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비상한상상' 성과공유회에 참석한 장학생과 운영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비상한상상' 성과공유회에 참석한 장학생과 운영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알아가는 것.”
“선택지를 늘려주는 것.”
“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이정표.”
“내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
“꿈틀꿈틀하며 감각이 깨어나는 일.”

다섯 명의 청년과 청소년이 정의한 ‘경험’이다. 

‘꿈여행’을 하고 돌아온 청소년·청년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클럽 ‘유난’(운영자 양소희)은 제주지역 청년·청소년의 ‘꿈여행’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비상한 상상’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모집을 거쳐 지난 1월 선정된 1기 장학생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정치·문화·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멘토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는 ‘꿈여행’을 다녀왔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성과공유회를 열었다. 

“비상한 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청소년 시절이 많이 떠올랐어요. 그땐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현실의 벽에 많이 부딪혔거든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학생들이 ‘경험의 양극화’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운영진 전성환씨-

‘경험의 양극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표현은 지방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정치·문화·예술·교육 등 전반에 걸쳐 경험의 기회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단지 자신이 자고 나란 곳이 서울이 아니라 제주라는 이유만으로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경험에서 배제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불평등 문제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이 꿈꾸는 기회를 박탈하고 가능성을 제한하게 한다. 한정된 경험을 가진 청소년들에겐 한정된 선택지만 주어진다. 자신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비상한 상상’은 ‘꿈여행’을 통해 제주 청소년들이 지금까지 갇혀있던 현실의 벽을 깨도록,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그걸 경험하고 배우는 건 장학생들의 몫이다. 

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비상한 상상' 성과공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비상한 상상' 성과공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장학생에 지원했던 한 학생이 서울에 가면 한강도 가고 싶고 전시회도 가고 싶고 콘서트도 가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게 ‘경험의 양극화’ 현상이에요. 서울에 사는 청소년에겐 일상이지만 제주 청소년들에겐 일상이 아닌 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청소년들이 이 문제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운영진으로 참여했던 박지원씨는 더 많은 청소년·청년들이 ‘경험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그런 단어가 쓰이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존재하는 사회 문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다음 단계인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 ‘비상한 상상’ 프로젝트의 또 다른 취지다. 

“어렸을 때부터 꿈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뭐가 나에게 맞는 꿈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꿈여행을 다녀오면서 꿈이 확실해졌어요. 저보다 어린 다른 청소년들도 이 꿈여행을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1기 장학생인 정원주씨는 꿈여행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 선명해졌다. 환경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정씨는 주변에서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며 핀잔을 듣곤 했다. 그러다가 환경 문제를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는 안내문이나 배너를 디자인하는 직업을 꿈꾸게 됐다. 디자인이라는 재능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꿈여행이 (마치 관련이 없어 보이는)이 둘을 연결시켜줬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상상은, 나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목표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진다.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상상은,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만족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비상한 상상' 성과공유회에서 운영진 양소희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27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비상한 상상' 성과공유회에서 운영진 양소희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비상한 상상’이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시행착오가 있었을 터. 클럽 ‘유난’ 운영자 양소희씨에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사실 장학생들 입장에선 낯선 곳에 가서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거잖아요. 압도 당한다거나 기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실제로 그런 우려를 말하는 장학생도 있었구요. 그래서 이러다 장학생들이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다 꺼내보이지도 못한 채 아쉬운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죠.”

결과는? 기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학생들은 새로운 경험에 점점 몰입했다. 본인들이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이동하거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거 너무 신기하지 않아?’, ‘이런 거 너무 새롭지 않아?’라고 물으며 느낀 점을 공유하기도 했다. 

양 씨는 “서로 질문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친구들이 훨씬 더 잘 즐기고 몰입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며 “그걸 지켜보는 것자체가 제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떠올렸다. 

또 “비상한 상상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왜 우리는 부르지 않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대부분 제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의 방송사나 게임회사, 스타트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지역 청소년들에게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비상한 상상’ 2기 모집 계획을 묻자 양씨는 “더 빨리 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1기의 경험을 더욱 탄탄하게 재정비해서 2기를 진행하고 싶다”며 “1기를 통해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2기 땐 공개적으로 운영진과 멘토를 모집할 예정이다. 시기는 다음 겨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달 27일 만난 '비상한 상상' 운영진과 장학생. 왼쪽부터 전정환, 이소현, 정원주, 박지원, 양소희씨.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달 27일 만난 '비상한 상상' 운영진과 장학생. 왼쪽부터 전정환, 이소현, 정원주, 박지원, 양소희씨. (사진=조수진 기자)

이날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언급됐던 단어는 ‘경험’이었다. 이들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경험의 정의를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선택지를 늘려주는 활동이요. 간호학과를 입학했다가 자퇴를 했어요. 지금은 사회 혁신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생활 때 해외 탐방을 다녀오고 존경하는 멘토를 만나러 서울에 직접 찾아가기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어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지를 찾아나갔어요. 난 이 길로도, 저쪽 길로도 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죠.” -운영진 이소현씨-

“내 삶의 목표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이정표요.” -운영진 전성환씨

“나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독일 어린이들이 ‘남자들도 총리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대요. 독일에서 여성(메르켈)이 16년 가까이 총리를 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이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여성만 총리를 하는 거구나 생각한다는 거죠. 저 역시 중학생일 때 모의유엔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외교관이나 국제기구에서의 진로를 꿈꾸지 못해을 거예요.” -운영진 박지원씨

“새로운 걸 알아가는 것이요.” -1기 장학생 정원주씨-

“감각을 깨우는 일이요.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리면 감각이 깨어나잖아요. 생경한 것에 대한 감각이. 뭔가 꿈틀꿈틀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건 감각이 깨어나야 가능하거든요.” -운영진 양소희씨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묻는다. 당신에게 경험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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