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제주는 화산섬이니 당연히 화산이 폭발해서 만들어진 거 아닌가? 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제주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제주섬을 만든 것은 설문대할망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곳곳의 오름과 암석에는 설문대할망의 흔적이 남아있다.
설문대 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워 두 다리는 관탈섬에 걸쳐 낮잠을 자기도 했고, 일출봉 분화구를 돌구덕 삼아 빨랫감을 담고는 우도를 돌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고도 한다. 이토록 거대한 설문대할망의 키는 한라산의 25배, 무려 49㎞로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거리의 1.5배에 이른다.
이 엄청난 거인은 태초의 혼돈 이후 바다에서 우뚝 솟아났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만들기 위해 주위의 돌과 화산재를 치마폭에 넣고 가다 줄줄 흘려서 제주 곳곳에 360여 개의 크고 작은 오름들을 만든 후 백록담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믿기지 않는 일이 더욱 놀라운 것은 단순한 상상력으로 만든 창작이 아니라는데 있다.
제주는 한라산이 먼저 분출해서 만들어진 섬이 아니다. 2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제주도는 바다 속에 고요히 잠자고 있었다.
이후 150만년간 바다 아래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나 먼저 가파도, 산방산, 문섬과 서귀포가 만들어졌으니 이들이 제주도에서는 가장 어르신들이다. 서귀포가 제주에서 가장 기후가 온화하고 바람이 그다지 없는 것은 한라산 남쪽이라서 푄 현상의 덕을 본 것도 있지만 이렇게 오래전 만들어져서 분지형을 이루고 있는 이유도 있다. 나이든 노인의 온화함 그자체인 셈이다.
50만 년 전부터는 바다 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화산폭발이 끝없이 이어졌고, 빙하기에는 바닥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침식과 퇴적이 일어나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서서히 만들어진다.
지금의 제주도가 완성된 것은 10만년전부터이다. 오름들이 만들어지고 아흔아홉골, 영실, 성판악이 만들어진 후에야 마지막으로 2만여년 전 백록담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난다. 백록담이 도드라진 암벽인 이유는 끈적끈적한 조면암으로 된 용암이 멀리 폭발하지 못하고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설문대할망의 설화 그대로이다.
인류에게 제주는 언제나 열린 섬이었다. 구석기인들도 신석기인들도 부지런히 제주에 드나들었고, 한라산과 넓은 바다는 의식주를 기꺼이 내주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1만년 전까지 육지길로 연결되어 있었고 제주는 섬이 아니었다. 순록을 따라 구석기인들이 내려왔다 순록을 따라 떠났고, 잠시 머물던 그들은 빌레못동굴을 비롯하여 제주도 곳곳의 천연동굴과 궤에 머물면서 순록, 곰, 사슴, 노루사냥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여전히 화산활동이 일어나는 불안한 섬이었다. 문자는 없었지만 언어는 있었고,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그들은 제주섬에서 본 것을 언어로 남겼고,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남겨진 것이 ‘설문대할망설화’이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인류는 신화와 설화의 형태로 그 시대의 이야기를 전한다.
제주 섬을 다 만든 후 설문대할망은 어떻게 되었을까?
설화에 따르면 제주에 지독한 가뭄이 들었고, 오백명의 아들들이 먹을 양식을 구하러 간 사이 아들들을 위해 한라산 백록담에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빠져죽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들이 그 죽을 먹고 난 뒤 회한이 붉게 물들어 한라산의 아름다운 털진달래로 화했다고 한다.
다른 설화에선 물장오리의 깊이를 재기 위해 직접 물속에 들어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는 물이 귀한 섬이다. 그러나 이곳의 물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폭우가 쏟아져도 넘치지 않는다고 한다.
두가지 설화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 백록담의 물은 후손들이 먹을 죽이고, 물장오리의 물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어쩌면 설문대할망은 섬을 다 만들고 난 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갈 인간들에게 물이 얼마나 귀한 가치인지 알려주기 위해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주섬에는 물은 귀하기도 하지만 마르지도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설문대할망의 유산이 아닐까?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올해부터 매월 세번째 월요일에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관련기사
- [제주옛썰] 제주음식에 담긴 역사이야기
- [제주옛썰] 목호의 난과 팍스몽골리카의 유산
- [제주옛썰] 왕자님은 누구인가
- [제주옛썰] 하늘에서 내려온 별의 주인님
- [제주옛썰] 탐라라는 이름의 나라
- [제주옛썰] 천년의 섬은 어디에 있을까?
- [제주옛썰] 검푸른 바다의 여신, 해녀
- [제주옛썰] 똥돼지 문화
- [제주옛썰] 믿고 속는 세화오일장
- [제주옛썰] 또 하나의 건국신화, 송당 본향당 신화
- [제주옛썰] 신이 된 사람의 아들 궤네기와 용왕국따님의 해피엔딩
- [제주옛썰] 돌하르방, 어디서 옵데강
- [제주옛썰] 제주 허벅을 아시나요?
- [제주옛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제주 갈옷
- [제주옛썰] 그녀들의 항거-제주해녀항쟁
- [제주옛썰] 양제해 반란 모의 사건의 진실
- [제주옛썰] 제주를 사랑한 나비박사, 석주명
- [제주옛썰] 제주의 '쎈언니' 열전
- [제주옛썰] 흑룡만리, 제주 돌담
- [제주옛썰] 바람의 노래-용천동굴과 모살역시
- [제주옛썰] 한라산의 슬픈 이름, 두모악
- [제주옛썰] 푸른 감옥, 출륙금지령
- [제주옛썰] 이형상 제주 목사 분투기
- [제주옛썰] 세계사의 무대 위에서 칼춤 추는 탐라국
- [제주옛썰] 삼별초여, 애기업개말도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