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양극화가 심각해진 한국 정치. 선거때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했다”는 말이 나돌지만, 3・9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 차선은 고사하고 “뽑을 사람 없다”는 말이 포털 자동검색어로 나올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가족문제’와 ‘말실수’ 등이 이어지자 청년층을 중심으로 ‘후보교체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규모가 상당한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문빠’ 중심으로 일부 윤 후보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인물만 남고 정당은 사라진 거대 양당 체제의 부작용이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지지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낳은 것. 

무릇 정치인라면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기에 뽑을 사람이 '정말' 없는 걸까. 도(道)가 사라진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바람직한 정치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어떤 사회철학적 방안을 고민했을까. 

12일 오후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인문숲이다, 제주투데이가 공동 주최하고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탐라학당이 주관하는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두 번째 강연이 제주시 아라일동 희망나래 미디어카페에서 진행됐다. 

강사를 맡은 강봉수 제주대학교 교수는 이날 공자의 안인(安人)의 정치론을 설파하며 이상적 정치공동체와 현실정치 사이에서 고민했던 그가 왜 자신의 원칙(왕도정치 王道政治)과 다른 ‘패도정치(覇道政治)’까지 수용했는지 설명했다. 

강봉수 교수(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 교수(사진=박소희 기자)

강 교수에 따르면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 사회는 무위이치(無爲而治)가 이뤄지는 국가다. 이는 인(仁)의 원리가 정치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실현되는 국가로 사회 지도자가 인위적으로 정치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국가다. 

공자가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지도자는 수기(修己 공부)를 바탕으로 안인(安人 사람을 편하게 함)의 정치철학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즉 스스로를 갈고 닦아 주의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수기안인'을 강조했다. 

무위정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는 '타인'과 '생명'을 중시하는 인(仁)의 사상을 무장해야 하며 사람을 넘어 다른 생명까지 포함해야 한다. 또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뒤 각자 맡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낮은 자세로 지켜볼 뿐, 정사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무위이치, 즉 무위의 정치란 지도자가 인위적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정치이다. 무위라 해서 지도자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능력 있는 신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다음에는 자신을 낮추고 임금 자리(남면南面)에 앉아 있을 뿐 신하들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정사는 신하들이 각자 자신의 맡은 바의 일을 알아서 처리한다. 그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면 뭇별들이 저절로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신하들이 알아서 정사를 처리하고 임금은 남면하여 앉아있을 뿐 간섭하지 않기에, 백성들은 임금이 권좌에 앉아 있는 조차도 모른다.

그는 "백성이 너무 편안해서 임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회가 바로 공자가 꿈꾸던 이상 사회다. 공자는 무위이치를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요원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위이치(인간 중심의 문명정치)를 통해 소강을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무위이치의 대동사회로 가는 정치를 꿈꿨다"라고 했다. 

무위를 꿈꿨지만 현실을 직시한 공자...'부국'과 '복리'가 우선

오늘날 큰 도가 이미 숨으니, 천하가 사적인 가문을 위한 것으로 되었다. 각자는 자기 부모만을 부모로 여기고, 각자는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긴다. 재화와 힘도 자기를 위해서 사용된다. 대인이 대를 이어 일어나 예를 만들었고, 성곽과 구렁을 파서 견고하게 하였다. 예의로 기강을 삼음으로써 군신 간을 바르게 하고, 부자간을 돈독하게 하고, 형제간을 화목하게 하고, 부부간을 화합하게 하였다. 제도를 설치하고, 밭과 마을을 구획하였다. 어질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가 공을 세워도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모의가 세워지고 군사가 일어났다. 우(禹; 하), 탕(湯; 은), 문(文)ㆍ무(武)ㆍ주공(周公)등의 성왕들이 이로 말미암아 선택되었다. 여섯 군자들은 예(禮)에 삼가지 아니함이 없었다. 그 의로움을 드러내고, 신뢰를 고구하였다. 만약 허물이 있으면 형벌과 사랑[仁]으로 설득하고 양보를 강해서 백성들에게 항상된 규율이 있음을 보였다. 이 규율로 말미암지 않는 이가 있으면 세력을 가진 자라도 제거하여 대중들이 재앙의 본보기로 삼도록 하였다. 이를 일러 소강이라 한다. <예기, 예운 『禮記』「禮運」)>

소강사회는 기본 민생문제가 해결되고 절대 빈곤이 사라진 사회를 의미한다. 공자는 무위이치를 꿈꿨지만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천하에 도가 사라지고(천하무도 天下無道)’ ‘예가 무너지고 악이 붕괴(예괴악붕 禮壞樂崩)’된 춘추전국 시대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도덕적 자질과 성품을 갖춰야 하는 동시에 사회구조 자체도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 모두가 도덕적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만에 도덕적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사회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단순한 합이 아닌 또다른 ‘생물’이라서다. 

