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狀頭)』, 도서출판 각
『장두(狀頭)』 신축항쟁120주년기념사업회·(사)제주민예총, 각, 2021

『장두(狀頭)』(각, 2021)는 신축항쟁 120주년을 문학으로 기리는 작품집이다. (사)제주민예총과 신축항쟁120주년기념사업회가 함께 엮었다. 이 책을 펼치려면 고요한 공기 속에 나뭇가지 같은 것을 슥삭 비비며 나무와 공기와 힘의 마찰을 이용하여 불씨를 심으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시대와 마찰을 한 장두정신을 지금 시대까지 밝히는 일은 과연 어떤 밝음인지에 대해 생각하려는 심지가 필요한 책이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해가 신축항쟁 120주년이라는 걸 접했다. 김수열 시인이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어서 그에게 돕고 싶다고 문의를 하니 이재수 관련 동영상을 보내왔다. 그 즈음 나는 김수열 시인의 산문집 『달보다 먼 곳』(삶창, 2021)을 읽고 있던 터라 그의 행보가 제주를 소중하게 지키는 길이라 생각하던 차였다.

김수열 시인은 마당극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야기의 발화점이 어떤 공간에서 시작되는지에 따라 이재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주었다. 천주교신자들과의 토론에서는 토론자의 목소리로, 저잣거리에서는 저잣거리의 목소리로, 신축년에 김수열 시인을 만나면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이재수에 대한 얘기였다.

김경훈 시인이 머무는 창고재에 갔을 때에도 마침 자리를 함께 한 김수열 시인이 이재수에 대한 이야기로 열기를 모으고 있었다.

“황사평에 도착하니 저기 관덕정에 누가 서 있는 것이 보여 활로 탁 쏘니까 맞은 거라.”

이미 술이 꽤 취한 김수열 시인이 이재수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에이, 거 거리가 몇인데 맞춥니까게.”

맞은편에 앉은 최상돈 가수가 딴지를 걸었다. 그러자 김수열 시인은 말문이 막힌 듯 멈칫거리다가 이내 술잔을 한 잔 들이켜고 말했다. “4킬로밖에 안돼, 이 새꺄.”

술자리에 앉은 여럿은 각자 4킬로미터를 날아가는 화살을 상상했을 것이다. 나 역시 날아가는 화살을 생각했다. 문학이란 그런 화살의 힘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후 신축항쟁 순례길이 있으면 따라나섰다. 인상 깊은 곳 중에 신평리 본향 일뤠당이 있다. 그곳은 도자기를 굽는 자리였다고 하는데, 그 자리가 사냥꾼들이 많아 돈이 많이 돌아 자금을 모으는 자리였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재수가 출정하기 전날 가마가 모두 불타올랐다. 신축항쟁의 첫 발화였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제를 지내고 제주성으로 진격했다.

순례객들이 그 당을 찾아 걸을 땐 오월이라 신록이 무척 진했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시 한편을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지게 그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감정을 이을지 몰라 사람들 등판이랑 나뭇잎만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120년 전 그 길을 걸어야만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지독하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지독한 기분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길을 보았다. 돌담 옆에 가시가 있길래 가시를 꾹 쥐어 보았다. 지독한 기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끔 거렸다. 그제서야 나뭇잎사귀가 지독하게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지독(至毒)의 뜻은 송아지를 소가 핥아주는 사랑이라고 하는데 혁명의 시작점이라고 불리는 그 당이, 오랜 세월동안 마을 특히 여성들이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와 기도를 했을 지독한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지독의 의미를 시로 형상화하기 위해 신축항쟁 미술제를 찾아 가기도 했다.

나는 여섯 살에 오빠를 잃은 이순옥이 살았다는 서귀동 집터에도 가 보았다. 오래전 이순옥을 인터뷰한 신문기사에 주소지가 남아 있었다. 주소지 근처 편의점에 앉아 이재수 누이가 바라보았을 섬이며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떤 시를 써야할까. 시보다 예술가들이 릴레이로 하루 종일 누이가 살던 집 앞을 서성거리며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지 고민하고 싶었다.

그때의 느낌을 되뇌며 나는 시를 썼으나, 결국 나는 이 작품집에 나의 시를 싣지 못했다. 나는 왜 시 한 편을 완성하지 못했을까. 책이 나오자 내 시를 싣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책이 끝이 아니기에 나는 또 그 시를 이어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작품을 싣지 못한 게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세 살에 만난 신축년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재수가 죽던 해 여섯 살이던 누이는 평생을 오빠의 기록에 헌신했다. 그래서 없는 사람을 어떻게 기록해내며 나아가야 하는지 나는 조금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재수 죽음 이후에도 우리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잇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멍든 사람들이 묻힌 땅에 제비꽃 피듯이 이 책은 제비꽃 같은 책이 되어 해마다 봄을 알린다.

나는 여섯 살부터 시인이 꿈이었다. 내가 서귀중앙여중에 다니던 여중생 시절, 인근 학교에 다디던 초등학교 동창이 자신의 국어선생님이 시인이라고 말했다. 나는 책에서 시인이란 글자만 보았지 어딘가 내 근처에서 ‘있는 사람’으로 시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진짜 시인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이구나, 나는 옆 학교 하굣길에 유난히 키가 큰, 시인이라는 국어선생님을 보았다. 그는 바로 해직교사에서 다시 복직한 김수열 시인이었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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