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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농민]메밀은 어머니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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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농민]메밀은 어머니의 숨
  • 김연주
  • 승인 2022.01.3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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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밭. (사진=김연주 제공)
메밀밭. (사진=김연주 제공)

1300평 농사지어 40kg포대 3개 수확,

1000평남짓에 2포대 수확,

500평 남짓에 2포대 수확.

올 한해 메밀농사 지은 3명의 여성농민 농가의 수확량이다. 밥 빌어당 죽도 못쑤어 먹겠단 소리는 이럴 때 하는 말일까? 올해 그리 염원하던 메밀농사를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성공이라 하기엔 너무 열악하지만 그래도 작년 태풍에 파종하자마자 포기하고 갈아엎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래서 메밀은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확량이 늘지 않는 건지 모를 일이다. 한 언니는 그나마도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메밀을 수확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수확물로 메밀묵도 만들고 메밀떡국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어찌 신나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언니 계산기를 좀 두들겨 봐~” 한참을 이리 저리 계산을 해 보니 십원 한 장 남지 않는 농사를 지었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어디냐? 내년에는 나아질 테주” 그리곤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래, 어디 계산기 두드리는 대로 농사가 될까마는 이 언니는 심하다.

메밀꽃이 핀 걸 확인한 순간부터 수확하는날까지 궂은날이 이어지지 않기를 노심초사 기도하며. (사진=김연주 제공)
메밀꽃이 핀 걸 확인한 순간부터 수확하는날까지 궂은날이 이어지지 않기를 노심초사 기도하며. (사진=김연주 제공)

매년 메밀농사가 이렇지는 않았나보다. 작년 파종을 하자마자 거센 비바람과 태풍과 물난리가 연달아 있어 싹트자마자 메밀밭을 갈아엎은 우리와는 다르게 앞서 한 언니는 작년 메밀이 아주 좋았다 한다. 수확량도 올해의 열배쯤(?)이었다고 하고, 메밀이 잘 되어서 알곡도 튼실했다고 한다. 

작년 메밀농사가 잘 되어 베시시 웃고 있던 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 올해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베시시 웃는 언니의 얼굴이 계속 되기를 빈다. 더불어 나도 내년에는 베시시 웃을 수 있기를. (메밀은 작황에 따라 도정하여 메밀쌀이나 메밀가루로 만들 때도 많이 다르다. 40kg 한포를 도정하여 20kg남짓이 나오면 작황이 좋지 않은 메밀이고 25kg정도는 나와야 좋은 메밀이다.)

농민이 되고나서 토종 흑보리를 수확했다. 맛이 좋고 주위에서 들은 평도 좋았다. 언니에게 맛있는 보리가 있는데 좀 줄까라고 물으니 이제 쌀 살 돈 있느니 보리는 안 먹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못 살 때 먹던 보리를 왜 지금도 먹냐는 것이다. 울 언니에게 보리가 나에겐 메밀이다. 웰빙요리로 메밀빙떡이니 메밀묵 등이 각광을 받고 있는 듯하나 난 전혀 메밀맛을 제대로 즐기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겨우 메밀떡국을 즐길 뿐이다.

고조할아버지를 보고자란 어린시절, 설에 온동네 남자어르신들이 세배하러 우리집을 방문했다. 세배꾼들에게 대접할 메밀 칼국수를 설 며칠 전부터 준비하느라 온 집안 널따란 그릇에는 썰어 널어놓은 메밀 칼국수 가락으로 가득이다. 그 널따란 그릇은 방이며, 부엌이며 심지어 헛간, 창고에까지 널려있다.

메밀칼국수.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메밀칼국수.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설 당일에도 허리가 휘게 음식을 준비하고 차려내고 치우고 다시 준비하느라 설을 즐기기는커녕 그저 고단한 일상이 하루 더 강도 높게 있을 뿐이었다. 메밀은 어머니와 나를 우리 여성을 더 힘들게 하는 음식일 뿐이었다. 메밀가루를 물에 풀어 걸쭉하게 쑤어 식혀내면 메밀묵이 된다.

요즘은 메밀묵도 귀하고 고급진 음식이겠으나 한 단계 더 고급진 음식이 바로 청묵이다. 청묵은 메밀쌀을 잘 불려가며 전분을 짜내어 묵을 만든다. 메밀묵에 비해 더 맑고 투명하다. 청묵을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 어머니들이 얼마나 힘든 노동을 감수해 냈는지, 청묵을 한번 쑤고 나면 팔이 다 빠질 지경이라 한다.

메밀쌀을 하루 전날 물에 불려 두었다가 쌀주머니를 주물거려 전분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계속되는 고된 작업이다. 걸러진 전분물을 묵으로 만드는 과정은 뜨거운 가마솥에 뭉근하게 불을 지펴가며 계속 저어주어야 하는 또 하나의 힘든 과정이다. 어찌 감히 청묵을 먹고 싶다 말할 수 있겠는가

설이 코앞이다. 메밀떡국을 한 솥 끓여 식구들과 나눠야겠다.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하다. 반죽을 하고 반죽을 밀고 칼로 썰어 말리고 끓이는 메밀칼국수 말고 방앗간에 맡겨 빻아둔 메밀떡국떡으로.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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