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대통령선거와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봉수 교수의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강연이 진행중입니다. '악의 시대'라 불리는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정치 사상을 톺아보며 제주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마련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습니다. 해서 궁금해졌습니다. 제자백가 정치론을 들으러 온 시민들, 그들이 바라는 제주 정치는? <편집자주>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대한민국은 분열과 대립이 난무하는 갈등공화국이다. 진보와 보수, 페미와 남초, 요즘 것들과 틀딱들(틀니 딱딱), 자본과 노동, 서울과 지방으로 대표되는 이념·남녀·세대·노사·지역 갈등이 우리나라를 도배하고 있다.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은 더 이상 수치가 아니고, 이기심을 탓하는 것은 위선이며, 욕망 실현을 잘 할수록 칭송을 받는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지 않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매도되기까지 한다. 자본주의는 상품을 매개로 이기심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체제이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순자의 인간관이 깊숙이 배어 들어간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순자는 인(仁)과 예(禮)가 땅에 떨어지고, 약육강식이 판치는 전국(戰國)시대를 살았다. 그는 ‘극악무도한 세상을 어떻게 광정할 수 있을까?’에 답하기 위해 유가를 비롯한 십이자(十二子)를 수용 비판하면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

첫째, 그는 상제천, 의리천, 자연천 등의 개념에서 벗어나 ‘하늘과 사람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거나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보증하는 형이상학적 대상이었던 하늘은 인간과는 무관한 객관적 실체로 내려왔고, 인간은 하늘에서 벗어나 자연을 개조하고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적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둘째, 그는 인간은 사회에 진입하면서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욕망을 억제하기보다 합리적으로 조절하려 하였고, 인위(人爲)로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주장한 이유도 쇠가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듯이 끊임없이 적습(積習)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푸른색은 쪽에서 뽑아내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라며 문화를 내재화하는 교육의 힘을 무한히 신뢰했다.

셋째, 그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부국(富國)과 자율과 문화로 욕망을 조절하는 예법(禮法)을 강조하면서 욕망 추구를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회에서는 묵자의 겸애(兼愛)나 맹자의 도의지성(道義之性)과 같은 당위적 개인윤리로 욕망을 제어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욕망에 따른 다툼·혼란·궁핍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규율하는 위계질서와 그 직분에 맞는 예의(禮儀)를 세우고, 재화생산과 욕망추구가 균형을 이루면서 증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인간들의 사유양식이자 행위규범이며 보편적 문화유산이 바로 예의라고 하여 예의를 보편적 사회규범으로 확대했다.

넷째, 그는 배움에 따른 능력사회를 지향하며 혈통에 따른 신분제도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는 배움과 수양의 정도에 따라 속인(俗人), 속유(俗儒), 아유(雅遊), 대유(大儒)로 구분하고, 대청명(大淸明)한 대유가 정치하는 엘리트 사회를 꿈꾸었다. 그는 군주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직분에 맞는 권한과 책무를 부과하고 정치적 명령과 제도를 일관되게 하는 것이 통치의 기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천년 동안 이어 내려온 동양의 문관통치시스템은 이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는 직분(職分)은 학문적 노력과 수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며 교육에 의한 계층이동을 지지하였다.

다섯째, 그는 군주의 유형을 의로움을 세우는 왕(王), 믿을 수 있는 패(覇), 권모술수의 망(亡)으로 구분하여 군주는 시대 상황에 맞게 처세해야 한다며 악이 범람하는 시대는 선왕후패(先王侯霸)의 왕도와 패도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맹꽁이 소리로 취급받던 공맹의 덕치(德治)를 땅으로 끌어 내리고. 사회규범을 강조하는 예치를 세움으로써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치(法治)의 길을 열어주었다.

순자(이미지=위키트리)
순자(이미지=위키트리)

순자가 살았던 시대가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경제적 불평등이 민초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은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해졌지만 소득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 상위 10%가 1인당 평균 1억7850만원을 벌면서 전체소득의 46.5%를 가져가는 동안 하위 50%는 1인당 평균 1233만원을 겨우 얻으며 전체소득의 16%를 나누고 있다. 자산불평등은 더욱 심하다. 우리나라 부의 58%를 상위 10%가 갖고 있는데 반해 하위 50%는 고작 6%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은 12.2%로 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이고, 국민 부담률은 27.4%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한국은 자살률 1위, 우울증 1위, 산재사망률 1위, 노동시간 3위, 상대적빈곤율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저시급을 올리거나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하는데 언론들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한국경제가 무너질 듯이 '게거품'을 물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믿음도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 찬스라는 말처럼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이기보다는 불평등을 공고화하고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서울대생 학부모의 평균소득은 상위 5%의 평균소득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그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하고 경제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상징자본까지 포섭하여 세습하고 있다.

순자가 이 세상에 살아온다면 이 극악무도한 경제적 불평등의 세계를 어떻게 광정하려고 할까? ‘돈은 일한 만큼 벌고, 부는 아래로 흘러가게 하는 자본통제규범의 수립과 자리(自利)가 이타(利他)가 되는 문화의 내재화 ’라고 답할지 모른다. 이것이 착취와 대립으로 점철되는 자본의 전성시대를 끝내는 길이다.

그럼에도 유력 대선주자들은 부동산 감세와 규제개혁 경쟁에 열을 올리고, 성장과 능력주의라는 포장으로 약육강식을 부추긴다.

분노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배를 뒤집는 물이 되려면 적극적으로 정치여론을 형성하고 결사하며 참여해야 한다. ‘그놈이 그놈’이라며 정치에 돌을 던질수록 자본의 전성시대는 길어지고, 우리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소리와 몸짓의 변화로 열강하는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온몸으로 열강하는 강봉수 교수와 수강생. (사진=박소희 기자)

PS 순자가 보기에 인간은 욕(慾)·지(知)·의(義)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지만 욕·지·의는 완제품이기라기보다는 소박한 재질에 불과해 인간은 교화하지 않으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소리와 몸짓의 변화로 열강하는 강봉수 교수님이 라캉의 자아 형성 이론을 설명하신다. 라캉에 의하면 아기는 자기 몸에 대해 조각난 환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아기는 엄마에게서 육체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엄마와 조각조각 연결된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는 엄마를 통해서 자기를 본다. 이 단계가 바로 ‘거울 단계’이다. 거울단계를 지나면 아기는 언어의 세계이자 아버지의 세계인 상징계로 들어선다. 아버지의 이름은 “안 돼(금기)”다,

아기는 상징계에 들어서면서 동일시의 환상에서 깨어나 자기소외를 겪는다. 아버지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순자가 말한 인위(人爲)로 욕망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는 것이 교수님의 일리(一理)이다.

우리는 이렇게 제자백가의 정치철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미제적(未濟的) 세상 보기’의 유희를 맛보고 있다. 지극히 그윽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맛이다.

★ 시민 생명파수꾼 씨가 쓴 ‘정치 계절에 돌아보는 제자백가의 정치 철학’ 여덟번 째 강연 '맹자' 편은 지난 23일 제주시 아라일동 희망나래 미디어카페에서 진행했습니다. 본 강연은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인문숲이다, 제주투데이가 공동 주최하고 제주대안연구공동체 탐라학당이 주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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