를 소개하는 타이틀이 여러 개다. ‘유별난’ 장학사업이 궁금해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새 마치 모험담 같은 ‘양소희 성장기’로 이어졌다. 

‘비상한 상상’은 제주지역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행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맛집을 들르고 경관이 멋진 곳을 찾아다니는 일반 ‘여행’과는 다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멘토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사회·문화 관련한 기관이나 장소를 찾아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여행이다. 

#기회의 불평등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어하는 관광지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각자가 가진 꿈의 크기를 현실에 맞춰 재단할 수밖에 없는 장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치·교육·문화 등이 모두 중앙으로 쏠려있는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특성이 가진 한계다. 

“전국에서 도 단위로 학생 대표 뽑아서 미국 대사관 초청으로 가는 외교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제가 제주 대표로 뽑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영어 가장 잘하는 애일 거다’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가서 보니 저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양씨는 이 같은 ‘기회의 격차’에 대해 청소년기부터 ‘불만’을 가졌다. “지방에서 산다는 이유로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에 눈을 뜬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영어 공부는 물론이고 교과외 활동으로 모의 유엔 등 이미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고 있었다. 

같이 간 제주 친구들은 “부럽다”는 반응이었지만 양씨는 “내 꿈이 절대 작거나 부족하지 않은데 제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실력 차이가 나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했다”며 “이게 과연 정당한가라는 물음이 생겼고 씩씩거리며 돌아왔다”고 떠올렸다. 

이후 양씨는 ‘우리도 교과서만 공부할 때가 아니다’라며 제주에 돌아오자마자 친구들을 모았다. 어설프긴 하지만 모의 유엔이나 UCC를 만들어 독립영화제를 여는 등 ‘서울 또래’들의 활동을 ‘흉내’ 냈다.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유난스럽다

처음엔 그의 활동을 유난스럽다라고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학교 선생님들에겐 공부는 안 하고 딴짓하는 학생으로 비치기도 했다. 본인의 활동이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고 말하는 어른도 있었다. 인정을 받지 못한 몇 년간은 자신 역시 ‘이게 맞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양씨가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게 된 두 가지 순간이 있었다. 하나는 공부만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 ‘나 여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라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볼 때다. 실제로 독립영화제를 같이 준비했던 한 친구는 지금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며 살고 있다. 또 하나는 열아홉살에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때였다. 나라에서 ‘네가 잘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은 것. 

“대학교에 갔는데 처음 받았던 질문이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였어요. 그때 동기가 20명이었는데 저랑 한 명 빼곤 다들 해외에서 유학한 친구들이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던 거죠.”

양씨가 청소년기 느꼈던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여전했다. 해외에서 유학한 경험이 당연한 학생과 양씨처럼 국내에서만 공부한 학생과는 대화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보통은 기죽고 주눅 들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양씨는 다른 선택을 했다. 기회의 불평등에 지지 않고 더 많은 네트워크를 쌓고 더 많은 경험에 도전했다. 항상 큰 세상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더 나아가 “지방에서 자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며 본인과 비슷한 경험을 할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개인 블로그 ‘소히월드’는 더 크고 넓은 세상을 갈망하는 청소년들에게 길잡이가 됐다. 

소히월드 자료사진. (사진=양소희 제공)
소히월드 자료사진. (사진=양소희 제공)

#소히월드

‘소히월드’는 11일 현재 2745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양씨는 “회원 수가 허수가 아니라 실제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숫자”이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롤모델이 되어주는 밀도 있는 관계”라는 데서 구독자 수가 수 만명에서 수십만명에 이르는 ‘인플루언서’ 계정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자부심을 내보였다. 

