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이 된 제주. 제주의 현실은 주류사회가 추구해온 미래 모습이 아닐까?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투데이는 제주 청년 보배와 육지 청년 혜미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주류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협력으로 진행되는 [보혜미안편지]는 음악·영화·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0회 연재된다. 이들이 끌고온 질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답을 하길 바라며. <편집자주>

보배님의 초대로 제가 처음 느낀 제주를 회상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처음 제주땅을 밟았을 때는, 고등학생 때였어요. 당시 활동하던 청소년회관에서 국토탐험을 갔었어요. 4일동안 제주 올레길을 종일 걸었는데, 그때 아스팔트 길이 얼마나 뜨거운지, 흙길이 얼마나 시원한지, 바람 한 포기를 어떻게 느끼는지 처음 알았던 것같아요. 물론 무척 힘들어서 땀은 뻘뻘나고, 목 뒤는 햇볕으로 그을려서 살갗이 벗겨질 정도였지만요.

한 참 동안 제주에 가보지 못하다가, 스무살이 넘어서 다시 가본 제주는 저에게 관광지였어요. 큼지막한 건물들에 들어가 테디베어를 귀여워 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을 사고... 쾌적하고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남기고 ‘추억이다’ 하곤 했어요. 고등학생 때, 숨을 몰아쉬며 오르던 오름 근처엔 가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제 스무살, 제주는 관광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기사 한 편을 보게 됐습니다.  

제주에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어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저는 지도교수님께서 ‘중독’관련 동아리를 운영해주신 덕분에 경마장에도 가보고, 알콜·도박 중독 등과 관련한 공부를 아주 잠시 해보기도 했었어요.

당시 한국에 도박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연령이 점차 낮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던 기억이 있던 터라 ‘제주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했었어요. 물론 기사를 읽은 후로 제가 달리 행동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저에게도 제주는 관광지 였으니까요.

2018년, 제주 최초 여성도지사 후보(녹색당 고은영 전 도지사 후보)를 보게 되면서 저는 좀 달라졌습니다. 

난개발 막는 제주도지사

피흘리는 여자가 집전하는 날

그가 말하는 언어들이 어쩐지 울컥했어요. 정치인들은 보통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를 말하기 좋아하는데, 그는 뭘 자꾸 막고, 지키겠다고 하더라구요. ‘저래서 뽑히겠나’ 했던 마음들은 어느 순간 응원하는 마음으로 변하더라구요. 제주 사람도 아닌 저사람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제주에서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부터 저도 제주를 좀 더 ‘각별하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하는 물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자림, 제2공항, 해녀의 삶에 각별함을 느끼게 됐고요. 이제는 이렇게 제주에 사는 보배님과 편지를 주고 받고 있네요.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해녀들이 가장 자주하는 말 중 하나라고 하죠.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면, 다 살아질까요? 혹시, 사라지진 않을까요?

보배님이 편지와 함께 보내준 노래의 가사엔 ‘한 사람’이 스스로 노력해야 지킬 수 있다고 하네요. 저에게도 각별해진 제주를 잃지 않기 위해 제주 곁에 서는 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저는 시 한편을 잠깐 소개하고 싶어요. 허영선 시인의 <해녀들>이라는 시집에 담긴 시입니다.

사진=이기루니
사진=이기루니

죄명은 소요랍니다
기어코 이름 불지 않았습니다

문패 없는 바다에서 무자맥질한 죄
한목숨 바다에 걸고 산 죄는
있습니다만,
또하나 죄라면

전복 해초 바다 물건 제값 달란 죄
악덕 상인 파면하란 죄
바다는 우리 밭, 호미 들고 빗창 든 죄

(후략)

저의 삶과 보배님의 삶은 어떻게 얽혀 있을까요. 

해녀들의 이름을 넣어 지은 시 속에서 고요를 느끼며, 편지를 줄입니다.

 

김혜미

2022년 마지막 이십대를 보내는 사람.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두가지 정체성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 평소엔 '파이리'나 불의를 보면 '리자몽(입에서 불 뿜음)'으로 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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