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엽기적인 그녀 스틸컷
영화 엽기적인 그녀 스틸컷

# 종들이 주인 모르게

“민쯩 까.”

속된 표현이지만, 확실한 해결 방법이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나이 먹은 것밖에 없는 마초들, 그들이 즐겨 활용하는 최후의 판정 법. 유치하지만 사람들은 승복한다. 투명한 만큼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하기에 정당성을 얻는다. 노름판에서도 마지막에는 패를 ‘까’야 한다. 상대방의 패를 서로 확인해야 승패를 가릴 수 있다. 투명함이 게임의 질서를 유지케 한다.

생활 속의 단순한 진리다. ‘투명함이 보장하는 정당성’ 말이다. 반대로, 투명하지 않다면? 신뢰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없으면 승복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 단순한 진리가 행정의 영역에 들어서면 막힌다. 소위 ‘깜깜이 행정’, ‘밀실 행정’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 문법을 공무원들은 쉽게 무시한다.

공무원은 영어로 civil servant 혹은 public servant라 한다. 즉 ‘시민의 종’ 혹은 ‘공공의 종’이라는 뜻이다. ‘밀실 행정’은 머슴들이 주인의 일을, 주인 몰래 처리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이 경우, 주인은 머슴을 야단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내쫓아야 한다.

# 도민에겐 내용 비공개

지난해 제주도 행정은 ‘제주 미래과제와 추진전략’이라는 문서를 작성해서 대선 후보 측에 전달했다. 여기엔 10대 핵심 아젠다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문제가 너무 많다. 반대 여론이 더 큰 제2공항건설 사업을 담은 건, 머슴이 주인을 무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글로벌 마이스터 제주평생교육 타운 조성’의 경우는 심하게 황당하다. 1조 원을 들여 주거 공간을 만든 후, 그곳에 세계의 장인(마이스터)들을 초빙해 거주케 하겠다는 내용이다. 철 지난 ‘영어 공용어화’도 들어가 있다.

내용이 황당한 것을 넘어 주인을 화나게 하는 것은, 제주 미래 설계를 주인 몰래 하고서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도 행정은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라 해명했다고 한다. 변명이 구차하다. 아이디어 차원이라면 더욱 공개해서 주민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다. 행정의 해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 주민은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 도 행정 스스로가 신뢰를 갉아 먹고 있다.

지난번 칼럼(☞기사:안단테, 알뜨르)에서 지적했던 ‘알뜨르 평화대공원’ 조성 논의도 마찬가지다. 관련 회의를 열고도 정작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역시 주인을 무시하는 행위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민 주도, 행정의 지원’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한 행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 도시공원 민간특례 사업추진도 비공개

‘제주판 대장동’이라고 불리는 도시공원 민간특례 사업에 전 도지사 원희룡이 도민 ‘비공개’ 지시를 했다고 한다. 제주참여환경연대가 지난달 24일, 이 문제에 대한 논평을 내면서 사업자에게 부당 이득을 크게 몰아주기 위해 비공개를 지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행정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공개 진행일 경우, 지가가 상승하여 토지 보상비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해명만을 믿고 가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너무 많다. △2016년 9월 민간특례 추진을 불수용한다는 결론을 내고서도, 바로 몇 달 뒤에 비공개 추진을 한 점, △원희룡 전 지사가 최초로 추진 지시를 한 뒤, 단 3일 만에 제주도 고위공무원이 중부공원 땅을 모친 이름으로 매입했다는 점, △다른 공무원도 해당 토지를 공동 매입하고, 오등봉 공원의 땅도 적극적으로 매입했던 점 △그 고위공무원이 원희룡 전지사의 팬클럽 행사에 참여했던 점 등을 고려해볼 때, 투기의 과실을 나누기로 하고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제주참여환경연대 주장이다.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의심받는 게 억울하다면 애초에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았어야 한다.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 문법 즉 투명함을 통해 정당성을 얻었어야 한다. 돈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투명한 진행이 필수다. 안 그러면 ‘숨기는 자가 범인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 법원의 공개하라는 판결에도 불복하는 검찰총장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현재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본 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원희룡의 비공개 지시와 닮은꼴로 윤석열 후보의 검찰총장 재임 시절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 역시 비공개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한 해 특수활동비 지출액이 94억 원이다. 요즘 세상에 영수증 없이 94억 원을 쓸 수 있는 공적 업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머슴이 쓴 94억 원의 내역을 주인은 몰라도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한 어느 주인(‘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당시 검찰총장(윤석열)은 불충한 머슴답게 주인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주인이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판결이 지난달 11일에 나왔다. 판결은 “수사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를 공개한다고 해서 곧바로 구체적인 수사활동의 기밀이 유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고 했다. 애당초 영수증 없이 1년에 94억 원을 써대는 관행이 문제였다. 굳이 새삼스러운 판결도 아니다.