기존 블로그를 토대로 2030 청년들이 자기다움을 발견하자는 커뮤니티 클럽 유난이 만들어졌다. 양씨는 “‘유난스럽다’가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실제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남들과 달라 특별한 데가 있다는 걸 뜻한다”며 “‘유난’의 사람들이 그렇다.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고민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비상한 상상

양씨는 ‘소희월드’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아카이빙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유하기로 했다. 기존 회원들이 영어 스피치나 영어 독학 방법, 글 쓰는 방법, 자기 관리 등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멘토링 코치에도 나섰다. 값비싼 과외와 달리 장벽을 낮추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생긴 수익과 지난해 ‘소히월드’가 벌인 크고 작은 사업들을 통해 얻은 수익이 (양씨의 표현을 빌자면)“꽤 상당한 금액”이 됐다. 양씨는 또 고민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가치 있는 일에 투자를 하고 싶었고 이 고민은 ‘비상한 상상’이라는 장학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장학 프로젝트 소식을 접한 지인들이 적극적으로 만남을 제안하거나 다양한 분야의 기관 및 멘토들을 연결시켜줬다. 그 결과 국회의원, 카카오벤처스 대표, 미디어 스타트업 '얼룩소', 사회혁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단법인 '아쇼카' 등이 방문기관 및 멘토 리스트로 채워졌다.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주위에선 말리는 친구도 많았어요. 그 돈을 씨드머니로 수익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해서 불리라는 얘기도 있었고 차를 사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모았다가 집을 사라는 친구도 있었죠. 근데 제 입장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투자는 따로 있었어요. 그게 바로 ‘비상한 상상’이에요.”

장학재단을 만드는 일은 양씨 삶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장학사업과는 달라야 했다. 학비를 지원하거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건 더 규모가 큰 장학재단이나 학교에서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여행’에 지원하는 장학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 것. 

‘비상한 상상’ 1기 장학생은 지난달 말 양씨의 26번째 생일에 앞서 모집이 이뤄졌다. 지난 9일 제주에서 면접이 진행됐으며 곧 첫 ‘양소희 장학생’이 나오게 된다. 양씨는 “이 친구들이 나중에 커서 저랑 같이 근사한 일을 벌이는 동료가 될 것”이라며 “굉장히 큰 투자가 아니냐”고 ‘왜 하필 장학사업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장학생 선정 기준은 첫째 자신들이 보고 듣고 얻은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일 것. 둘째 지금 당장 진로 계획이 불투명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사람일 것. 여기다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항목은 서울에 갈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경우다. 양씨는 “자신의 생각을 멋지고 세련되게 글로 표현하는 지원자보다 조금 서툴더라도 열망이 느껴지는 지원자의 글이 더욱 끌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쉬웠던 점도 있다. 제주시 지역엔 입소문을 타고 ‘비상한 상상’이 잘 알려져서 지원자가 많은 반면 서귀포시 지역은 그렇지 않아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양씨는 “서귀포 쪽엔 모집 소식이 늦게 알려졌다고 하더라”며 “1기를 잘 성공시켜서 다음번엔 서귀포 지원자도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당 시대전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양소희씨. (사진=국회TV 화면 갈무리_
정당 시대전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양소희씨. (사진=국회방송 화면 갈무리)

#세계가 부서진다는 것

장학생들이 꿈여행을 통해 닿는 목적지는 어디일까. 확장된 세계다. 양씨는 “비상한 상상에 참여한 친구들이 각자의 세계가 부서지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지금까지 한정된 지역에서 살아오며 쌓아온 벽을, 경계를 깨부숴서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  

다시 그에게 물었다. 삶의 목표가 ‘왜 하필 장학재단을 만드는 일이었느냐’고. 그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는 대학교 졸업식 당시 대표 연설에 나서 언급하기도 했다. 양씨는 지난 삶을 돌이켜볼 때 자신의 결정에 의문이 생길 때, 꿈에 대한 확신이 흐려질 때마다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고 했다.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절대 기죽지 말라”던 선생님, “너무 힘들었겠지만 잘 살아줘서, 버텨줘서 고맙다”던 선생님, “너는 비범한 아이니까 기준선에 안 맞춰져 있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말라”던 교수님. 학교에서 ‘소희가 공부는 안 하고 딴짓을 한다’고 하자 “우리 아이가 굉장히 특별한 일을 벌이고 있네요”라며 오히려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준 부모님. 이 모두가 ‘좋은 어른’이었고 양씨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그니카 사람들과. (사진=양소희 제공)
아그니카 사람들과. (사진=양소희 제공)

#제주

“만약 제가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자라지 않았을 거 같아요. 엄청 착하고 모범생이고 어른들의 말을 착실히 따르는 학생이었겠죠. 지금 같이 뒤엎고 반항하고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학생이 아니었을 거예요. (웃음) 오히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부당하다’는 감각을 기를 수 있었어요.”

