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생말타기』, 강덕환, 한그루, 2018(복간)

시집 전문 서점을 운영하면서 두 권의 시집을 복간했다. 강덕환 시집 『생말타기』, 김경훈 시집 『운동 부족』이다. 두 권 모두 처음에 지역 출판 운동으로 만든 시집이다. 그 당시 이 시집을 낸 사람들은 제주의 청년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마음을 잇고자 후배 몇 명이 뜻을 모아 재출간한 것이다.

강덕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섬에서는 바람도 벗이다』(삶창, 2021)가 최근에 나와서 반가운 마음인데, 그의 첫 시집을 복간했을 때가 떠오른다. 스무 살 대학교에서 시집 『생말타기』를 처음 만났다. 제주대학교 문학동아리 '신세대'에는 작은 책장이 있었는데, 졸업한 선배들의 책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시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앞에 말한 두 권의 시집에 손이 갔다. 두 권 모두 오름출판사에서 만든 시집이다.  『생말타기』는 1992년에 나왔다.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던 강덕환 시인은 후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첫 시집을 묶었다.

그리고 26년이 흘러 까마득한 후배들이 다시 내자고 보챘다. 나는 역사적인 그 복간 시집에 '표4'로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덕환’을 제목으로 시를 썼다. 이상하게 강덕환 시인을 보면 '왕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왕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 비녀를 꽂던 그 자세를. 왕할머니의 은비녀를 닮은 시를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던 4·3을 수면 위로 올려놓은 사람 중에 한 명이 강덕환 시인이다. 이 시집에는 4·3뿐만 아니라 제주 공동체의 여러 풍경들을 보여준다. 4·3을 말할 수 없던 시기에 4·3 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  덕분에 나와 같은 후배들은 4·3 시를 쓰고 있다. 오래 전 청년들이 지역의 시인들의 시집을 낸 그 마음을 나는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이 시집에는 4·3 이후 제주의 농촌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가 많다. 신경림의 시집 『농무』(창비, 1975)가 산업화로 인한 우리나라 농촌 사회의 붕괴를 보여줬다면, 이 시집 『생말타기』 그 비슷한 시기의 제주 농촌을 들여다보고 있다. “휘적휘적 돌아오는 거나한 길목엔/ 가난보다 더 질긴 다이야표 검은 고무신/ 땀 배어 자꾸만 벗겨지려 한다”(「보리 공판하는 날」 부분)는 표현에는 제주를 바라보는 청년의 마음이 스며있다.

“우리여, 우리들의 의지는 지조 있게 펄럭이자/은밀한 모의를 진행하듯 부딪는 술잔 속에/분모와 다짐은 실처럼 엉키고/석쇠에서 지글거리는 어류성 고갈비에서/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는 눈알을 본다”(「목 타는 계절의 습작기」 부분)는 부분에는 강덕환 시인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서려있다.

강덕환 시인의 리즈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그는 날렵한 턱선에 호리호리한 몸을 지닌 신문 기자로 청춘을 보냈다. 4·3 진실 규명을 위한 취재로 비극의 증언을 듣고 온 날엔 술이 아니면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의 제주 바람 같은 증언이 모두 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모두 비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보고 젊은 시절이 상상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사진을 요구하면 바로 보내줄 것이다. 그는 수집과 정리에도 특기가 있어서 온갖 자료를 잘 정리해 두고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 몇 십 년 전의 제주를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다.

복간 시집을 내기 위해 한그루 출판사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김영훈 사장과 김지희 편집장은 흔쾌히 프로젝트에 합류해 주었다. 제주학 관련 서적을 꾸준히 출판하는 한그루가 제주의 소중한 책들을 다시 발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었다. 복간 시집의 시선 이름을 ‘리본시선’으로 정했다. 리본시선은 절판된 시집에 새 옷을 입혀 되살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미 있는 시집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좋은 시집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으로 시집의 귀환을 기다리며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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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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