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대통령선거와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봉수 교수의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강연이 진행중입니다. '악의 시대'라 불리는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정치 사상을 톺아보며 제주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마련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습니다. 해서 궁금해졌습니다. 제자백가 정치론을 들으러 온 시민들, 그들이 바라는 제주 정치는? <편집자주>

“팔자(八子)로 걷지 마라, 왼손으로 숟가락 들지 마라, 사람들 앞에서 목젖이 보이게 웃지 마라, 다리 꼬지 마라, 팔짱 끼지 마라….”

어린 시절 ‘해야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았다. 아버지는 내가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금기를 가르쳤다. 기준은 딱히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가정교육 잘 받은 아이’로 보였으면 했던 걸까. 

아버지의 ‘가정교육’ 탓에 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써내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선생님’이나 ‘간호사’ 정도였다. 당시 반에서 여학생 절반 정도가 써냈던 직업이다. 아마 단짝 친구의 장래 희망을 따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옷을 고르거나 식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고민을 할 때나 진로를 정할 때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결정을 했다. 그러다 보니 20대까지의 삶은 ‘하고 싶은 것’을 확장해나가는 방향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계와 연결된 게 아니라 ‘금기’라는 벽으로 둘러싸였다. 자연스레 ‘나’를 벗어난 문제, 그러니까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는 ‘1’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가질 수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지난 9일 강봉수 교수가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9일 강봉수 교수가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하지 마라’ vs ‘말 없는 가르침’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던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노자’의 교육방식 ‘말 없는 가르침(不言之敎)’과 반대편에 있는 듯 보인다. 

지난 9일 강봉수 제주대학교 교수는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했다. 

노자의 ‘말 없는 가르침’의 목적은 도를 깨닫고 덕을 터득하는 데 있다. 도를 깨닫기 위해선 세상의 탄생과 원리에 대한 이해, 만물의 존재 방식과 더불어 삶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들은 ‘말 있는 가르침’, 즉 지식을 쌓고 관념을 축적하는 이성이나 지성의 접근법이 아니다. 소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세상을 즉각적으로 포착하는 ‘눈밝음’의 깨달음이다. 이를 얻는 순간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연적 본성을 되찾아 겸허와 무심의 마음으로 만물을 대하게 된다. 세상은 무위적으로 다스려진다. 

강 교수는 노자 철학 ‘말 없는 가르침’의 목표를 1)세계의 탄생과 원리 이해 2)만물의 존재 방식 이해 3)이해를 위한 ‘눈밝음’의 깨달음 4)어린 아기 같은 본성의 회복 5)무위윤리와 겸허의 덕 수련 6)무위 정치의 이념과 방법 습득 등 6개로 나눠 요약해 설명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났다고 봅니다. 유는 무(無)로부터 생겼고. 여기서 무는 ‘도’라고 읽어야 합니다. 창조의 신이 없다고 한다면 무정형의 기(氣)로부터 자기 자발적으로 유정형 1기가 생겨났어요. 우리는 무정형의 세계에서 나서 죽으면 원래대로 기의 세계로 돌아가죠.”

동양 철학에서 무극(無極)은 우주 태극(太極)의 맨 처음 상태를 뜻한다. 무극은 질서가 부여되지 않은 무정형의 공간이다. 도라는 것은 무정형의 기를 자가 수정시키는 원리이며 이를 통해 질서가 주어진다. 도가 기를 생성하면 덕은 기를 축적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졌다. 도에서 생겨난 만물은 결국 근원으로, 무로 돌아간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존재인가

“우주는 다 같은 존재입니다. 기들이 분화하는 과정에서 누구는 우연히 사람이 됐고 누구는 우연히 개가 됐고 누구는 우연히 나무가 된 거죠. 그러니 노자는 우리 인간이 식물이나 다른 동물보다 잘 났다고 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합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 세상의 만물은 기들이 나눠지고 결합하면서 생겨났다. 기들의 교감 정도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고양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건 기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우월주의’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강 교수는 이를 최근 한국 사회 화두이기도 한 ‘페미니즘’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 여자와 남자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인 존재라는 것. ‘너’와 ‘나’는 분리되거나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항상 우리 사이를 채우는 ‘충기(冲氣)’가 있다. 쭉 이어진 기들의 스펙트럼 선상에서 만물이 존재한다. 어느 하나 기준을 두고 남자와 여자가 무를 자르듯 명확하게 나뉠 수 없다. 이걸 굳이 분리하는 건 ‘문화’다. 

노자 철학에선 만물이 새끼줄 꼬여있듯 존재한다. 무의 차원에서 보면 세상은 모두가 같고 유의 차원에서 보면 세상 모두가 다르다. 하루살이의 하루라는 시간과 인간의 100년이란 시간. 지구 밖에서 보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지난 9일 강봉수 교수가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9일 강봉수 교수가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말을 내려놔라

노자는 세상의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눈밝음(明)’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을 빛과 어둠, 진리와 비진리 같은 이분법적으로 재단하지 않고 직관하는 능력이다. 

