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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탐구생활]쳇 베이커 The Touch of Your 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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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탐구생활]쳇 베이커 The Touch of Your Lips
  • 양진우
  • 승인 2022.01.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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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재즈를 공부하던 시절에는 '모던 크리에이티브'라 불린 새로운 형식의 연주에 빠져 있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시절이었던지라 정통재즈는 뭔가 고루하고 틀에 박힌 느낌이었고 기타리스트로 치자면 믹 구드릭과 존 에버크롬비 류의 당시로선 진보적인 연주방식을 모토로 연습했다. 과거의 재즈는 '박제된 것'이고 재즈 연주자의 미덕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도 한몫 했지만 당시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에는 쳇 베이커를 들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괴물같이 엄청난 블로잉으로 하이노트의 강렬한 프레이즈를 구사하는 프레디 허바드가 있었고, 정교하고 단단한 연주의 리모건, 섬세한 스토리텔링으로는 마일즈 데이비스가 있었다. 더군다나 젋은 연주자들인 로이 하그로브, 데이브 더글라스의 현대적인 연주는 더욱 세련됐고 무엇보다 강렬하고 힙했다.

나에게 쳇 베이커의 음악은 입에 물고 있을 때만 달콤한 사탕처럼 여운이 없는 음악이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그의 음악이 의미있게 다가온 건 목소리 때문이었다. 쳇 베이커가 트럼펫을 내려놓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 'You'r Mine, You'.

케니 버렐의 부드러운 기타 프레이즈가 끝나며 들려오는 우수에 젖은 목소리는 아무 준비도 없던 나의 가슴에 확 날아와 박혔다.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부르는 나른한 목소리가 어쩌면 그토록 진한 감정을 담아 낼 수 있는지.

그후로 그의 연주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은 특히나 느린 템포의 발라드에서 빛을 발하는데 짤막하게 노래한 후에 터져 나오는 그의 트럼펫은 곡조를 더 깊게 증폭시키곤 했다. 1988년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헤로인 중독으로 추락사(혹은 자살)한 비극적 죽음이 그의 삶 전체를 애잔하게 만들지만 연주를 듣다보면 순수하고 여린 내면을 잠시나마 엿보이는 듯했다.

몇 년전에 나온 그의 자서전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를 보면 쳇은 타고난 재능의 음악가로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밥의 시대였고 당시 연주자들은 복잡한 코드진행에 빠른 패시지의 연주를 지향하며 마치 전투를 치르듯 치열하게 연습했는데 쳇은 화성에 대한 지적인 탐구도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구도 없이 그저 내면에서 들리는 그대로 연주했고 그 연주가 너무 뛰어나 오히려 마약과 술에 빠졌던게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가장 유명한 그의 음반으론 보컬이 담긴 <Chet Baker Sings>나 피아니스트 듀크조던과 함께한 <No Ploblom>가 있지만  어쿠스틱 악기와 함께 소박하게 연주하는 트리오 구성의 <Touch Of Your Rips 1979>를 자주 듣는다. 덴마크의 스티블 체이스Steeple Chase 레이블에서 발매된 이 음반엔 느슨한 템포로 별다른 긴장없이 편안하게 연주했음직한 재즈 스탠다드 6곡이 실려있다.

여유로운 컴핑과 포근한 음색의 더그 레이니Doug Raney의 기타와 선굵은 터치로 공간과 리듬을 만들어내는 닐스 헨닌 오스티드 페더슨Niles-Hennin Orsted Pedersen의 콘트라 베이스. 그 둘과 어우러져 무채색의 음률로 노래하는 쳇의 보컬과 트럼펫의 온기는 무척이나 따듯하다.

자주 연주하는 레파토리여서 그런지 쳇의 연주는 이야기 하듯이 편안하게 들리고 더그의 기타는 가끔씩 단단한 비밥프레이즈를 구사하며 여유롭게 스윙한다.(유명 기타리스트인 지미 레이니Jimmy Raney의 아들인 더그 역시 말년에 약물과 알콜중독으로 비참하게 생을 보냈지만) 이 음반에서의 그의 기타는 한음한음 영롱하며 프레이즈는 열정에 넘친다. 엄청난 테크닉을 보여주던 닐스의 베이스는 탄탄한 워킹을 기본으로 리드미컬하고 감성적인 멜로디들을 펼친다.

애조띤 선율의 트럼펫 독주로 시작하는 첫 곡 'I Waited For You'은 짙은 감성으로 사색적이며 정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이 음반에는 두 곡의 보컬트랙이 실려 있다. 평소 자주 부르던 'But Not For Me'는 역시나 템포를 조금 업해서 연주하는데 그만의 독특한 스캣 연주가 돋보인다. 이 음반의 백미는 역시나 음반의 제목과도 같은 'The Touch of Your Lips'이다. 두 악기의 사려 깊은 컴핑에 맞춰 숨소리까지 느껴질 만큼 진중하게 노래하는 쳇의 목소리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The Touch of your lips upon my face내 얼굴에 당신의 입맞춤

Your lips that are cool and sweet당신의 입술은 감미롭고 달콤해요

Such tenderness lips in their soft caress부드러운 움직임 속의 유연한 입술에

My heart forgets to beat내 심장은 뛰는 걸 잊어 버리죠

뒤이어 흐르는 쳇의 트럼펫은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한음 한음 섬세하게 플레이한다.

미려한 외모에 타고난 재능으로 재즈계의 스타가 됐지만 마약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졌고 한평생 혼돈의 삶을 산 쳇 베이커. 하지만 트럼펫을 들고 연주할 때만큼은 무념의 상태로 '어떤 구원'을 받지 않았나 한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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