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이 된 제주. 제주의 현실은 주류사회가 추구해온 미래 모습이 아닐까? 청년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투데이는 제주 청년 보배와 육지 청년 혜미가 나누는 편지를 통해 그동안 주류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협력으로 진행되는 [보혜미안편지]는 음악·영화·책 등 다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10회 연재된다. 이들이 끌고온 질문에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답을 하길 바라며. <편집자주>

보배님, 다시 저에요. 모두들 다음은 보배님 차례라고 생각하며 편지를 읽었겠죠? 하지만 제가 또 나왔어요. 원래 편지는 ‘주고 받는' 것이 형식이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말이에요. 뭔가 통쾌한 기분이 드네요.

 

지난 주 짧고 달콤한 연휴기간 동안 보배님은 무얼 하셨나요.

저는 책과 영화도 좀 보고, 마포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보냈어요.

 

오늘은 연휴에 본 영화 이야기를 좀 꺼내보려고 해요. 영화 제목은 바로 <돈 룩 업>입니다. 제니퍼 로렌스도 나오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나오는 바로 그 영화요.

 

영화 돈룩업 스틸컷
영화 돈룩업 스틸컷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해요. 어느날 한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 파괴자 혜성을 발견합니다. 같은 연구실에 있는 교수는 심상치 않음을 확인하고 이 혜성의 충돌을 막지 못할 경우 지구에 대형 재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죠. 다행이었을까요. 최초 발견자 둘은 이를 당장 정부에 알리러 백악관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백악관은 지구멸망보다 정권재창출에 소명이 있는 듯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죠. 지지율이 폭락하고 나서야 ‘지구를 구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들을 이용하려 들지만 결말은…

“100%는 아니라고 말해줘요"

영화 속 대통령이 계속 강조한 건 ‘충돌 확률은 100%가 아니다' 는 말이었어요. 혜성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99.78%가 넘었지만, 대통령과 대통령 아들은 ‘100%’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수준이죠. 이들은 ‘0.22%’라는 실낱같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돈 룩 업' 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냅니다. (너무 스포인가요) 영화의 장면 장면을 보는데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책이 떠오르더라구요. 어떠한 과학적 사실이나 다가오는 현실에도 ‘프레임' 으로 접근하는 모습이요. ‘프레임' 너머를 보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전쟁만 난무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제주 제2공항 도민 여론조사'가 기억났어요. 한창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제주에 간 적 있었거든요. 제주공항과 이동하는 버스안에서까지 제2공항을 찬성해야 한다는 광고를 보았어요.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정도로요. 광고에서 떠들어대는 ‘부족하기 전에, 두 번째 길 안전하게'는 과연 얼마나 사실 확인이 된 것일까 궁금하더라고요. 한편 프레임 구도를 형성해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필요한 ‘시정' 일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비슷한 장면을 설연휴 마포에서도 보았어요. 마포는 지금 재개발과 관광특구 문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거든요. 동네 전체가 재개발 지역으로 잡혀 한 집 걸러 한 집으로 부동산밖에 없고, 반대 쪽에는 이미 재개발이 시작되어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 앞에는 재개발로 인해 수십년 살아온 집을 뺏긴 사람들의 편지들과 재개발을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구요. 저는 과연 마포구와 서울시가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를 공평하게 듣고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확장공사가 예정된 비자림로의 모습(사진=제주특별자치도)
확장공사가 예정된 비자림로의 모습(사진=제주특별자치도)

프레임 전쟁에서 이겨라?

결국 세상은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지만, 저는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정치가 결국 우리를 더 나쁘게 만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태평양에 떨어져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 혜성이 오고있다는 사실보다, ‘돈 룩 업' 이라는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용한 것을,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실체적 사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손들을 직접 떼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또 프레임만 잘 만들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현장을 지키려고 힘을 모으는 사람들 마저도요.

그런 와중 얼마전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시민모임'과 한국양치식물연국회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조금 읽었어요. 비자림로 공사현장 일대에 얼마나 많은 제주의 보호종들이 살아가고,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내용이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수많은 생물들의 이름을 기록해낸 보고서를 읽으니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어쩌면 진짜 필요한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가 더 많겠구나 싶었구요.

제 선택은, 우리라도 프레임 전쟁을 깨부수고, 땅에 발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한 공간에 모아내, 장면들을 이어가는 일들을 손수 해나가야 하겠다는 것이에요. 딜레마 앞에서 끝없이 솔직하게 고민하면서 말이에요. 그 치열함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아지게 만들지 않을까요.

김혜미

2022년 마지막 이십대를 보내는 사람.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두가지 정체성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 평소엔 '파이리'나 불의를 보면 '리자몽(입에서 불 뿜음)'으로 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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