그런데 역시나 또다시 불충스러운 머슴이 반기를 들었다. 검찰이 법원의 판결에 항소한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주권자인 주인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지 않다. 주인은 고사하고 ‘개, 돼지’ 취급하는 듯하다. 주인의 공개 요구를 거절한 것도 모자라, 법원의 판결에까지 불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야단칠 단계를 넘은 것 같다. 쫓아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검찰 개혁을 넘어 검찰 조직 해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고현수 도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주특별자치도 위원회 회의 및 회의록 공개 조례안」의 회의내용을 속기로 작성해 보존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고현수 도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주특별자치도 위원회 회의 및 회의록 공개 조례안」의 회의내용을 속기로 작성해 보존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 정보공개 범위 확대를 위해 힘써야

주인이 머슴으로부터 개, 돼지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주인이 주인다워야 한다.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머슴들이야 원래 다 저질이지 뭐’라며 제법 쿨한 체하는 순간,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라던 플라톤 선생님의 말씀이 실현되어 버린다. 주인으로서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근래에 적극적인 참여로 이뤄낸 몇몇 성과가 제주 사회에 있다. ‘밀실 논란’이 많았던 제주도의 각종 위원회, 그 위원회 활동이 이제는 드러나게 되었다. 제주도 산하의 각종 위원회 숫자는 345개. 도 행정의 여러 분야에서 자문하고 심의, 의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위원이 누구인지, 모여서 어떤 논의들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랬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미덕(?)으로 행정의 들러리 역할을 많이 했다. 심하게는 각종 이권을 챙겨주고 나눠 먹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2019년부터 제주투데이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물론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성원 속에 이뤄진 일이다. 관심을 두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면 관행대로 넘어갈 일이었다. 처음에 이뤄낸 성과는 위원들의 명단 공개다. 근본적 변화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위원들의 언행이 신중해졌다. 물론 한계는 컸다. 위원 각자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어떤 의결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았기에 나쁜 관행은 여전했다.

실명제가 필요했다. 발언과 의결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려면, 회의 전체의 진행 내용이 공개되어야만 했다. 회의록 공개 관련 조례 제정을 위해 다시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결국 각종 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는 조례가 지난해 말(2021.12.23.) 제주도의회를 통과했다. 위원회 진행 전과정을 속기록 혹은 녹음기록으로 남기게 한 것이다. 이제는 위원 각자의 모든 발언과 의결이 그대로 기록으로 남게 된다. 전문성 없는 무능한 발언은 지탄 받을 것이다. 이권 개입과 관련된 의결은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다. 그런 만큼 변화된 제도에 맞춰 각종 위원회 위원들의 전문성과 책임감 있는 활동을 기대해 본다.

행정의 투명한 공개는 이처럼 민주사회의 기본이 된다. 투명성은 신뢰를 담보할 것이고, 그 신뢰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신뢰가 곧 정당성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다 ‘까’자. 진정 시민이 주인 되는 사회를 위하여.

아, 참 그리고 “(한)동훈아, 너도 이젠 그만 뭉개고 비번 까!”

이영권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새로 쓰는 제주사》, 《제주역사기행》 등을 저술한 이영권 박사는 제주4.3연구소, 제주참여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한 바 있고, 일선 학교현장에서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편을 잡았다. 올해부터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으로 위촉된 이영권 위원의 칼럼은 매달 두번째 금요일 게재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