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고 처음 “앗!”하며 놀랐던 곡은 Simon and Garfunkel의 ‘Sound of Silience’였다. 부유하는 음률의 기타 아르페지오와 그에 맞춰 노래하는 두 목소리의 화음은 천상의 소리마냥 신비로웠다.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처음 들었던 김민기의 ‘친구’는 TV에서 듣던 가요와는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차분ㅎ고 기품이 있었다. 소곤대는 목소리가 좋았다. 그 영향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통기타 대백과 사전>이나 <포크음악모음>등에 수록된 옛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통기타 반주에 맞춰 아름다운 가사들을 읊조릴 때면 주변 공기가 따뜻해지곤 했다.

그러다 헤비메탈 음악이 친구들 사이에 유행 하자 곧장 일렉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작은 방은 온통 메탈음반과 락 기타리스트 사진으로 도배됐다. 레코드가게를 돌아다니며 더욱 강력한 사운드의 음악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날도 학교가 끝나자 시민회관 근처 단골 레코드 가게로 향했다. 주문했던 음반이 도착하지 않아 의기소침해서 였나 포크음악(처럼 보이는) 앨범 한 장을 골랐다. 새 한 마리와 검정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앨범자켓은 동화책 표지처럼 보여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집에 돌아와 앨범을 턴테이블에 앨범을 얹으니 보틀넥 기타 소리와 함께 “너무 많은 바람이 불었나봐 엉겅퀴 꽃씨가 저리도 날리니….”라는 낮은 목소리의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순간 가슴 한 켠 묻어뒀던 무언가가 움트는 소리가 들렸다. 그 이상한 감정의 흐름에 깜짝 놀라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디오를 꺼버렸다. 하지만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에 쩍하고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헤비메탈이 최고였고 방안은 언제나 시끄러운 기타소리로 가득 찼다. ‘Rock Will Never Die’였달까.

하지만 밤이 오면 <시인과 촌장>을 꺼내 들으며 우울하고 긴 밤을 보내야 했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무력감에 끙끙대던 사춘기 소년에게 그 음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을 들려주었다. 내밀한 노랫말은 유일하게 나를 위로했다.

시인과 촌장의 2집 앨범은 모두 억척스럽게도 살아왔어/솜처럼 지친 모습들/하지만 저 파도는 저리 드높으니/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라고 노래하는 청량한 분위기의 <푸른 돛>으로 시작된다. 그대는 나의 깊은 어둠을 흔들어 깨워 밝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줘라고 작게 소곤대는 <비둘기에게>는 명징한 어쿠스틱 아르페지오와 몽환적 선율의 플렛리스 베이스가 Pink Floyed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고양이>로 이어진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4월, 목마른 4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라고 노래하는 <진달래>의 애처로운 선율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사춘기였던 나는 한 편의 우화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얼음 무지개>속 소년의 이야기에 위안을 얻었다. 꾹꾹 참아낸 비탄의 감정은 <비둘기 안녕>에 이르러 결국 터져버린다.

<비둘기 안녕>은 이제 나는 슬프지 않을거야라고 자기고백적 가사로 시작해 드라마틱한 편곡과 코러스, 소절마다 각 악기들의 표현력이 최대로 응집된 곡이다. 후렴구에 다다르면 이제는 슬픔이 내 곁을떠나가기 때문이야/비둘기 안녕이라며 절규하는 거친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이어서 폭발하는 기타 솔로는 가사로 다 전하지 못한 감정들을 담아내며 서서히 사라진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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