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마농이라 부르는 달래 나물. (사진=송기남 제공)
꿩마농이라 부르는 달래 나물. (사진=송기남 제공)

제주에서 드릇마롱 또는 꿩마농이라 하는 봄나물은 달래 나물을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쉐터럭 마농이라는 이름은 겨울과 봄 사이 아주 가늘고 촘촘하게 어린 달래 줄기가 땅에서 보드랍게 올라오는데 ‘소의 털처럼 가늘다’해서 붙여졌다. 이것을 제주에서 ‘꿩마농’이라 하는 것은 겨울에 굶주린 꿩들이 땅에 앉아 흙목욕을 하다가 달래 나물의 동글동글한 알뿌리들을 주워먹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이나 여러 본초 서적들에서 소산이라는 것은 매운맛이 있는 작은마늘을 뜻한다. 우리나라에 자생종인 산마늘을 ‘산산’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 외국에서 들여와 재배되고 있는 마늘은 매운맛이 있는 큰마늘이라 하여 ‘대산’이라 한다. 

흔히 밭에서 재배하는 마늘 대산을 제주사람들은 콥데산이라 하였는데, 어째서 콥자가 대산 앞에 들어갔을까? 제주사람들은 손톱이나 발톱을 ‘손콥’ ‘발콥’이라 하였다. 그러니 재배 마늘 ‘대산’을 일일이 손콥으로 쪽을 내야하고 일일이 손톱으로 2중 3중의 껍질을 벗겨서 까야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에 꿩마농이나 산마농은 비늘줄기의 겉껍질만 벗기면 그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손콥’을 쓸 일이 별로 없다.

고기와 우유를 주식으로 먹는 유목민족은 고기의 노린내에도 익숙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어쩌다 한 번씩 먹는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비릿한 노린내가 역겨웠을 것이다. 그 냄새를 제거하는 데 산마늘이나 달래는 향신료로써 아주 훌륭한 맛을 냈던 것이다.

4355년전 단군신화에 ‘곰텡이’와 ‘호랭이’가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 버티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 농경사회 정착민인 우리나라에 지금 재배마늘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 우리 강산에 나는 산마늘과 달래 나물 꿩마농은 거둬서 1년을 저장해도 썩지않는 마늘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고 우리 강산 어디서나 구할 수가 있었다.

삼한 사온으로 겨울과 봄 사이 계절 싸움에서 봄이 겨울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보릿 고고리조차도 올록볼록 부룩을 세우며 승리의 깃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가 드릇마롱이 어랑 어랑하게 올라오는 계절이다.

제주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산이나 들에서 나물을 캐다가 먹지는 않았다. 제주에는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땅이 얼지 않으므로 우영팟에 배추랑 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서 그날 먹을 것을 자기집 텃밭에서 날마다 뽑아다가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래 줄기가 소의 털처럼 가늘다 해서 쉐터럭 마농이라 불린다. (사진=송기남 제공)
달래 줄기가 소의 털처럼 가늘다 해서 쉐터럭 마농이라 불린다. (사진=송기남 제공)

그러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시레기나물이나 묵나물을 만들어 먹는 일도 옛날에는 없었다. 그러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춘삼월 시기가 되면 같은 나물에 같은 밥만 먹던 입맛에도 권태기가 온다.

지금처럼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보리농사를 짓던 시골 농촌에는 이때가 보리밭에 검질을 매는 시기다. 어른들은 보리밭에 검질을 매다가 향긋한 꿩마농 드릇마농을 주워 담아 국을 끓인다. 싱싱한 동지나물과 드릇마농 한 줌만 같이 넣고 된장국 끓이면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향기에 어금니쪽에부터 침이 철철 고이기 시작한다.

드릇마농은 잎줄기는 어린것이 향이 강하며 굵은것은 알뿌리가 맛이 좋다. 부엽토가 쌓이는 냇골짜기 주변이나 농사를 짓다가 휴경으로 놀고 있는 땅에서 잘 자란다. 옛날에 시골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도 드릇마농을 캐어다가 팔아 짭짤한 용돈을 조달하였다. 

품질에 따라서 상품 중품으로 나눠서 가격이 달라지는데 수매하는 상인이 막대저울에 달아서 막대 눈금에다가 뽕돌을 이리저리 맞추어 근당 몇십원을 받으면 아이들은 그걸로 공책도 사고 연필과 지우개도 사서 쓰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돈벌이로 캐러 다니기보다는 드릇마농을 캐어 냇가에 가서 구워먹었다. 집에 있는 통성냥에서 성냥쌀을 몇 개만 호주머니에 넣고 또래들과 들판으로 나가서 보리밭 옆이나 유채밭옆을 빙빙 돌면서 드릇마농을 캐서는 냇가에 가서 깨끗이 씻는다.

접시처럼 얇고 납작한 돌도 두어개 주워서 물로 씻는다. 죽은 나무나 솔방을 같은 것을 주워오고 햇볕에 따뜻해진 돋보기로 태양열을 가하다가 성냥을 돌 위에 칙하고 그으면 불이 일어난다.

받침돌위에 납작돌 올려놓고 열을 가하다가 물방을을 떨어뜨려 치~ 하는 소리가 나면 드릇마농을 한입에 먹을만큼씩 돌돌 말아서 올려놓고 납작돌 하나를 위에다 눌러놓으면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이렇게 깔깔거리며 나눠 먹던 어린시절 동무들과의 추억을 부르는 나물이다.

꿩마농 또는 쉐터럭 마농이라 불리는 달래 나물. (사진=송기남 제공)
꿩마농 또는 쉐터럭 마농이라 불리는 달래 나물. (사진=송기남 제공)

밭둑이나 작은 냇골짜기 부엽토에서 흔히보던 달래는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다. 70년대 미국과 베트남전쟁 말기 미군이 북베트남에 다량으로 항공살포했던 화학무기가 바로 고엽제다. 이 고엽제를 미군이 북베트남에 8만여톤을 뿌리게 된 것은 우거진 산림숲에 나무를 죽이고 북 베트남군들을 한번에 토벌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고엽제의 원료로 사용하던 것이 제초제로 재생산되어 우리 농촌에도 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제초제가 안 뿌려진 농경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번 뿌려진 고엽제의 영향이 최소 70년이라 하니 우리 농촌에 우리 농촌에서 제초제 없는 농업의 대안은 어떻게 연구해야 할 것인가..

드릇마농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관을 깨끗이 하여 피를 잘 돌게 한다. 머리를 맑게 하고 간의 피로를 풀어준다. 입맛을 돌게하고 기운을 돋운다.

재배는 5월에 종자를 채취하여 번식하고 토양은 부드러우면서 습기가 있는 모래흙이나 부엽토에서 잘 자란다. 꽃대가 올라오는 늦봄부터는 잎 비늘줄기속에 벌레가 일기 시작하므로 이른봄에 나물로 먹는 것이 좋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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