공자(출처=나무위키)
공자(출처=나무위키)

공자는 이상만 좇지 않고 현실을 직시했다. '차선'인 소강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덕을 중시하는 왕도정치가 길이라 여겼지만, 형정을 통한 패도정치 또한 필요함을 인정했다. 형정이나 무력이나 강력한 정치로 공리를 꿰하는 것을 말하며, 패도정치란 실용과 공리의 기술정치라 이해하면 쉽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격자가 반드시 유능한 정치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비도덕적 인물이 사회적으로 유능한 인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자는 패도정치의 전형인 '관중(관이오 管夷吾, 기원전 725년? ~ 기원전 645년 / 중국 춘추 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과 '자산(子産, ? ~ 기원전 522년 /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의 정치가)'을 '인자' 혹은 '군자'라 평가하기도 했다. 

관중은 자신이 모셨던 주군을 배반하고 제환공을 도와 패제후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이었지만 주변 제국을 규합할 때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등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 공자는 그러한 이유로 관중을 '인자'로 평가했다고 한다. 법가사상의 선구자인 자산 역시 정치적 목적이 부국강병과 백성의 복리증진에 있었다는 이유로 '군자'라 칭했다.

공자가 살아있는 동안 분투했던 정치는 왕도적 도덕정치였다. 민본에 바탕을 둔 덕치・예치・효치야 말로 모든 정치가들이 가져야 할 공통 덕목이라고 봤다.

강 교수는 “다만 공자는 부국강병을 이루고 백성을 사랑하는 길이라면 그 수단과 방법은 패도든 법가든 용인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자에게 패도정치는 백성의 안위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아무도 가난하지 않는 소강사회...정치의 최우선 덕목은 '신뢰'

소강사회 왕도정치가 실현되려면 지도자는 사람을 가려 뽑아 적재 적소에 배치해야 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禮)로 대해야 한다.

덕치(德治)·예치(禮治)·효치(孝治)를 통한 왕도정치라 해서 공자가 도덕성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물질적 이익과 도덕성이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도덕성을 우선할 뿐이지, 가장 바람직 한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라 했다. 다만 물질적 이익은 모든 백성에게 균등하게 분배해야 함을 강조했다. 

공자는 무릇 지도자라면 자원의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불평등을 걱정해야 한다면서 사회가 축적한 부는 구성원들이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 모두 편안하고, 구성원이 평안해야 나라가 기울지 않는다고 봤다. 

무엇보다 정치가 무엇이냐는 제자 자공의 질문에 "병력과 식량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병력을 버려야 하고, 식량과 신뢰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면서 신뢰를 정치의 최우선 덕목으로 꼽았다.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시대의 과제를 외면하지 않기

강교수는 "공자는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실현불가능한 일일지 몰라도 눈앞의 춘추시대의 악을 광정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면서 공자를 시대적 과제에 최선을 다한 실천적 사상가로 평가했다. 

다만 “악을 광정한다는 명분으로 또다른 악을 낳으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과 같은 이분법적 사유는 열광주의를 낳고, 광기의 폭력만 낳을 뿐이라서다.  

공자는 대동사회는 고사하고 도덕적 당위에 호소하는 왕도정치조차 너무 높은 이상임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실용과 공리만 중시하는 패도정치만 따른다면 인간은 맹목적 존재로 추락하고, 물신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자 철학에는 △당위철학 △유위철학 △무위철학 세 가지 측면이 모두 들어있지만, 기존 해석이 도덕성을 강조한 당위철학에만 머물러 있있다. 하지만 공자는 어느 하나를 단정하지 않고, 여러 가능한 대안 중 최적의 진리를 선택하는 시중적(時中的)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대선 국면인데, 대통령을 뽑을 때 후보자의 도덕성과 경세 가운데 무엇을 우선가치로 볼 것인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면서 “패도정치에 대한 공자의 우려는 현대적 패도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정치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면서 제3의 길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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