그를 지금의 ‘양소희’로 만들어준 롤모델이나 책이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없다”였다. 그리곤 한참을 고민하더니 “제주인 것 같다”고 답했다. 모든 게 주어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착하고 재미없는 학생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의 새해 계획도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세계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계획들로 채워졌다. 첫째로 클럽 유난의 법인화 절차를 밟아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다질 예정이다. 

둘째로 아그니카에서 시민들이 쉽고 즐겁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기획해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실험하겠다는 목표도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정당 시대전환에선 기성 정치인이 꽉 불들고 있는 정치판 안에서 청년 정치인이 주축이 되는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고 프로젝트를 꾸려갈 것이라 밝혔다. 

다음에 만날 ‘양소희’는 또 어떤 타이틀을 갖고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벽을 부수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속한 세계는 더 넓어져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변화돼 있을 것이다.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8일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양소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번외]청년 정치인 양소희 인터뷰

-아그니카, 시대전환… 다양한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청소년기부터 부당한 것을 바꿔가려 하다보니 항상 종착지가 정치였다. 예전엔 국제기구에 가고 싶었는데 지금 당장 시급한 우리 공동체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연한 기회에 정당에 합류하게 됐고 생각보다 정치로 바꿀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왜 아무도 이걸 알려주지 않은 거지’하는 생각이 들더라. 더 이상 청소년과 청년의 파이를 다른 어른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 목소리를 지키려면 내가 여기서 잘 버티고 커져야겠다는 불타는 의지를 발견했다. (웃음)”

-기성 정당이 아닌 신생정당을 선택한 이유는.

“성격 자체가 안주하거나 안정적인 기반에서 살 수 없다. (웃음) 거대 정당에 가면 기존에 만들어진 패러다임을 혼자 힘으로 맞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 생태계를 좀 더 신선한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걸 잘 할 수 있는 정당이 신생정당이라 생각했다. 거대 양당이 꽉 잡고 있는 체제가 더 이상 시민들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대안정치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신생정당에서 시작하는 건 괜찮은 경험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것은.

“젠더 갈등. 선거를 앞두고 거대 정당이 표 만들기로 이 이슈를 소모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건강한 담론을 만들고 싶다. 남성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을 정확히 모른 채 이미 화가 나 있더라. 그런데 막상 대화를 하면 여성 인권을 깎아내리면 어떤 사회적 비용이 뒤따르는지, 한쪽의 편을 들자는 게 아니라 다같이 나아가자는 취지에 대해 다들 공감하게 된다. 그런 메시지를 세련되게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청년 정치인의 위치는.

“대변인을 맡다 보니 기성 정치인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과연 청년 정치인을 동료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생기더라. 동료로 생각한다면 절대 던지지 못할 말들이 가끔 나온다. 기성 세대는 그들만의 전문 영역이 있다면 청년 세대 역시 우리들만 얘기할 수 있는 말들과 감각들이 분명 존재한다. 우리만큼 우리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다. 청년 정치인도 각자가 가진 의제를 말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동료라는 걸 인식해 줬으면 한다.”

-그렇다면 청년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착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 요구하고 대들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내 뜻을 가지고 내가 가진 문제 의식을 해결하고 싶어서 다들 여기 온 게 아닌가. 또래 정치인들을 보면 항상 안타까운 점이 있다. 특히 거대 양당에 있는 일부 청년 정치인들은 ‘어느 의원실에 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다. 오히려 ‘이 의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협력하시지 않으면 안 될 걸요’라는 당당한 입장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무례하라는 게 아니다. 내 목소리를 내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애티튜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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