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순서
① 여성 폭력 그리고 안전
② 일터와 돌봄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정책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 대선정국에서는 소위 ‘이대남’으로 대변되는 남성 유권자들의 표가 가장 중요한 결정권으로 여겨지고, 모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여성과 관련된 문제는 주변화되거나 적극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 지역 성평등을 위해 활동해온 <제주여성인권연대>와 <제주여민회>는 2차에 걸쳐 대선 정국에서 드러나는 혐오와 차별의 정치에 문제제기하고,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한 비전과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번 기획을 통하여 제주지역 주권자들이 성평등에 투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3월 9일,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막판 선거전이 치열하다. 각 후보들은 국민을 위한 더 나은 민생과 복지, 안보와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넘치는 혐오와 왜곡 선동, 증오와 보복의 정치 언설도 휘몰아치고 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이 허울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성으로서 체감하는 위기는 이번 대선 정국을 통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의 양태가 점점 교묘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력 후보의 입을 통해 구조적 성차별이 부정되는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어떠한 현실과도 맞지 않는 무지와 선동의 정치행태일뿐이다.

부국개발 (주)여미지식물원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회사가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주장했다. @변상희 기자
부국개발 (주)여미지식물원에서 일한 여성노동자들은 회사가 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말했다.  (제주투데이 DB)

세계경제포럼 <세계성별격차보고서>에 따른 2021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56개국 가운데 102위다. 성별임금격차는 31.5%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크다.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되고, 여전히 보이지 않고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강요당하는 이중 구속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2021년 12월 16일 발표된 통계청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실업자의 2/3가 여성으로, 고용 상황이 어려워 질수록 여성이 가장 먼저 퇴출 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2021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에서는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교육서비스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특히 100만원 미만 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노동 시장에서 여성이 굉장히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성의 노동 생존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늘 여성 경제 활동 1위를 자랑하는 제주이지만, 제주 여성의 저임금노동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2021년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발표한 ‘제주지역 여성 근로자 근로 실태와 정책 방안’에 의하면, 2020년 제주 지역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여성 191만2000원, 남성 286만7000원으로 남성 대비 여성 임금 비율이 66.7%밖에 되지 않는다. 소규모 사업장 종사 비율,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 시간제 근로 비율이 매우 높고 경력 단절로 인한 승진 제한, 돌봄 노동에 대한 낮은 처우 등 노동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여성이 차별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은 가부장제 문화, 역사적 맥락이 더해지면서, 제주 여성의 노동 착취를 정당화해왔다. 이를 대변하는 말이 ‘강인한 제주 여성’ 담론이다. 이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여성이 참고 견뎌야 한다는 폭력적 메시지를 강요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위한 이중 삼중의 노동 착취를 강요한 셈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은 21일 오후 5시 제주시청 앞 조형물 앞에서 제주여성농민대회를 열고 농업의 가치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정치인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외쳤다. (사진=박소희 기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은 2021년 10월 제주시청 앞 조형물 앞에서 제주여성농민대회를 열고 농업의 가치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정치인들은 6.1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제주 여성의 노동 조건이 나아지거나 그 강도가 약화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여성은 가장 먼저 노동 시장에서 쫓겨났고, 여성의 빈곤화는 심화되었다. 한편, 심각해진 각종 돌봄의 공백을 메울 책임과 비용은 고스란히 가정으로 그리고 가정 내 여성에게 전가되었다.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이 생겼을 때, 여성인 아내, 딸, 며느리가 책임질 수 밖에 없다는 식이다. 이처럼 성역할 불평등 의식이 여전히 견고한 가운데, 여성은 취약해진 노동생존권과 돌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성차별은 여전하다. 어쩌면 더 교묘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20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 중 많은 부분에서 여성 인권에 대한 철학의 부재를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여성은 아이를 낳는 기계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거나 가족을 보살피는 가사 노동자로만 인식하는 수준의 공약이 많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공약만이 여성 공약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거나, 출산·양육 공약을 청년 공약으로 공시하는 등 소위 ‘이대남’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을 보면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출산에도 선택권이 있으며 양육 및 가족 돌봄은 국가와 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통의 돌봄 책임을 갖는다는 대 원칙이 천명되어야 한다.

성평등 노동과 국가 돌봄의 시스템 구축은 민주·복지국가로 가는 첫걸음이다. 여성의 무급노동과 저임금·불안정노동으로 착취해온 구조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한다.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성평등하게 노동할 권리를 부여하며, 노동에 필요한 몸과 정신의 돌봄을 위한 보건·의료·교육 등은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 노동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노동 시장의 성차별을 없애는 고용 평등과 성차별 방지법, 성평등 임금 공시제, 정규직 고용 의무제 및 비정규직 고용부담금 도입과 같은 법 제도가 필수 조건이 되어야 한다. 둘째, 남녀 공히 일·생활균형을 통한 자기돌봄·상호돌봄이 가능하도록 하는 육아휴직 제도 정비, 노동 시간 단축, 생애 주기를 고려한 유연한 노동 시간 선택제, 돌봄 및 주휴 수당 혜택 사각지대 없애기 등과 같은 관련 법의 제·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등의 보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기본권임을 잊지 말자. 2022년 3월, 우리는 성평등 세상을 위한 제주 여성의 강인한 한 표를 당당하게 행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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