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대통령선거와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봉수 교수의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강연이 진행중입니다. '악의 시대'라 불리는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정치 사상을 톺아보며 제주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마련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습니다. 해서 궁금해졌습니다. 제자백가 정치론을 들으러 온 시민들, 그들이 바라는 제주 정치는? <편집자주>

강봉수 교수. (사진=박성인 발행인)
강봉수 교수. (사진=박성인 발행인)

강연 후기 쓰기 숙제를 받았다. 습관이 무서운 게 숙제를 받자마자 초록창을 켰다. '양자'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대통령선거 ‘양자’ 토론과 ‘양자’역학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뭐지.

도대체 양자(楊子)라는 양반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일까. 환장하게도 노자와 더불어 실존 인물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존재라고 한다. 집단지성의 결정체? 외계생물? 정체가 뭘까.

양자를 실존 인물이라고 전제한다면, 대략 중국의 춘추시대(BC.770~BC.403) 말엽 혹은 전국시대(BC.403~BC.221) 초기에 활동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공자와 묵자보다는 후대의 사람이고, 맹자와 장자보다는 확실히 앞선 인물. 노자보다는 살짝 선배인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냥 뭐를 하려고 하지마'라는 슬로건을 목 놓아 외쳤던 그는 이 슬로건대로 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맹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공맹의 교리와 쌍벽을 이뤘다는 양자의 학문이 전승되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맹자나 열자(列子), 회남자(淮南子) 등에서 언급된 양자의 모습이 전해질 뿐인데. 여기에 비춰진 양자의 모습이라면, 이 양반 귀찮아서 아니, 본인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책을 남기지 않았거나 혹은 책을 남기긴 했는데 당시 위정자들이 보기에 너무나 불온한(?) 사상이었기 때문에 모조리 불쏘시개로 써서 책이 남아나지 않았겠구나하는 합리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다른 중국 고대 철학자들이 양자를 관찰하고 남긴 글을 봤기 때문이다.

양자는 나를 위하는 것을 취한다. 털 한 오라기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편

사람마다 자기 몸의 털 한 오라기라도 손해보려 하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나서지 않는다면,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열자 양주 편 

양자는 자기를 귀하게 여겼다 여씨춘추

양자가 털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탈모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어쨌든 이러한 양자의 교리는 귀기(貴己) 혹은 귀생(貴生)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철학자였던 것인데.

양자가 활동했던 춘추전국 시대는 흔히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도탄에 빠진 시대라고 한다. 춘추오패니, 전국칠웅이니 하는 강한 제후국들은 그럴듯한 논리를 앞세워 자신을 정당화하며 땅따먹기 전쟁에 열을 올렸다.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힘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양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뭘 하려고 하는 놈'들이 망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이랬기에 양자의 철학은 무위적인 성격을 띤다.

혹자는 이러한 양자의 철학적 사유에서 생태주의의 흔적을 찾았다고 말한다. 인간중심주의, 소유론적 사고, 관념의 소유론 등에서 벗어난 생명중심주의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위에서처럼 양자가 생태주의를 표방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말대로라면, ‘양자가 인간보다 자연을 중시했구나’라는 명제가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 주장은 자연적인 것(양자의 철학)의 대척점에 인간을 위치시킨 구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연적인 것은 무위적인 것이고, 인간적인 것은 인위적인 것이 된다.

어떤 개념은 규정할 때 이렇듯 상대적인 개념을 놓고 설명한다면 그 성격을 더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과 기계라는 개념을 대비한다면, 여기서 인간은 휴머니즘적인 것을, 기계는 그와 대비되는 물질적 개념으로 읽힐 것이다. 인간과 영웅을 대비한다면, 인간은 소시민적인 존재, 영웅은 숭고하고 신화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자연이라는 개념의 반대편에 우연이라는 개념을 놓는다면, 우연은 자연적으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기적적인 어떤 상황이 발현된 것, 자연적인 것은 일상(개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뜻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인 개념을 어떤 것을 놓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양자가 인간의 반대편에 자연을 놓아둔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양자의 개념 도식에서 인간의 반대 개념에 있었던 것은 국가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양자는 전쟁으로 인한 폐해가 만연한 시대에 국가를 구성하는 백성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평화가 얻어질 것이고 생명이 온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도식에서는 국가가 인간을 강제로 움직이는 인위적인 개념으로 위치지어질 것이다. 사람은 생명이자 그 자체로서 최고의 선으로 위치하게 된다.

제자백가 중 정말로 자료가 희박한 양자에 관해 쓰려다 보니 나의 억측과 망상으로 점철된 결과물이 되어버렸지만, 강연을 들으면서 든 생각을 솔직하게 글로 옮겨본다.

‘내가 제일 중요해’를 외치면서 종욕주의자, 쾌락주의자라고 오해도 받는 양자도 결국 사람의 생명을 가장 중히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양자의 말을 곱씹다가 떠오른 한 철학자의 말로 글을 맺으려 한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비록 선한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라도 결국 지옥을 만들 뿐이다."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시민 용담바보2가 쓴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네 번째 강연 '양자' 편은 지난달 26일 제주시 아라일동 희망나래 미디어카페에서 진행됐습니다. 본 강연은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인문숲이다, 제주투데이가 공동 주최하고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탐라학당이 주관합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