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제주』 김동윤, 한그루, 2019
『문학으로 읽는 제주』 김동윤, 한그루, 2019

김동윤 평론가는 제주 문학을 꾸준히 연구해온 학자이다. 이 책이 작년에 제주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은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그동안 학술적 접근으로, 현장비평의 실천으로 제주의 문학을 논해오긴 했지만, 좀더 대중적인 인문교양의 차원에서도 제주문학을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가 문학 연구를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독자들과의 소통으로 확대하려고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김동윤 평론가는 최근 김석범 소설집 『혼백』(보고사, 2021)을 엮었다. 이 책은 오사카에서 태어나 평생에 걸쳐 제주 4·3에 관련된 작품에 매진한 김석범의 한글 소설집이다. 제주문학에서 귀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그는 제주문학과 관련된 일에 애정을 가지고 지면을 채워 나간다. 책을 만드는 일이란 시대를 향해 손을 높게 들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래서 김동윤 평론가를 생각하면 ‘빗개’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는 제주문학의 빗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프로필을 보며 나이를 헤아려 본다. 내가 스무 살이던 시절, 그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환한 봄날, 교양동을 나와 인문대로 향하던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까닭은 그가 출제한 문제에 시가 나왔는데, 그 시는 “네 위에 한 송이의 꽃이 피리라.”는 문장이 들어간 서정주의 시였다. 나는 그 시가 참 좋다는 답안을 쓰고 나왔다. 시험이 끝나 대표적인 친일 시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 시는 한국 청년들에게 일본군이 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시였다. 그 시를 몰랐다는 무식함도 무식함이지만 엄청난 찬사를 남긴 답안지가 부끄러워 비참한 심정으로 교수님 등을 바라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은 두 번 F를 받았고 마지막은 D-를 받았다. 스무 살, 교양과목 중 ‘문학’이 들어간 수업은 다 들었다. 그래서 김동윤 교수의 수업을 많이 들었다. 문학을 찾았지만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는 불량학생이었다. 국문과 학생도 아니었고, 교양수업은 100명 정도 앉아 듣는 수업이라 나는 그와 특별한 인연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했으나 나는 기억한다. 스무 살 근처, 나는 삶이 괴로워 소설가가 꿈인 한 선배를 찾아갔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선배는 출판사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선배는 나를 사무실 소파에 앉혀 놓고 시원한 음료수를 주었다. 출판사라는 공간은 어색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그 사무실 어딘가에서 김동윤 교수가 나왔다.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우리 옆을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젊은 아이들도 문학하는 아이들끼리는 다 만나는 구나.” 문학하는 아이들이라는 말이 내 머리 위로 벚꽃처럼 흩어졌다. 와, 나는 문학하는 아이였구나. 그가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심지어 문학하는 아이로 말이다. 그 말이 햇살처럼 나를 밝혔다.

재작년 여민회에서 4‧3 여성 생존자를 구술 채록하는 일에 참여했다. 의귀리에서 한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그는 바로 김동윤 평론가의 어머니였다. 처음 만나는 날 인사차 내 시집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갔다. “제가 낸 책입니다. 읽어보세요” 하니 마을 보건소 앞에서 잡초를 정리하던 할머니는 장갑을 벗고 손으로 넋을 드리듯 내 책을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다. “아들이 책 가지고 와도 이렇게 쓸어주고 읽은 셈 치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난 쓰다듬어서 책을 읽으니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할머니의 손은 너무 환하고 따뜻했다. 무말랭이 하나를 말려도 크기와 모양이 반듯해서 사람들이 다투어 사갈 정도라는 어르신 장사 이야기도 생각난다. 김동윤 평론가는 솜씨 좋은 어머니를 닮아 설화적 상상력부터 시대의 아픔을 기록한 제주 작가들의 작품들을 곱게 떼어 내 햇볕에 정성스럽게 말리듯 엮어낸다. 제주 땅에서 나고 자란 제주 작가의 작품들을 대낮처럼 환한 지면의 세계로 옮겨 놓는다.

그의 어머니는 말했다. ‘동유니는 말썽을 하나도 부리지 않았지. 딸고튼 아들이라. 항상 공부를 잘해 자랑스러웠지. 경헌디 아들이 젊은 시절 마을에서 구진 죽음 당한 사람들 버려진 곳에 다니는데, 다 저문 시간에 그곳으로 태우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가슴이 써능했어.” 그가 젊은 시절 다닌 그 마을 궂은 땅은 아마도 의귀리 전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묻은 속냉이골이었을 것이다. 어르신은 마당에 나와 의귀마을 오름을 가리키며 ’저기서 빗개가 대나무를 세웠당 내렸당 했지‘라고 말했다. 그럼 마을 사람들이 숨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고 행동을 했다고. 마을을 지키는 빗개는 아마도 그 마을 대나무 중 가장 곧고 반듯한, 단단한 대나무였을 것이다.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현택훈, 김신숙 '시인부부'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김신숙 시인과 현택훈 시인이 매주 번갈아가며 제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코너다. 김신숙·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부는 현재 시집 전문 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 작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다양한 기획도 부지런히 추진한다. 김신숙 시인은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동시집 『열두 살 해녀』를 썼다. 현택훈 시인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부부가 만나고, 읽고, 지지고, 볶는 제주 작가와 제주 문학. '시인부부의 제주탐독'은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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