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떡볶이인데 캡션을 달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떡볶이

잘 알려진 책 제목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패러디 해 코너명을 지었다. 이 책은 가벼운 우울증을 앓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쓴 책이다. 최근 단문 형태의 제목을 단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목을 잘 지은 사례라 생각된다. 유머러스하다. [기사써야되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는 제투 기자들이 제주 지역 떡볶이집을 돌아다니면서 떡볶이 맛을 보고 현안에 대해 얘기 나누며 소개하는 코너다.

그런데 하필 왜 떡볶이냐고? 떡볶이는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을 위한 음식이니까. 회사 경비가 아니라 기자 주머니에서 해결하는 사업이니까. 기념비적인 첫 코너 주제를 무엇으로 삼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 끝에 첫 대화 주제로 ‘언론’을 택했다. 제주 지역에는 떡볶이집만큼 많은 언론사가 있다. 물론 과장이다. 떡볶이집보다는 적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31개밖에(?) 안 된다. 기자들은 떡볶이를 먹으면서 언론에 대한 썰을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이번에 들른 떡볶이집은 전통이 있는 떡볶이집이다. 제주시 동문시장 내에 있다. 부추가 20년도 더 된 학창시절에 줄기차게 방문한 장소인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부추는 당시 가게 벽면에 첫사랑 이름을 써뒀는데, 가게가 리모델링 해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첫사랑이 그런 거지 뭐). 떡볶이집의 기자재들이 다들 저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인다. 잘 지내셨느냐,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다. 

설연휴가 닥친 동문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집에서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다 하던데 시간이 잘 맞았는지 다행히 줄을 서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아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시켰다. 주문은 부추가 맡았다. “떡볶이 하나는 기본으로, 하나는 떡 빼고 주세요.” 떡볶이를 시키면서 떡 빼고 달라고? 오두리와 데미뭐의 눈이 동그래졌다. 둘은 분노 한 스푼, 경멸 한 스푼 섞은 시선으로 부추를 쳐다봤다.
부추가 말했다. “떡에선 아무 맛이 안 나잖아요.”
오두리가 말했다. “떡볶이에 떡을 빼고... 혼자 드세요.”
떡 없는 떡볶이는 떡 대신 어묵으로 채워졌다.

"떡볶이 떡 빼고 주세요"라고 말하면 떡 대신 어묵으로 채워준다.

언론이라면 모름지기 각각 지향하는 언론의 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독립언론, 대안언론, 참언론, 진보언론 등등등.
어설픈 사회자 본능에 이끌린 부추가 물었다. “여러 가지 언론의 지향들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보면 어떨까 싶은데 먼저 ‘참언론’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오두리가 말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언론사가 있으면 자기네만 ‘진짜언론’이고 다른 언론은 가짜언론이다,라고 말하는 건데요. 그걸 스스로 정의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에요.”
데미뭐는 순대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었다.

부추가 물었다. “그럼 제주 지역에 독립언론은 있다고 봐요?”
“없죠.” 오두리가 말을 이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가장 중요한데,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광고도 받고 사업도 하면서 독립언론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는 없다고 봐요.”
부추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제주 지역 언론이 ‘독립언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데미뭐가 말했다.
“JDC에서 돈을 받지 않는 거요. 아 맞다, ‘숨비소리’라는 매체가 만들어졌다 사라졌는데, 독립언론 실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지.”
부추가 말했다.
“제주도에 등록한 언론사 중에 개인 후원 체제로 운영하면서 기관 및 기업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 있죠. ‘아이엠피터’. 그런데 제주 지역 이슈보다는 전국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 지역 독립언론'이라고 말하기는 살짝 모호하다 생각되긴 해요.”
오두리가 순대 접시에 담긴 간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집의 떡볶이는 ‘국물떡볶이’다. 국물이 많다. 부추는 떡 없는 떡볶이에 들어 있는 다양한 건더기들을 숟가락으로 잘게 잘라냈다. 삶은 계란도 부수고, 만두도 조각내 비볐다. 달걀 노른자를 으깨고 튀김만두의 속을 다 풀어헤쳤다. 부추 앞에 놓인 떡 없는 떡볶이는 떡볶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모양새를 자랑했다. 포크가 아니라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다. 부추가 국물떡볶이를 먹는 방법이다.

부추가 떡 빼고 주문한 떡볶이의 계란을 으깼다. 
부추가 떡 빼고 주문한 떡볶이의 계란을 으깼다. 

데미뭐가 부추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우리 제주투데이 슬로건의 ‘두 번째 언론’ 앞에 ‘당신의’는 왜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제주투데이 구성원들은 2021년 초 이른바, ‘김녕선언’을 했다. 아무도 모른다. 어디에 공개한 게 아니니까. 구성원들은 이 선언에서 ‘당신의 두 번째 언론’을 채택했다. 독자 개개인이 생각하는 첫 번째 언론이 무엇이든 간에, (독자 당신의) 두 번째 언론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구성원들의 다짐을 담았다. 근데, 이게 뭔지 제투 구성원들은 가끔씩 잘 모르는 척한다.

당시 ‘당신의 두 번째 언론’을 제안한 부추가 말했다.
“‘당신의’를 빼고 ‘두 번째 언론’만 남기면 그냥 ‘조회수 2등언론’이 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죠. ‘당신의’는 다른 언론과의 우열이 아니라 독자와의 관계를 중심에 둔 거예요. 우리끼리 얘기할 때도 ‘당신의’를 꼭 빼먹는데 ‘당신의’를 뺀 슬로건은 떡 없는 떡볶이 아닌가. 현실 가능성과는 별도로 모든 ‘당신’들에게 두 번째 언론이 된다면, 그러면 결국 ‘첫 번째 언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하지만 '두 번째 언론'이니까 영영 최고는 될 수 없는 비운의 언론으로서 겸손해야 한달까. ‘김녕선언’ 선언에 함께 한 두 분은 슬로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오두리가 말했다.
“다른 언론에서 접한 정보라도 제주투데이에서는 뭐라고 썼을까, 궁금해지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생각해요. 제주투데이의 관점은 무엇일까를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언론.”
이어 데미뭐가 말했다.
“독자들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당 사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당신의 두 번째 언론’의 역할이라고 봤어요. 부끄럽지 않게 잘했나 뒤돌아보면 물론 부족한 점이 많았죠.”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말에 셋은 숙연해졌다. 제투 독자위원회에서 나온 다른 언론과의 차별화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떠올랐다.

오두리는 말없이 튀김만두를 떡볶이에 부었다.

부추는 떡볶이 그릇을 들고 후루룩 들이켰다.

떡볶이를 다 먹고 가게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줄을 서가면서 먹어야 하는 맛일까. 곧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 이 집에서 줄을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여하튼 ‘전통’ 프리미엄은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전통맛'도 감각하는 거겠지. '손맛'도 느끼는데 하물며... 그나저나 조금 추잡해보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재료들을 조각내고 으깨어서 먹는다면 이 전통의 ‘국물떡볶이’를 조금 색다르게 먹을 수도 있을 텐데.

셋은 호떡 골목으로 걸어갔다.

호떡을 입에 문 데미뭐가 웅얼거렸다. “제주도에 등록된 언론사가 130개가 넘는데, 언론을 감시하는 시민 기구가 없다는 것은 문제 아닌가. 있으면 좋겠어.”

오두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떡 진짜 맛있다.”

데미뭐와 부추가 동의했다. “완전 맛있어”, “동문시장은 호떡이 최고야.”

 

떡볶이 맛 별점 평가(5개 만점)
데미뭐 ★★★
부추 ★★★
오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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