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제주칼호텔 매각을 공식화하고 절차를 밟고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가 우선 매각 대상이다. 매각 대상자 측은 호텔 운영을 이어가지 않고 주상복합 건물로 재건축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제주칼호텔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제주칼호텔 직원과 외주 업체 등 300여명이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 제주투데이는 이 코너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진그룹이 고용보장 없이 호텔 매각을 추진하며 거리로 내몰리게 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사진=김재훈 기자)
박선주씨(사진=김재훈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와의 초대형 합병 승인을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칼호텔 로비 한켠 농성장에서는 호텔 직원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다. 제주칼호텔 직원들은 호텔 매각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철야농성을 열흘 넘게 이어가고 있다.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빅딜’ 승인을 기다리며 축포를 터트리려 준비하고 있지만, 제주칼호텔 노동자들은 한없이 어려운 시간 속을 헤매고 있다. 한진칼 그룹 측이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형태로 제주칼호텔 매각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27살 박선주씨도 마찬가지다. 박선주씨는 스무살이 되던 2014년, 대학에 다니면서 제주칼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후 상근계약직 등을 거치고 이듬해인 2015년, 1년 만에 정직원이 됐다. 정직원으로 일해온 지 햇수로 7년여. 그는 20대를 제주칼호텔에서 보냈다. 뷔페 주방,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한다. 박선주씨의 팔에는 요리를 하면서 생긴 화상자국으로 보이는 흉터가 보였다. 제주칼호텔은 그가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일터다.

음식 재료를 다듬고 있는 박선주씨의 손(사진=박선주 제공)
음식 재료를 다듬고 있는 박선주씨의 손.(사진=박선주 제공)

“정직원 되고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중학교 때 학교 오갈 때 항상 다니던 길이에요. 어릴 때 호텔 식당 같은 데 가본 적 없어서 어떻게 가는 건가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이런 쪽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궁금했었어요. 용담동에 사는데요. 집에서도 칼호텔 끝이 조금 보이거든요. 그러다가 호텔에 들어와 일을 하게 되니 신기했죠.”

그는 사측에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함께 농성에 나선 동료 직원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선배 직원들이 먼저 다가와 주셨어요. 제가 좀 내성적이거든요. 요리를 학원에서 자격증 따고 바로 왔어요. 선배 직원들이 저에게 편하게 하라고 하고, 친근하게 대해줘서 참 고마웠어요.”

제주칼호텔 매각이 공식화된 후, 박선주씨도 동료들과 함께 유니폼 등 뒤에 ‘투쟁 문구’를 써 붙였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어요. 누가 ‘뉴스 보니까 너네 회사 없어진대, 네 일자리 정리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에이 설마요, 설마요’라고 답했어요. 공식화되기 전까지는 정말 설마설마했죠. 집에서 가족들이 가끔씩 물어볼 때마다, ‘그럴 일 없다’고 말했어요. 많은 사람이 일하는 회산데 없앨 리가 있나... 한진칼, 대한항공이라는 큰 회사의 사회적 책임이 있을 텐데. 그 책임은 어디로 가고...” 그 많은 직원들을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지는 않겠지, 싶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결정했다.

(사진=김재훈 기자)
박선주씨(사진=김재훈 기자)

“사측 모습에 화가 나고 어이도 없어요. 우리나라 돈 많은 사람들은 밑에는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한순간에...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렇죠. 사전에 영업을 줄여가면서 직원들과 함께 천천히 고민하면 몰라도. 돈 없으니까 정리하는 거야, 식이잖아요. 노사협의를 제대로 하자는 태도인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측에서는 벽을 보고 ‘직원들 정리할 거야’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 벽에 대고 얘기 좀 하자고 손으로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요.”

박선주씨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우리 동료 직원들, 다들 고생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바뀌는 것도 없고, 더 심각해지고, 답답하기만 해요. 호텔 헐고 주상복합건물이 생긴다 하면 우리 일자리가 없어지는 거거든요. 사측에서 흐지부지하지 말고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물어도 보고 해야 하는데, 질질 끌고 있는 것 같아요. 제대로 된 대화 없이 ‘언제까지 매각하겠다’, ‘이때까지 영업하겠다’고만 하면 대화가 되는 건가 싶고요.”

주변에서도 박선주씨를 많이 걱정한다. 친구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물을 때, 그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답한다. 친구들의 부모님도 기사 보고 걱정한다고 전한다. “지금은 다른 생각은 없고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여기서 일하며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거든요. 그게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참 속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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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responsibility for the incompetent CEO David pacey and go home. 무능력한 데이빗 페이 대표이사 책임지고 집으로 가라!" 박선주씨가 제주칼호텔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사진=박선주 제공)

사측의 일방적인 매각 결정으로 한순간에 꿈을 잃을 수는 없다. 박선주씨는 직원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고 있다.

“1인시위도 처음 해봤어요. 피켓 들고 서 있는데 1시간이 굉장히 길더라고요. 평생에 내가 해볼 일인가 싶었는데, 막상 내게 닥치니까 막막하고 답도 없고. 그래도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할 때 힘내라고 하는 분, 음료수 건네주는 분도 계셨어요. 도민이 관심을 많이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매각 반대 시위에 나갈 때 엄마한테 사진을 보내기도 해요. 그러면 엄마는 눈물 난다고 마음 아프다고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고 얘기하세요. 회사가 우리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텐데... 이 겨울에 동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보람 있는 결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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