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뜻을 거스른 전 이장의 해임 건에 대해 거수 표결 중선흘2리 주민들.(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주민들이 지난 2019년 8월 27일 마을총회를 열고 마을주민의 뜻을 거스른 직전 이장의 해임 건에 대해 거수 표결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우리마을 사무장은 지난 11월 말부터 한해 마을 살림을 결산하는 등 정기총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새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총회 안건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준비하는 건 이장의 몫이다. 우리마을 향약에는 해마다 1월에 정기총회를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확산으로 어쩔수 없이 6월에야 비대면 총회를 진행했었다. 올해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2차까지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완료하셨고, 새롭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안건들이 많아 마을복지회관에서 총회를 진행하기로 개발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향약에 따라 총회 7일 전에 마을문자를 발송해 주민들에게 알리고 게시판에도 공고했다. 총회 며칠 전부터는 오랫동안 난방을 하지 않았던 복지회관의 보일러를 점검하고, 먼지가 쌓였던 바닥을 청소했다. 나름 반짝반짝 물걸레질한 바닥에 일정 거리를 두어 방석을 깔았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께서 앉으실 수 있도록 주변에 의자도 배치했다. 그러자 어수선했던 공간이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정기총회를 위해 정돈된 복지회관의 모습(사진제공=이상영)
정기총회를 위해 정돈한 마을복지회관의 모습(사진제공=이상영)

막상 총회 당일 아침이 되니 ‘준비한 안건들이 잘 통과될 수 있을까?’, ‘총회를 진행하다 소란이 생기면 어쩌지?’하는 걱정들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이런 걱정들을 대비해 어떤 답변을 해야할지 컴퓨터 자판을 끄적거렸다. 오후 4시에 있을 총회를 대비해 사무장과 개발위원들은 3시에 마을회관에 모였다.

코로나로 음식을 먹을 순 없지만 총회가 끝나고 가져가실 수 있게 떡과 감귤즙, 그리고 마을이 직접 디자인해 만든 마을지도손수건도 종이가방에 담았다. 조천읍 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에서 보내주신 다회용 마스크와 마스크 스트랩도 함께 넣으니 더욱 풍성한 선물꾸러미가 되었다. 4시가 가까워지자 한분 두분 마을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곧 정족수가 되어 총회가 시작되었다.

총회가 시작되자 경황이 없어 3시간 가까운 정기총회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오늘은 금번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의미있는 안건들과 아쉬웠던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3억5천만원 반납 결의...‘돈이 없지, 주민의 자존심이 없냐?’

이번 총회에서 선흘2리 마을주민들은 전 이장이 주민들 총회의 결과를 뒤집고 주민들 몰래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대표 서경선)로부터 마을회 통장으로 받은 3억 5천만원의 발전기금과 그 이자 일체를 반납하겠다고 결의했다.

지난해 이미 개발위원회 결의를 통해 마을회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측에 발전기금을 반납하겠다는 내용증명을 2차례 발송했지만, 사업자 측은‘마을과 상생하겠다’며 반납을 거부한 바 있다. 돈을 돌려주겠다는데도 안 받겠다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업자가 반납을 거부하면 3억 5천을 법원에 공탁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법률 자문을 받아 이번 마을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다른 마을의 규모에서 생각하면 3억5천만원이라는 돈이 크지 않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을 공동재산이 많은 여타 제주 마을들과는 달리 선흘2리는 소유한 부동산이나 재산이 거의 없는 처지라 해마다 많지 않은 마을 사무장 월급을 걱정할 정도다. 이런 사정으로 안건이 상정되었을 때 일부 반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반납을 결정해 주셨다. 힘들어도 부정한 사업자로부터 마을자치와 환경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굳은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선흘2리 마을회 정기총회(사진제공=이상영)
선흘2리 마을회 정기총회(사진제공=이상영)

# 선흘2리 향약개정. 문턱을 더 낮추다!

제주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학창시절 도덕시험 문제에서만 보았던 마을 자치규약인 향약이 실제하고, 그것이 마을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최근 제주로 이주한 주민이 증가하면서 마을마다 향약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제주에는 공동재산을 소유한 마을들이 많은데,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부 마을에서 마을회 가입 조건과 이장 피선출 조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향약을 개정해 이주민을 배제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오래전부터 정착해 척박한 마을을 일구고 공동재산을 형성해 온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면이 있다.

#마을총회 의결권 행사 아니 18세로 낮추다

우리 마을은 이번 총회에서 문턱을 더 낮추는 방향으로 향약을 개정했다. 먼저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를 18세로 낮추었고, 영주권을 가지고 지방선거에 투표가 가능한 외국인도 리민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이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이장해임 조건을 구체화시켰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총회소집요구 권한도 강화했다. 지난 갈등 국면에서 드러난 이장 궐위시 마을회가 운영되지 못하는 향약 상의 허점을 막기 위해, 이장을 대신해 총회와 운영위원회를 개최할 수 있는 대안도 나름 꼼꼼히 만들었다.

이런 방향으로 향약 개정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마을이 1970년대 후반에 이주민에 의해 형성되었고, 현재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주민이라는 역사적 특수성과 주민구성의 특징 때문이라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공동재산이 거의 없어 재산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적어 굳이 배타적일 이유가 적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우리마을 주민들의 열린 시민의식!

#이장 1년과 정기 총회를 돌아보니

앞에서 열심히 총회 성과와 마을 자랑을 하긴 했지만, 이장 1년을 돌아보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번 총회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지 못했다. 코로나 확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오랜 마을 갈등으로 인한 후유증이 컸다고 생각한다. 총회 전날에는 일명 제주동물테마파크 추진위원장이라는 이 모씨가 이장이 불법적이고 독단적이라는 성명서를 언론에 뿌리기도 했단다. 여전히 마을에는 개발사업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참여하지 않은 누군가는 반쪽짜리 총회라고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마을 화합을 시키지 못한 이장의 부덕 때문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럴 땐 마치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이 된 것 마냥 ‘겸허히 수용한다’라고 읊조려 본다. 흠.... 그러나 동시에 ‘그건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자괴감과, ‘과연 마을이 정말로 하나로 화합되었던 적은 있었나?’ 라고 되묻고 싶다는 억울한 감정도 올라온다.

지난 한 해 제주 중산간 마을 이장으로 1년을 지내면서 아침 눈뜰 때마다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 같다.

소식 업데이트

직전 '어쩌다_이장' 칼럼으로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에게 쓴 ‘응답하라! 제주도교육청’ 편지를 제주투데이에 보낸 직후, 제주도교육청이 곧바로 응답했습니다. 제주도교육청 정책기획과, 작은학교활성화를 담당하는 안전복지과, 제주시교육청 중학교배정 담당 공무원, 함덕초등학교장, 선인분교 분교장 등 교육당국 관계자와 선인분교 학부모회와 마을회가 선인분교장에서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교육청은 선인분교 학부회와 마을회의 의견을 청취하고, 장거리 통학과 배정 문제와 관련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중산간 마을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신 제주도교육청과 교육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만남이 면피성으로 끝나지 않고, 올해는 실질적인 작은학교 및 마을살리기 방안이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주도교육청과 간담회를 열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이상영)
제주도교육청과 간담회를 열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이상영)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마을회장 이상영 씨는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한 지 3년째인 초보 제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년 전에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이 된 후, 최근 이장으로 선출·임명되었다. 1973년생인 이상영 이장의 고군분투 마을공동체회복기를 매달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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