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모형. (사진=플리커닷컴)
치아 모형. (사진=플리커닷컴)

5년 만에 치과에 갔다. 입안을 드러내어 진단을 받았다. 금이 간 치아가 있어 이를 뽑아내고 인조 치아를 심었다. 진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대선후보들이 잇달아 농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약들이 본질적이고 효과적인 처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농업·농촌의 위기와 환경변화를 바르게 진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농업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는 기후변화다. 폭우·폭염·가뭄·한파 등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었다. 이는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을 어렵게 해 곡물자급률 21.0%인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온난화로 한라봉이 전북 김제, 사과는 강원 영월에서 재배되는 등 주산지가 이동하고 있고, 붉은불개미, 화상병 등 외래병해충이 확산되고 있으며, 서양금혼초가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역에 퍼지는 등 국내에 없었던 병해충과 잡초 등이 발생하고 있다. 

거기에다 그동안의 좁은 땅덩어리에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고투입 농법으로 토양의 지속가능성은 경계선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비료 사용량은 266kg/ha로 캐나다의 3.4배, 미국의 2배가 된다. 

그 결과 농경지의 질소 수지는 245kg-N/ha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다. 농약사용량 또한 10.5kg/ha로 호주의 1.1kg/ha, 미국의 2.6kg/ha, 프랑스 3.7kg/ha에 비해 2배에서 10배 정도 높다.

농약 자료사진. (사진=플리커닷컴)
농약 자료사진. (사진=플리커닷컴)

정부의 ‘2050 농식품 탄소중립 추진전략’에 따르면 2050년까지 농축산분야 온실가스 824만3000톤을 친환경농업 면적 30% 확대, 정밀농업 면적 60% 확대 등 저탄소 농업구조로 전환하면서 감축한다고 한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 식량안보를 지켜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는 농촌 소멸이다. ‘2020년 농림어업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231만4000명이다. 2000년 403만1000명에 비해 무려 42.6%가 감소하였다. 전체인구 대비 농업인구 비중도 2000년 8.8%에서 2020년 4.5%로 줄어들었다. 농촌의 고령화는 더욱 심각하다. 농가 인구의 73.3%가 60대 이상이고, 농업경영주 평균 연령은 66.1세이며, 40세 미만 경영주는 1만명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농사지을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 농촌군 82곳 중 2000년 당시 거주인구 수가 2만명 이하인 지역은 5곳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18곳으로 늘었고, 2040년에는 33곳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농촌의 과소화는 의료, 교육 등 생활 인프라 붕괴로 이어져 인구 유출을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세 번째는 빈곤화·양극화의 심화이다.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에 대한 농가소득 비율은 2000년 80.6%에서 2020년 62.2%로 줄어들었고, 2020년 소득5분위배율(소득 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소득 하위 2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은 도시가구가 5.34인데 반해 농가는 7.64를 나타냈다. 

2020년 농가소득은 2020년 기준 4503만원이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 벌어들이는 농업소득은 1182만원으로 농가소득의 26%에 불과하다. 더욱 암울한 것은 농업소득이 2000년 이후 1100만원 수준에서 고착되었다 사실이다. 한마디로 농사를 지어선 생계유지가 힘들다는 말이다. 

당근밭. (사진=김연주 제공)
당근밭. (사진=김연주 제공)

네 번째는 농지의 문제다. 지난 30년 동안 농지의 25%가 사라졌다. 최근 태양광 발전시설의 획기적 확충으로 감소 추세는 더욱 가팔라져 매년 제주도 경지면적의 1/3에 해당하는 농지가 사라지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경자유전의 원칙도 사문화되어 LH사태가 보여주듯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임대차 비율도 50%를 웃돌아 지주가 직불금을 편취하거나 임차농업인이 농지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  

농업을 둘러싼 환경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첫째, 4차산업혁명 물결이 농업분야에 밀려들고 있다. 인공지능·빅 데이터·사물인터넷· 블록체인 기술 등을 활용한 생산의 스마트화뿐만 아니라, 이력관리, 전자전매, 수급관리 등 유통의 스마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둘째,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고 먹거리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유엔에서도 먹거리체계 개선방안으로 ▲식량접근성 ▲지속가능한 소비 ▲환경친화적 생산 ▲공정한 배분 ▲위기대응 등 5가지 실천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 농촌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파편화된 개인들은 수입 다변화와 극대화를 위해 투자와 ‘N잡’(부업;옮긴이)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성장 및 자기행복을 우선시하여 시골 특유의 여유와 날 것의 자연을 즐기며 도시 생활의 편안함과 문화생활도 즐기는 ‘사도삼촌(4일은 도시, 3일은 농촌)’을 꿈꾸고 있다.  

2020년 농림어업 취업자수는 139만5000명로 우리나라 취업자 2712만3000천명의 5.1%를 차지한다. 농림업 부가가치는 31조9천억으로 우리나라 GDP의 1.8%를 차지하는 데 불과하다. 곡물자급률은 21.0%, 식량자급률은 45.8%로 지난 1990년 43.1%, 70.3%에 비해 22.1%p, 24.5%p나 떨어졌다. 농업은 표와 돈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식량안보도 책임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대선후보들의 농업 공약 발표도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늦었고, 공약도 추상적인 선언에 그치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인식이다. 독설가인 친구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소를 키우기보다는 고기를 수입해다 먹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환경보전을 위해서도 낫지 않느냐고 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자 동창은 그래도 토지를 소유한 부자인 농업인들에게 왜 국가세금을 퍼붓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농사짓는 후배는 가격으로 매기지 못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해 국가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필자는 이러한 불만들을 농업이 내포한 다양한 공익가치로 감싸 안으며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를 지금까지의 농업농촌의 희생을 전제로 경쟁력과 성장에 초점을 두었던 국가 주도의 ‘생산중심 농정’을, 농업과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에 방점을 찍는 지역 주도의 ‘공익중심 농정’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선거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꾼다. ‘말랑농업’은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글이다. 격주 화요일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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