강 교수는 “인류의 지성사는 이분법적 사유에 깊숙이 물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이성과 감정을 구분하고,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고,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면서 이성적인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고 소유해야 한다는 철학을 당연시하고 있다. 

노자는 말(言)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론과 사상을, 나만의 색안경을 벗으라는 것. 특정한 이론으로 세상을 보면 그 이론으로 해석되지 않는 건 척결의 대상, 섬멸의 대상으로 분류하기 쉽다. 이런 맥락에서 공자나 묵자가 ‘성인’이나 ‘군자’ 같이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델을 만든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지능의 분별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텅 빈 마음과 고요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밝음’을 가질 수 있다. 

#어린아이의 본성

말을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들은 색안경이 없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순진하고 순수하다. 강 교수는 어린아이를 두고 “음기도 양기도 아닌, 질서가 부여되지 않은 충기의 존재, 텅 빈 허공”이라고 표현했다. 

아이들은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몸에만 충실하다. 이 때문에 어른과 달리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다. 노자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고 판단을 시작하는 순간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다고 말한다. 어린아이의 본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눈밝음’의 직관 능력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보다 겸허

“겸손과 겸허는 다릅니다. 겸손은 의지적으로 나를 낮추는 것이라면 겸허는 그냥 내려놓는 거예요. 내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걸 내려놓으란 거죠.”

노자가 말하는 덕의 핵심은 겸허다. 우리가 사심을 지우고 자의식을 버리면 무위윤리를 실천할 수 있다. 의무적으로 남을 먼저 위한다거나 보상을 기대하며 선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연처럼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 욕심을 버릴 때 서로 어우려져 살아갈 수 있다. 

강 교수는 “이런 도덕 원리가 통용되는 사회에선 사람들의 덕성도 자연스럽게 발현되게 된다”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건 이건 자연성 아닌가. 무위윤리를 수련하면 자연스럽게 이타의 삶을 살게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강봉수 교수가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9일 강봉수 교수가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을 통해 노자의 ‘무위의 정치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정치는 ‘작은 생선을 삶는 것’

노자는 정치(다스림)의 등급을 네 단계로 나눴다. 첫째는 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정치다. 둘째는 백성이 군주를 친애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왕도정치. 셋째는 백성들이 군주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패도 정치. 넷째는 백성들이 군주를 업신 여기는 정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노자는 첫째, 무위정치를 지향했다. 공자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지만 패도나 왕도를 거쳐 무위를 향해 순차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자는 급진적으로 무위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권력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군주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들이 변화를 요구하면 기득권은 ‘점진적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조금씩 바꿔나가겠다고 한다. 그 사이 자본과 권력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고 키울 궁리를 한다. 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거에 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시민을 위한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고 해요. 휘젓지도 말고 아주 약한 불로 가만히 놔둬서 익게 한다는 거죠. 불이 너무 세면 생선을 태울 수도 있고 생선살이 부서질 수도 있잖습니까.”

강 교수는 노자의 무위정치는 “제도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는 정치가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정치라고 보면 좋겠다”며 “군주나 백성이나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비워서 작위적인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라의 구성원은 물론이고 세계의 구성원 모두가 한 몸이고 유기체적 공동체일 뿐”이라며 “무위정치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 자기 몸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수준만큼의 욕구만 추구하고 이게 곧 타인의 생명에도 기여하는 이타적 생명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유영하기 

30대 초반 7년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이전의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3년이 꼬박 걸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가 내 안에 숨길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노자 철학 강연을 듣고 나니 내가 추구했던 건 ‘자유’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무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속했던 직장을 떠나고 내가 속했던 도시를 떠났다. 모두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6년 전 내가 아무도 아닐 수 있는 곳, 제주로 왔다. 

30대 이후의 내 삶을 이야기할 때 “물 위에 떠다닌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억지로 물살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 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편안하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유영하는 삶을 살며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다. 내가 ‘이전의 나’에게서 벗어날수록 ‘나’와 ‘세계’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거다. (강 교수가 강연 중에 "나의 숨소리 하나가 우주 전체의 움직임"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와 ‘나’ 사이 ‘충기’를 인지하게 된 걸까. 다른 사람이 겪는 차별이나 소외에 분노하거나 아파하게 됐다. 노자가 말한 무위의 삶이란 이런 건가. 사람들이 다 나 같다면 무위의 정치가 가능할까. 

어느덧 중년에 들어섰다. 여전히 팔자 걸음을 걷고, 양손으로 밥을 먹고, 목젖이 보이게 크게 웃고, 다리를 꼬고, 팔짱을 자주 낀다. 얼마 전 설에 만난 아버지는 날 보고 “버릇을 절대 못고치네”라면서도 “근데 요즘은 그것도 개성이라더라”며 허허 웃는다. 

시민 오두리가 쓴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섯 번째 강연 '노자' 편은 지난 9일 제주시 아라일동 희망나래 미디어카페에서 진행됐습니다. 본 강연은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인문숲이다, 제주투데이가 공동 주최하고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탐라학당이 주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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