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갑문과 광치기 해안도로가 생겨나 뭍이 된 일출봉과 호수가 된 오조리 내수면(사진=한진오 제공)
성산갑문과 광치기 해안도로가 생겨나 뭍이 된 일출봉과 호수가 된 오조리 내수면(사진=한진오 제공)

대선이 코앞이다. 후보들이 제주공약을 쏟아냈다. 특히 유력후보들은 생태와 환경을 지키겠다, 무슨 개발을 하겠다, 하면서 서로 모순된 공약들을 남발하고 있다. 제주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엔 제주특별법에 규정된 이른바 ‘환경친화적 국제자유도시’조성이라는 목적조항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난 20여년의 실험으로 국제자유도시 건설은 실패한 정책으로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제주도도, 중앙정부도, 대선유력후보들도 이 프레임에서 한 발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를 고집하면서 내세우는 생태, 인권, 평화 등의 가치는 실현 불가능한 이념이라 여긴다.

그동안 경험했다. ‘국제자유도시’와 ‘평화의 섬’의 양립 가능성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평화론자들은 양립불가를 주장하였고, 개발론자들은 양립가능을 주장했다. 당시 논자는 궁여지책으로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국제자유도시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가 되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의 섬을 선포하였지만, 이와 배치되는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자 논점이 전환되면서 논쟁은 더욱 가열되었다.

해군기지 반대론자들은 생태와 비무장 평화를 근거로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의 양립불가를 주장하였고, 해군기지 찬성론자들은 양립 가능을 주장했다. 비무장 평화의 섬을 처음으로 제안했던 학자들조차 안보현실과 헌법상의 제약을 들며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 국제자유도시와 평화의 섬은 양립가능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지난 2016년 2월 26일 열린 제주해군기지 준공식.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16년 2월 26일 열린 제주해군기지 준공식. (사진=제주투데이DB)

아직도 종결된 논쟁이 아니다. 그러나 과연 작금의 제주가 평화의 섬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평화의 섬은 제주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국제자유도시가 평화의 섬 비전을 블랙홀처럼 집어 삼켰다. 그동안 ‘평화의 섬’ 만들기는 국제자유도시 건설을 위한 겉포장 수준의 실천사업과 무력을 통한 평화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국제자유도시 건설이 성공한 것은 더욱 아니다.

처음에 내걸었던 국제자유도시의 장밋빛 비전을 떠올려보면 그 성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도민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증거도 없고, 오히려 난개발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로 제주다움이 급격히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만 목도하고 있다.  저 ‘특별한’(?) 자치제도는 오로지 국제자유도시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고, 제왕적 도지사의 탄생과 풀뿌리민주주의의 후퇴만 가져왔다. 

지난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를 계기로, 제주도정은 또 하나의 비전으로 ‘세계 환경수도’를 내걸었다. 2020년까지 세계 환경수도 인증을 받겠다는 원대한 기획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수용하여 이른바 ‘평화와 인권의 꿈을 담은 동북아 환경수도’를 약속했다. ‘국제자유도시’와 ‘환경수도’가 양립 가능한가를 두고 다시 논쟁이 있었다. 개발론자들은 양립 가능하며, 환경수도는 국제자유도시 구현을 위한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이러한 논쟁의 결과로 특별법의 목적조항이 ‘환경친화적 국제자유도시’조성으로 수정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난 5년 동안 제주사회는 제2공항 건설 문제로 대표되는 개발론만 득세했다. 민주적 합의로 이미 종결되었어야 할 공항문제는 차기 정부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덧붙여 이제 해저터널까지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6월 22일 국제자유도시폐기와제주사회대전환을위한연대회의가 출범했다. (사진=제주투데이 DB)
지난해 6월 22일 국제자유도시폐기와제주사회대전환을위한연대회의가 출범했다. (사진=제주투데이 DB)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론’이 있다. 일정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자유주의적 개발중심의 국제자유도시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지속가능한 개발도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선, 특별법 제2조(정의)(이 법에서 "국제자유도시"란 사람·상품·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를 말한다.)의 폐기를 주장한다.

그런 다음, 특별법의 명칭에서 ‘자유’라는 용어를 빼고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수정하는데서 논의를 다시 모았으면 한다. 어떤 가치를 담아내는 국제도시 비전과 전략을 세울 것인가를 다시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이미 여러 구상이 제안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2의 삼다도(삼무도) 비전을 제안한다.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가 지난시절 제주인들의 척박한 삶을 상징했다면, 도둑, 거지, 대문 없는 삼무도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더불어 삶을 영위해 나가려는 이상과 비전을 담았던 상징어라고 여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는 척박한 삶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개발과 파괴를 일삼아왔다.

그러나 이제 지난시절의 삼다도가 오히려 삼무도의 비전을 실현하는 자산이었음을 깨닫게 하였다. 삼다와 삼무에 담겨진 이념을 ‘생태’와 ‘인권’과 ‘평화’의 가치로 읽어내야 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가치실현을 제주의 미래비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랜 세월 동안 제주인들이 형성해온 문화문법에도 걸맞는 가치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라산. (사진=제주투데이DB)
한라산. (사진=제주투데이DB)

명실공이 신자유주의적 기획에서 탈피한 ‘생태·인권·평화의 제주국제도시’가 그것이다. 이러한 3가지 가치가 실현되는 제2의 삼다도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이러한 비전에 합의할 수 있다면 이에 배치되는 개발전략들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추가 진상조사와 정명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4·3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역사를 지우자는 무지한 발상이 아니라 오히려 건설과정의 탈법과 인권탄압에 대한 정부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사과를 바탕으로 인권과 평화의 성지로 만들어가야 한다. 

비무장 평화의 섬의 이상을 간직하면서 해군기지에 이어 혹시 모를 공군기지 건설조짐을 막아내야 한다. 민주적 합의원칙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제2공항 개발은 폐기되어야 한다. 공약에서 제외되었다지만 섬의 정체성을 훼손시킬 해저터널 기획은 처음부터 단절시켜야 한다. 송악산 개발, 자연체험파크와 같은 대규모 난개발 사업들을 그만해야 한다. 중산간 마을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타운하우스, 해안도로 주변의 바다경관을 해치는 소규모 개발 사업들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 

대신 무엇을 할 것인가? 많은 논란 속에 작년 12월 30일, 향후 10년간 제주발전의 방향을 담은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2022~2031)‘이 확정 고시되었다. 일단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향후 시행계획에서 생태․인권․평화의 가치들에 배치되는 사업들이 조정되고 관리되도록 해야 한다. 특별법의 명칭과 목적도 개정하고, 그에 걸맞는 실천전략들을 제주도민의 집단지성으로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 행정체제를 참여와 자치가 보장되는 행정구조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방만한 제주시를 나눠 동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시로 하는 3개의 기초자치단체를 두면 좋겠다. 지난시절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을 재생시켜 생태시, 인권시, 평화시로 구성되는 삼다도의 출현을 바란다. 행정과 함께 가는 3권역의 교육자치모형도 모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삼무도의 이상 실현을 염원한다. 이러한 제주의 미래를 앞당겨줄 대선과 지선후보가 당선되길 기대한다.   

강봉수.

강봉수(姜奉秀). 제주시(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야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의 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때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한국(제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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